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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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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 말 믿은 대통령의 도박 그리고…

“대통령이 선거에 지면 물러나는 것 맞나”는 질문 속에 치러진 스리랑카 선거…
타밀·무슬림 등 소수 커뮤니티 ‘캐스팅보트’였으나
커뮤니티 상황이 나아질 신호는 없어
등록 2015-01-21 06:34 수정 2020-05-02 22:17

10년간 절대 권력을 구축해온 그가 얌전히 물러날까. 1월8일 치러진 제7대 스리랑카 대선을 앞두고 여권 후보였던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입방아에 올랐다. 거리 민심도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2010년 조기대선에서 마힌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전년도에 종식된 전쟁의 영웅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임기를2년 남겨두고 3선을 노리며 치른 이번 조기 대선에서도 전쟁과 안티테러리즘 캠페인으로 호소했다. 그러나 강도높은 부패와 가문독재 정치에 지친 측근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성공하지 못했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2010년 조기대선에서 마힌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전년도에 종식된 전쟁의 영웅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임기를2년 남겨두고 3선을 노리며 치른 이번 조기 대선에서도 전쟁과 안티테러리즘 캠페인으로 호소했다. 그러나 강도높은 부패와 가문독재 정치에 지친 측근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성공하지 못했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반라자팍사 전선’, 10년 만에 정권 교체

“선거에서 지면 그가 물러나는 거 맞냐고 묻는 이가 많았다. 30년 기자 생활에 수많은 선거를 취재해왔지만 그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스리랑카 영자 주간지 전 편집장인 락슈만 구나세케라의 말이다. 선거 직전 사재기로 인해 생필품과 채소 가격이 오른 건 시민들의 불안 심리를 반영했다. 그만큼 치열하고 예측 불가했던 선거에서 마침내 마힌다는 패배했다.

1월9일, 마힌다 대통령이 평화적 정권 이양을 약속했다는 긴급보도가 뜬 건 현지 시각 6시20분께. 개표 마무리까지는 절반도 더 남은 시점이었고 격차도 3%포인트로 좁았으니 패배를 인정한 게 의아했다. 이후 하나씩 드러나는 당시 상황은 마힌다가 측근들과 쿠데타를 시도하며 끝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 했음을 암시한다.

1월12일 신임 외무부 장관에 취임한 망갈라 사마라위라에 따르면 개표가 한창이던 1월9일 새벽 3시께 마힌다는 위반엔 위자야티라케 법무부 장관을 대통령궁으로 소환했다. 쿠데타를 위한 ‘서류 절차’를 위해서였다. 마힌다의 동생 고타바야 전 국방부 장관은 군 장성들을 접촉하며 동원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은 물론 육군 총사령관, 경찰청장 모두 쿠데타 협조를 거부했다. 1월13일, 망갈라 장관은 마힌다 전 대통령을 반국가 쿠데타 음모죄로 범죄수사국(CID)에 고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범죄수사국의 ‘4층’은 마힌다 집권 기간에 고문실로 악명을 떨쳤던 곳이다.

“국정 운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능했고, 가문·측근들의 부패와 독재정치가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기자 락슈만은 마힌다가 선거에서 패배한 건 놀랍지 않지만 패색이 짙은 선거를 점쟁이 말만 듣고 강행한 게 더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대선은 여야가 바뀐 정권 교체가 아니다. 여당 후보는 마힌다였지만 그에 도전한 인물은 같은 당인 스리랑카자유당(SLFP)의 사무총장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다. 마이트리팔라는 무능한 지도부에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야당 민족연합정당(UNP)과 손잡고 ‘범야권’ 후보로 나섰다. 그러나 마이트리팔라도 그와 함께 범야 캠프로 몰려간 27명 자유당 의원들도 탈당은 아니라고 고집했다. 선거는 끝났고 그들은 여전히 자유당 의원으로 남아 있다. 4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자유당은 계파싸움에 돌입했다. 전 당대표이자 이번 선거에서 ‘범야’ 캠프에 가담한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전 대통령과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지도부 자리를 놓고 다투는 중이다. 얄궂게도 두 사람의 부친은 1951년 이 당을 공동 창당한 이들이다.

북부 타밀지역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꾸준히 군사화되었다. 지방 정부의 관료직도 군장성들이 도맡았고 군캠프와 각종개발프로젝트로 인한 토지수탈(Landgrab) 그리고 심각한 인권침해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골목골목 배치된 군은 민간인 5명당 1명꼴로 배치되어있어 민간인의 삶을 감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비군사화가 타밀족들에겐 중요한 이슈이지만 신임정부는 군을 철수시킬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북부 타밀지역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꾸준히 군사화되었다. 지방 정부의 관료직도 군장성들이 도맡았고 군캠프와 각종개발프로젝트로 인한 토지수탈(Landgrab) 그리고 심각한 인권침해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골목골목 배치된 군은 민간인 5명당 1명꼴로 배치되어있어 민간인의 삶을 감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비군사화가 타밀족들에겐 중요한 이슈이지만 신임정부는 군을 철수시킬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마힌다 찍은 무슬림 한 명도 없더라”

가문 독재에 등 돌리는 측근들을 보면서도 점쟁이 말에 의존할 만큼 현실에 눈감았던 마힌다는 사실 2년의 임기를 더 남겨두고 있었다. 그는 2010년에도 조기 대선을 치렀고 ‘전쟁영웅’의 이미지를 활용해 재선되는 재미를 봤다. 3선을 노린 그는 이번에도 ‘전쟁’을 팔았다.

“입만 열면 테러리즘,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 재부활 가능성, 그리고 국제사회가 인권의 이름으로 나라를 분열시킨다는 얘기를 반복적으로 해댔다. 국영 언론은 마힌다 후보에게 거의 100%나 다름없는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며 전쟁 장면을 보여주고 스토리를 재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끔찍한 전쟁의 기억을 안고 사는 타밀족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트라우마 유발이었다.” 독립적 싱크탱크인 ‘국가평화위원회’ 위원장 제한 페레라 박사의 말이다.

제한 박사는 범야 캠프에도 싱할라 민족주의 강경파들이 있지만 선거 담론이 달랐다고 말했다. 예컨대 2009년 막바지 전쟁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또 다른 전쟁영웅 사라스 폰세카 전 육군 총사령관이나 대타밀 전쟁에 강경 목소리를 냈던 민족유산당(JHU) 모두 “전쟁은 끝났고, LTTE는 사라졌으며, 이제는 반부패 굿 거버넌스에 힘을 쏟자”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마힌다 대통령의 전쟁 팔기에 치가 떨렸을 동북부 타밀족들은 이번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체 인구의 15~20%를 차지하는 타밀족의 투표율은 70%를 웃돌았고 타밀족 주류인 와우니아 지방은 98.5%의 표가 마이트리팔라에게 갔다. 2005년 마힌다 라자팍사의 첫 당선이 당시 LTTE의 선거 보이콧 때문이었다면 이번 선거에서 마힌다가 패배한 건 타밀족들의 ‘반라자팍사’를 위한 네거티브 투표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다른 소수 커뮤니티 무슬림들(9% 내외)의 투표를 두고도 시끌벅적했다. 2012년 이래 고조되던 반무슬림 혐오 캠페인과 폭력 사태로 무슬림 정당들은 집권 연정을 떠났고, 이번 선거에서 전부 ‘범야’ 캠프에 가담했다. 정권의 비호를 받아온 불교극단주의 조직 ‘보두 발라 세나’(BBS·‘불교도의 힘’이라는 뜻)의 폭력은 지난해 6월 남서부 카루타라 지방에서만 4명의 사망자와 80명의 부상자와 수천 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기자 락슈만은 “마힌다 후보를 찍었다는 무슬림은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부 마나르 천주교 성당에서 기도하는 타밀족 (2010년). 지난 12-14일까지 스리랑카를 방문한 프란시스 교황은 마나르 등 북부지역 종교 기념비등을 방문하고 평화의 메시지는 물론 전쟁의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북부 마나르 천주교 성당에서 기도하는 타밀족 (2010년). 지난 12-14일까지 스리랑카를 방문한 프란시스 교황은 마나르 등 북부지역 종교 기념비등을 방문하고 평화의 메시지는 물론 전쟁의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같은 정부 다른 얼굴”

그러나 새 정부하에서 소수 커뮤니티의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신호는 찾아보기 어렵다. 콜롬보의 한 인권운동가는 “숨만 조금 더 쉴 수 있을 것”이라 말했고, 북부 마나르의 한 천주교 사제는 “이번 선거는 우리 타밀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주류 싱할라족의 3분의 2 이상은 여전히 마힌다 진영에 표를 던졌다는 점을 각인할 필요가 있다. 마힌다 후보가 얻은 48%의 높은 득표율까지 고려하면 그의 ‘전쟁정치’가 싱할라족들 사이에서 여전히 호소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승리한 전 ‘범야’ 진영을 뜯어보면 향후 정국 운영이 삼천포로 갈 모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대타밀 전쟁을 선동했던 민족유산당이 있는가 하면 한때 LTTE의 정치 날개 노릇을 했던 타밀민족연합(TNA)도 있다. 선거 직후 민족유산당은 타밀과 무슬림들이 범야 후보의 당선에 기여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선거캠프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범야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극좌민족주의 정당 인민해방전선(JVP)이 있는가 하면 1980년대 인민해방전선의 무장투쟁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우익자본주의 정당 민족연합정당이 있다. 일부 의원이 범야 캠프에 참여한 스리랑카 자유당의 내분은 앞서 기술한 대로다.

“전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라자팍사 정부를 무너뜨릴 재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실종 문제를 깊게 다뤄온 인권운동가이자 타밀 정치인 마노 가네샨(민주인민전선(DPF))은 타밀 정치인들이 범야 캠프에 동참한 게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이트리팔라 신임 대통령은 1월10일 취임 선서 당시 자신의 당선을 위해 헌신적으로 뛴 마노의 타밀 정당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았다. 그의 121쪽 공약집 어디에도 소수민족 문제에 대한 비전은 없고 ‘당선 후 100일 프로그램’ 어디에도 북부 타밀족들이 직면한 현안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오히려 그는 민간인 5명당 군인 1명꼴인 높은 군인 밀도를 당분간 건드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2009년 전쟁 막바지 국방부 장관 대행을 맡기도 했던 그의 이력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새 정부는 북부지방 주지사였던 찬드라시라 대령을 팔리하카르(HMGS Palihakkar) 전 유엔 대사, 즉 민간 주지사로 대체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신임 대통령이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전쟁범죄 조사에 응할 가능성은 제로다. 국제단체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엔 대못을 박았다.

북부 마나르 타밀족 여학생들(2010년). 4만에서 10만으로 추정되는 타밀반군과 민간인들이 학살된 전쟁을 선거운동의 주 담론으로 삼은 마힌다 라자팍사 캠프는 친정부 언론을 통해 전쟁 트라우마를 야기했다는 비판이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북부 마나르 타밀족 여학생들(2010년). 4만에서 10만으로 추정되는 타밀반군과 민간인들이 학살된 전쟁을 선거운동의 주 담론으로 삼은 마힌다 라자팍사 캠프는 친정부 언론을 통해 전쟁 트라우마를 야기했다는 비판이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타밀인 기본 생활 복원 먼저”

거침없는 정치평을 뱉어온 타밀계 영국 팝가수 M.I.A는 1월13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시에 그는 현실적 문제도 간과하지 않았다.

“나는 라자팍사 정권이 자행한 전쟁범죄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타밀인들이 기본 생활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본명 마야 아룰프라가삼. 어린 시절 전쟁 난민이었던 M.I.A는 요즘 전세계 타밀족들의 대변인처럼 떠오르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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