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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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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도 정글도 모두 ‘죽음의 캠프’

타이 경찰→버마 브로커→타이 브로커→국경마을 주민… 두 번 어쩌면 세 번 거래된 로힝야족 보트난민 라피크의 탈출기가 드러내는 난민 매매의 음산한 비즈니스
등록 2015-06-19 07:44 수정 2020-05-02 19:28
5월29일, 버마 정부가 서부 아라칸주 마웅도 타운십 인근 해역에서 727명의 보트난민들을 자국 해군이 구조했다고 밝히며 공개한 사진. 버마정보부(Ministry of Information)

5월29일, 버마 정부가 서부 아라칸주 마웅도 타운십 인근 해역에서 727명의 보트난민들을 자국 해군이 구조했다고 밝히며 공개한 사진. 버마정보부(Ministry of Information)

5월 초, 버마(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보트난민 라피크(37)가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 사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2600말레이시아링깃(약 77만원)의 ‘몸값’을 호소했을 때 가족들은 그다지 반가운 기색이 아니었다. 이유가 있다. 한 달 전쯤 ‘호랑이숲’으로 통하는 타이-말레이시아 국경 정글에서 라피크는 이미 ‘몸값’ 8350링깃(약 250만원)을 지불했다. 그래도 풀려나지 않자 가족들은 라피크가 죽은 걸로 여겼다.

라피크가 탈출을 감행한 건 4월 하순께다. 난민들의 몸값이 거래되는 인신매매 현장인 ‘정글캠프’에 6개월 넘게 갇혀 있던 로힝야 여성 2명, 방글라데시인 2명을 포함해 9명이 함께였다. “호랑이에게 잡히든 가드에게 잡히든 이미 죽은 목숨이라 생각”하고 탈출했다. 그런데 일행은 국경마을 주민에게 잡혔다. 주민은 가축 우리에 라피크 일행을 이틀 동안 가둔 뒤 말레이시아 북부 케다주 알로르세타르로 직접 차를 몰아 로힝야 브로커에게 일행을 넘겼다. 여기서 라피크만 몸값 2600링깃을 내고 풀려났다. 라피크는 “8명이 돈을 못 냈다면 아직 브로커 손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 있다면” 말이다.

박해로부터 탈출할 수단이라곤 배밖에 없는 로힝야 난민들, 그 난민들 틈새로 서서히 파고든 방글라데시 이주민들. 이들을 실어나르던 밀항선은 지난 2년여 급격히 분주해졌고 사람이 돈으로 보이는 ‘꾼’들을 점점이 이어놨다. 그 점들을 두루 거친 라피크 사례는 아주 고약했다.

몸값, 탈출, 다시 몸값

라피크는 두 번, 어쩌면 세 번 거래됐다. 첫 ‘몸값’ 지불 뒤 풀려나지 않았던 이유도 당시 타이 브로커가 전 버마 브로커에게서 라피크를 샀다며 몸값을 두 배 요구해서다. 라피크는 중간 버마 브로커에게 자신을 포함한 200명의 보트난민을 넘긴 이는 타이 경찰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600명을 태운 배가 타이 해안에 도착했고 8일 동안 바다에 떠 있었다. 9일째 되는 날 작은 보트가 와서 절반을 실어날랐다. 이틀 뒤 그 배가 다시 와서 나머지 절반을 실어나르려 할 때 타이 경찰이 나타났다. 걸렸구나 싶었는데 돈 얘기부터 하더라. 경찰은 7만밧(약 230만원), 브로커는 5만밧(약 165만원)을 요구했다. 합의가 안 됐고 전부 경찰서로 연행됐다.”

좁은 경찰서에서 8일을 보낸 뒤 널찍한 이민성 감호소로 이송됐다. 압둘이라는 이름의 주민은 거의 매일 사식을 넣어줬다. 두 달쯤 흘렀을까, 경찰은 “이제 당신들을 말레이시아로 보내주겠다”며 난민들을 5인1조로 만들어 해안가로 이송했다. 이민성에서 해안가까지는 경찰차로 30분밖에 안 걸렸다. 바다에서 이들을 맞이한 게 바로 버마 브로커다. 버마 브로커는 이들을 정글로 데려갔고 타이 브로커에게 넘겼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호랑이숲’에 이르렀다.

아체 지방 쿠알라랑사 항구에 마련된 캠프에 231명의 로힝야 난민과 425명의 방글라데시 이주자들이 있다. 모두 5월15일 아체 어부들이 구조한 보트난민이다. Carlos Sardina Galache/Geutanyoe Foindation

아체 지방 쿠알라랑사 항구에 마련된 캠프에 231명의 로힝야 난민과 425명의 방글라데시 이주자들이 있다. 모두 5월15일 아체 어부들이 구조한 보트난민이다. Carlos Sardina Galache/Geutanyoe Foindation

타이 경찰이 돈을 받고 이들을 넘겼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이 ‘넘기기’ 관행을 잘 아는 익명의 제보자는 과의 통화에서 버마의 다양한 종족 출신들이 감호소에 갇힌 로힝야를 ‘돈 내고 석방’시킨 뒤 브로커에게 다시 판다고 말했다.

타이 당국이 보트난민을 브로커에게 넘겼다는 증언은 물론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은 제1011호 ‘돈맛을 알아버린 국경’을 통해 2012년 후반 같은 경험을 한 ‘살림’(가명) 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 2013년 12월5일 역시 ‘타이 이민감호소 로힝야 난민 제거 비밀 정책’이 ‘옵션 투’라는 이름으로 그해 9월부터 시행됐다고 보도했다. 난민이든 이주노동자든 모두 ‘불법체류자’로 보는 타이 당국은 이미 ‘부드러운 추방’(Soft Deportation)이라는 이름으로 ‘본국 송환 사기극’을 여러 차례 벌여왔다.

라피크가 ‘부드러운 추방’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2월 말이나 3월 초는 타이 당국이 단속 강도를 높여가던 시기였다. 뒤이어 정글캠프가 공개됐다. 최근에는 군 고위 간부 마나스 꽁팬 중장(Lt. Gen. Manas Kongpaen)까지 조사 대상에 올렸다. 2009년 타이 해안가에 도착한 로힝야 난민 보트의 엔진을 제거하고 바다로 밀어냈던 그 장본인이다. 그러나 타이 당국이 단속 대상과 ‘협조’ 관계를 맺고 보트난민을 건넸음을 드러내는 라피크의 흔적은 단속의 신뢰성을 또다시 무너뜨리고 만다. 이와 관련해 은 ‘옵션 투’ 정책의 진원지로 알려진 라농 이민감호소를 비롯해 타이 남부 5개 이민성 감호소에 보트난민 이동 경로에 관한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전자우편을 띄웠다. 기사를 마감하는 6월11일 현재 어디서도 답변은 없다.

타이 정부, 단속하나 협조하나

30여 개의 무덤과 7개의 정글캠프가 세상을 경악시킨 지 한 달이 넘었다. 5월24일 말레이시아 쪽 국경 페를리스 지방에서는 타이 쪽보다 훨씬 많은 139개의 무덤과 28개의 정글캠프가 발견됐다. 단속이 뜰 때마다 캠프를 옮겨 8~9개를 거쳤다는 라피크는 브로커 ‘도우미’로부터 정글캠프가 120개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로힝야 전문 리서치를 해온 인권단체 ‘아라칸 프로젝트’는 “대부분의 정글캠프가 타이 쪽에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더 이상 ‘정글의 발견’은 없다. 양쪽 모두 일회성으로 끝났다. 그래서 더더욱 라피크는 ‘정글피플’ 걱정이 태산이다. 함께 탈출한 8명은 물론 탈출 직전까지 두 달간 머물렀던 호랑이숲 속 800~900명의 상황이 몹시 궁금하다. 식량도 물도 없어 “이파리 먹으며 버텼던” 그곳은 고문, 아사 그리고 성폭행으로 오싹하기만 한 죽음의 캠프였다. 라피크 자신도 하루 5명의 무덤을 팠던 날도 있다. 그 죽음의 캠프에서도 생명은 태어났다.

“2주 전(5월 중순께) 타이 쪽 정글에 아직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정글캠프에 있는지 주민 가옥에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들 브로커는 말레이시아에 있지만 (정글피플을) 수용하고 감시할 인력은 부족하지 않다.”

‘아라칸 프로젝트’ 크리스 리와는 군경, 공무원은 물론 주민들, 고무농장 주인, 땅 주인 등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연루된 난민 매매 비즈니스의 음산한 면모를 시사한다. 푸껫 지역 언론 기자 추미마 시다사띠안 역시 강조하는 바다. 로힝야 보트난민 문제를 누구보다 오래 취재해온 그는 6월4일 타이외신기자클럽 포럼에서 “더 이상 정글캠프가 없을 거라 보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캠프 자체는 철거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연루돼 있다. 40명, 60명, 많게는 100명까지 로힝야를 숙박시키며 브로커에게 협조해온 이들이다.”

1800명 보트난민 구한 건 아체 어부들
아체 지방 랑사 인근의 베이은 캠프에서 로힝야 어린이가 잠들어 있다. 아체 지역에는 구조된 보트 난민을 위해 4개의 캠프가 마련되어 있다. Carlos Sardina Galache/Geutanyoe Foindation

아체 지방 랑사 인근의 베이은 캠프에서 로힝야 어린이가 잠들어 있다. 아체 지역에는 구조된 보트 난민을 위해 4개의 캠프가 마련되어 있다. Carlos Sardina Galache/Geutanyoe Foindation

유엔난민기구(UNHCR)는 6월 첫쨋주 현재 바다 위에 표류 중인 보트난민 수를 2천여 명으로, 구조된 인원은 48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1800명가량이 인도네시아 아체 지방 어부들에 의해 구조됐다. 현재 4개 난민캠프가 형성된 아체의 북부와 동부는 아체 분쟁 30년간 가장 고통받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아체 어부들이야말로 인도주의로 보트난민을 품고 있다. 이들에겐 관습법이 있다. 바다에서 무엇을 발견하든, 사람은 물론 생명체는 무엇이든 육지로 데려온다. 그 발견물이 주검일지라도.” 아체 분쟁 시절부터 아체 난민 구호를 펼치다 최근 보트난민 구호에 매진하고 있는 ‘규타노웨 재단’(Geutanoyoe Foundation) 국제부장 릴리안 판의 말이다.

또 다른 대규모 ‘구조’는 아이러니하게도 버마 해군에 의해 벌어졌다. 버마 정부는 5월21일, 29일 각각 208명과 727명을 태운 보트가 버마 아라칸주 마웅도 타운십 인근 해역에서 구조됐다며 공개했다. 그런데 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방글라데시 국경에 베이스를 둔 는 5월25일, 208명이 탔다고 공개된 배에 본래 360명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5월19일 밤 버마 고위 관료가 배에 접근해 버마에서 온 로힝야가 있는지 체크했다. 로힝야들은 작은 어선에 태워져 어딘가로 사라졌다.” 가 인용한 방글라데시 보트난민의 말이다. 다음날 도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은 버마 해군이 배를 해안가로 데려오기 전 브로커들이 로힝야만 골라서 어딘가로 데려갔다는 로힝야 여성의 말을 인용했다.

그동안 “보트난민은 버마 출신이 아니다”라고 주장해온 버마 정부는 자신들이 구조한 첫 보트 208명 중 200명은 ‘벵갈리’, 8명만이 로힝야라고 했다. 8명 모두 해안가에서 거리가 먼 아라칸주 촉토 지역 주민이다. 유엔을 포함한 복수의 정보통에 따르면 8명 모두 알 수 없는 장소에 구금 중이다.

버마 해군이 구조한 로힝야는 어디로

그리고 ‘벵갈리’ 200명 중 방글라데시 정부가 신원조회를 거쳐 확인한 150명은 6월8일 방글라데시로 송환됐다. 이 중에는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캠프 출신 중 (신분증이 있는) 등록 난민도 3명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50명, 버마 정부가 애초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분류했던 이들은 자신을 증명할 아무런 ‘종이’도 갖고 있지 않다. 시민권 없는 아라칸주 로힝야 주민인지, 시민권도 난민카드도 없이 방글라데시 국경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사는 비공식 로힝야 난민인지 알 수 없다. 지난 한 달여 아시아의 수치로 달아오른 보트난민 사태는 결국 근본적 물음으로 되돌아왔다. ‘종이’ 없는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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