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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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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굴복하기 싫어요”

매년 30만 명 무작위 추첨해 군사훈련하는 ‘의무병제’ 강화 법 통과된 타이…타이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한 고등학생 네티윗 초티팟파이산
등록 2016-01-14 05:59 수정 2020-05-02 19:28
시암 해방을 위한 교육운동을 이끈 타이의 고등학생 운동가 네티윗 초티팟파이산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가는지 가르치는 ‘평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암 해방을 위한 교육운동을 이끈 타이의 고등학생 운동가 네티윗 초티팟파이산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가는지 가르치는 ‘평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7일 오후, 고3 학생 네티윗 초티팟파이산(19)을 만났다. 네티윗은 3년 전 ‘시암 해방을 위한 교육운동’(Education for Liberation of Siam)을 이끈 고등학생 운동가다. 이 운동을 통해 매년 1월 스승의 날, 학생들이 교사 앞에 무릎을 꿇고 꽃을 바치는 ‘와이 크루’ 의식과 조례시간 애국가 제창 등을 비판했다.

뒤이어 타이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16살 때부터 고민하다 18번째 생일이던 2014년 9월 선언문을 발표했다. ‘종교’ ‘평화’ 등 세계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채택한 주제는 물론 자신이 나고 자란 사회의 군인정치에 대한 비판 의식을 빼곡하게 담았다. “타이군은 민족주의와 군에 대한 존경심을 조장하기 위해 교과서마저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언에서 징병제도가 “폭력과 몰이성과 비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선언 전문 ▶ http://www.wri-irg.org/en/node/23544)

군사훈련, “10대를 낭비하는 느낌”

최근 네티윗의 1년 전 선언문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타이 정부가 ‘예비군법’을 통과시키면서 의무병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앞으로 18~40살 타이 남성(약 1200만 명 추정) 중 2.5%에 해당하는 30만 명이 매년 무작위로 추출돼 두 달간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 법안은 지난해 11월 기권 4명이 있었을 뿐 반대 없이 통과됐다.

종래의 징병제는 그대로 유지된다. 군 병력은 평균 60% 내외가 자원병으로 우선 충당되기에 나머지 병력을 만 21살 남성 가운데 제비뽑기로 보충해왔다. 제비뽑기에 불려가지 않기 위해 약 70~80%의 타이 남자 고등학생들은 고교 3년 동안 ‘군사교육’을 선택한다. 고교 3년간 국토방위 훈련인 ‘러 더’ 과정을 이수하면 제비뽑기에서 면제되기 때문이다.

‘러 더’ 과정은 군사훈련뿐 아니라 역사·무기에 대한 이론 학습은 물론 국가, 종교(불교), 국왕에 대한 사랑이라는 ‘정신교육’까지 병행하도록 돼 있다. 이 과정을 이수한 고3 니티(19)는 “여러모로 중요한 10대 후반을 낭비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결국 징집되는 이들은 ‘러 더’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고교 중퇴자나 아예 진학하지 못하는 타이 동북부 빈곤 가정 출신이 많다. 이 중 일부는 군인, 경찰, 민병대 등 총 8만 명 이상의 보안군이 배치된 타이 남부 분쟁주에 배치돼 무슬림 반군 청년들과 대치하고 있다. 타이 사회의 ‘을’들은 이렇게 ‘갑’옷 입은 자들이 차려놓은 애국 전선에서 소총과 폭탄으로 잘못된 만남을 이어왔다. 네티윗이 징병을 통해 애국 전선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 뒤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걱정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우리 집이 중하층 정도 되는데 아버지는 “돈 좀 찔러주면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며 선언까지 하지는 않길 바랐다. 그런데 그건 공평한 방법이 아니잖나. 가난한 사람은 돈으로 면제받을 수 없기도 하고.

병역거부 선언 뒤 위협받은 적이 있나.

(현재 분쟁 지역인) 타이 남부에서 복무 중인 현역 군인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다. ‘두들겨 패겠다’는 등 1천 통 이상의 협박 메시지도 받았다.

그럼에도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유는 뭔가.

내 나라가 평화롭고 시민들이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린 군정 치하에 있다. 폭력과 쿠데타를 반복하는 그들을 멈추지 않으면 그들은 학생을 전부 군인으로 만들어버릴지 모른다. 양심을 지키며 살고 싶다.

타이 군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1947년 이전 군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다. 그해 민간 정부를 전복한 뒤 엄청난 권력을 세웠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에서까지 군의 프로파간다 교육이 너무 강하다. ‘강하다, 권력을 갖고 있다’는 이미지가 주입되고 이 때문에 타이의 많은 어린이들이 커서 군인이 되고 싶어 하는 게 현실이다.

많은 어린이가 군인을 꿈꾸는 이유
2010년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빨간 셔츠’가 거리로 쏟아져나오자 군인들이 도심을 봉쇄한 모습.

2010년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빨간 셔츠’가 거리로 쏟아져나오자 군인들이 도심을 봉쇄한 모습.

군사문화가 교육에 미치는 또 다른 영향이 있나.

군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어 쿠데타든 뭐든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다. 3년 전 학교에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그에 반대하는 내 목소리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애국가 제창을 비판했더니 친구들이 내 앞에 와서 애국가를 불렀다. 친구들은 내게 왜 애국가 제창에 반대하느냐고 묻지만 국가를 향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학생을 모두 군인처럼 복종적으로 만든다. 학교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가는지 가르치는 ‘평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데 영향을 준 사례나 사람이 있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 병역을 거부했던 사례를 뜻깊게 읽었다. 또 1910~25년 타이 왕국을 통치했던 라마 6세 재임 시절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는데 일부 승려들이 국왕의 (영국·프랑스 동맹군으로) 전쟁 참여 결정을 반대한 대가로 승려직을 박탈당했다. 폭력과 군에 반대했던 승려들의 정신 등이 인상 깊었다. 물론 모든 불교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베트남 전쟁 때 공산주의자를 죽이라고 했던 불교는 싫다.

다른 친구들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기 바라나.

내가 보기엔 다들 병역거부를 원하는데 가족 또는 법적 위협 때문에 못하는 것 같다. (타이에서 징병 기피자는 최대 3년형에 처해진다.)

징병 기피자 최고형 징역 3년 앞으로 꿈이 뭔가.

훌륭한 작가도 되고 싶고, 정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에 제3의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 미국 대선 후보에 도전하는 버니 샌더스를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다.

이미 작가로 데뷔했다. 쓴 책을 소개하면.

지금까지 모두 세 권의 책을 썼다. 2014년에 쓴 은 두 달 전 2쇄가 나왔다. 내가 생각하는 학교 교육의 바른 방향에 대해 쓴 건데, 학생들과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썼던 글을 묶은 도 2014년에 나왔다. 2015년에는 왕실모독죄로 영국에서 망명 중인 짜이 웅파콘 전 쭐랄롱꼰대학 교수와 함께 을 썼다. 3년 전 라는 교육 저널의 편집장을 했는데 그때 짜이 교수에게 기고를 부탁하며 인연이 닿았다.

해가 바뀌고 사흘째 되던 2016년 1월3일, 시리찬 양통 군정 부대변인은 매년 반복해온 발표를 어김없이 이어갔다. 1월9일 어린이날을 맞아 인근 지방 군부대에서 방콕으로 무기를 이송할 것이니 겁먹지 말라는 것. 매년 어린이날이면 방콕에 위치한 제2기병부대 앞마당에는 탱크와 무기가 전시되고 군복 입은 아이들의 ‘군사 놀이터’가 연출된다. “(군이) 학생들을 전부 군인으로 만들어버릴지 모른다”며 “양심을 지키겠다”는 네티윗의 목소리가 새해 벽두 독야청청 울리는 이유다.

방콕(타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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