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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검열 ‘새로고침’

타이 군정이 은밀히 추진해온 인터넷망 단일화·검열 계획 ‘싱글게이트웨이’에 저항하는 시민들… 정부 부처 사이트 디도스 공격하며 “전면 철회하라”

제1084호
등록 : 2015-10-28 20:51 수정 : 2015-11-0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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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군정은 그동안 ‘싱글게이트웨이’ 프로젝트를 부인해왔다. 그러다 10월20일 군정 실세로 알려진 국방부 장관 쁘라윗 웡수완은 ‘온라인 반정부 세력’ 색출을 위한 ‘검열부대’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이 검열 안은 얼마 전 한 네티즌의 예리한 지적으로 발견된 201쪽에 달하는 군정보국의 내부보고서에도 잘 반영돼 있다. 사진은 보고서 130쪽에 실린 이미지. 이유경 제공

“나는 게이머(Gamer)다. 삶이 부재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삶을 향유하기 위해서다.”

타이 게이머 쁘라윳(가명)은 “더 많은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우리들의 집”이라 부른다. 그는 최근 만만찮은 적과 사이버 전쟁 중이다. 인터넷 검열에 혈안이 된 군사정부가 그의 상대다. F5, 즉 ‘새로고침’을 내건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스스로를 ‘F5 사이버 전사’라 부르는 2만여 명의 유저가 드나들고 있다. 모두 “싱글게이트웨이 인터넷 방화벽(Single Gateway Internet Firewall)을 반대하는 시민들”이다.

타이 온라인 공간이 최근 들썩이고 있다. ‘싱글게이트웨이’라는 이름하에 군정이 조용히 추진해온 온라인 검열 프로젝트가 발각됐기 때문이다. 9월22일, 한 트위터리안(@Sik***u)의 트위트가 뜨면서 웅성거림은 시작됐다. “타이 내각이 (특정) 사이트 차단과 정보 통제를 위해 정보통신기술부(MICT·정통부)에 싱글게이트웨이를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트위트에는 관련 링크가 붙었다. 이 트위터리안의 눈썰미가 아니었다면 홍보처 사이트 구석에 처박혀 잘 보이지 않았을 포스팅이었다.

트위터리안이 발견한 군정의 은밀한 계획

이렇게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싱글게이트웨이 안은 6월30일 내각회의 때부터 테이블에 오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14일 회의에서는 ‘긴급히 시행하라’는 쁘라윳 총리의 명령이 있었고, 8월4일에도 의제로 다시 올랐다. 그리고 같은 달 27일, 정통부 관련 부서들은 진척 상황을 총리에게 보고하도록 지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내각회의 문건에는 “부적절한 웹사이트와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정보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분명한 목적을 담았다. 9월1일, 프로젝트는 내각에서 승인됐다. 약 3주 뒤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기 전까지 이를 발표한 이도, 주목한 이도 없었다.

싱글게이트웨이는 인터넷 서버제공자(ISP)망을 정부 소유 통신사로 단일화하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인터넷 공간에 오고 가는 트래픽의 길목을 정부 소유 통신망으로 일원화해 해외에서 유입되는 정보까지 더 수월하게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 구상이 드러나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은 게임 커뮤니티다. 타이의 온라인 게이머는 2014년 현재 997만 명으로 타이 전체 인구의 6분의 1 정도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타이 군정의 사이버 검열 정책에 저항하고 있다.


공격을 주도한 게이머 쁘라윳은 기자와의 메신저 인터뷰에서 현재의 ‘사이버 전쟁’을 “독재정권과 온라인 커뮤니티 간의 전쟁”이라 정의했다. “공격은 계속된다. 정부가 내각 차원에서 이 안을 철회하는 문서를 공표할 때까지.” 그가 밝힌 사이버 전사들은 “게이머이고, 학생이며,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이다. 온라인 상인들까지 들고일어난 데는 이유가 있다. 싱글게이트웨이가 도입되면 극도로 제한된 서버가 모든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기술적·물리적 문제가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온라인 상인들의 생계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저항은 온라인 서명으로 시작됐다. 20만 명을 목표한 서명은 2주 만에 15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디도스 공격이 진행됐다. 9월30일 밤 10시부터 게이머가 주축인 사이버 활동가들은 정부 부처 사이트 여섯 곳에 동시 접속해 해당 사이트를 다운시키는 방식으로 1차 공격을 감행했다. 게이머들은 검열을 주도해온 정통부, 총리실, 국방부는 물론 국내치안작전명령부(ISOC)까지 공격 리스트를 사전에 공지했다. 게이머들이 공격한 정부 부처 홈페이지는 이날 밤부터 다음날 낮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온라인 전사들 정부 사이트 공격

싱글게이트웨이 정부 안에 반발하며 게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익명의 사이버 전사들이 타이 군정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싱글게이트웨이에 반대하는 시민들’ 페이스북

군정 치하 타이 사회의 검열과 통제는 이미 가공할 수준이다. 임시헌법 제9조에 따라 계엄령 지역에서는 메시지, 편지, 통화, 소지품, 모든 종류의 교신 내용을 당국이 검열하고 통제할 수 있다. 시간적 제약도 없고, 영장도 필요 없다. 지난해 5월 쿠데타 이후 적용되기 시작한 임시헌법 제44조는 “공공질서와 국가안보, 왕실 등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군청 최고 기구인 평화질서국가평의회의 의장(총리)이 어떠한 명령과 조치도 발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군정이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이 온라인이다.

법률 시민단체 아이로(iLaw)에 따르면, 군정이 컴퓨터 범죄 및 왕실 모독법 혐의자를 체포하기 위해서는 해당 글을 올린 사람의 아이피, 해당 아이피를 사용하는 사람의 집주소와 실명, 그리고 증거물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ISP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아이로 활동가인 잉칩앗차놋은 “ISP가 복수로 존재하는 현재의 환경은 (군정으로선) 검열이 힘들다”고 말했다.

‘해외 정보 유입’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싱글게이트웨이 구상에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 이후 왕실모독성 내용물 게시로 폐쇄된 사이트는 대략 10만 개 이상이다. 대부분이 해외 사이트다. 이번 싱글게이트웨이 관련 문건에서도 ‘해외 정보 유입을 통제하겠다’는 뜻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타이는 페이스북 사용자가 하루 평균 3400만 명, 사용 시간 하루 평균 2시간35분으로 전세계 평균치를 웃돈다. 동남아에서는 가장 활발하다. 그러나 싱글게이트웨이가 실행되면 해외에 서버를 둔 페이스북 등의 게시 정보도 모두 타이 정부가 검열할 수 있다.

여러 저항을 의식해서인지 쁘라윳 총리는 싱글게이트웨이 관련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10월9일 금요일 저녁 8시. 보통은 연속극을 하는 황금시간대이지만 금요일만은 쁘라윳 총리의 훈화방송에 해당하는 <행복을 국민에게>라는 프로그램이 고정으로 방영된다.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싱글게이트웨이’에 대해 총리는 “구상 중인 아이디어였을 뿐인데 그 와중에 문건이 새고 보도가 마구 나갔다”며 내각의 결정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인권 존중과 법치의 틀에서 이 프로젝트가 가능하다면 진척할 것이고 위배되면 실행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아직 확정된 건 없다”고도 말했다.

F5 사이버 전사들은 ‘싱글게이트웨이’ 안을 전면 폐기하지 않으면 2차 저항을 시작하겠다고 선포했다. ‘전면 폐기’의 데드라인은 10월14일 밤 11시30분으로 정했다. 10월14일 밤 11시10분. 게이머 쁘라윳은 20분 뒤 “외무부를 먼저 공격하자”고 제안했고 데드라인이 되기도 전에 외무부 사이트는 다운됐다. 그리고 정통부 사이트 다운이 이어졌다. 이어 쁘라윳의 사이버 전사들은 “독재정부와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쁘라윳 총리가 임시헌법 제44조를 남용하여 반정부 활동가들을 잡아 가두는 행위를 중단할 것”과 “싱글게이트웨이를 기획한 관료들의 사퇴”를 요구했다.

총리 “국민이 국가·정부 모독 글 쓰지 말라”

쁘라윳 총리는 10월19일, 열흘 전 <행복을 국민에게>를 통해 생중계됐던 자신의 말을 사실상 주워담았다. ‘싱글게이트웨이’ 추진을 계속 부인해온 부총리와 정통부 장관의 말도 뒤집었다. “싱글게이트웨이를 하지 말자는데 그러면 국민이 국가와 정부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부터 쓰지 말라. 그러지 않을 거면 우리가 무슨 수단을 쓰든 상관치 말라.”

총리의 말에 사이버 전사들은 10월22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전면전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날 군정 싱글게이트웨이 안에 가장 협조적인 국영텔레콤사를 해킹하고 인증샷을 올렸다. 사이버전 사령관 쁘라윳이 쓴 대로 “이건 진짜 전쟁이다. 이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방콕(타이)=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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