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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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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말해지지 않은 진실

폴란드, 옛 소련군의 독일 여성 성폭행 조각상으로 논란
한국과 달리 자국 여성에 대한 소련군 성적 학대 의제 안 돼
등록 2014-01-04 07:42 수정 2020-05-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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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된 폴란드 그단스크 미술아카데미 학생 예지 보단 슘치크의 작품(위쪽)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념조각상.인터넷 화면 갈무리,한겨레 자료

논란이 된 폴란드 그단스크 미술아카데미 학생 예지 보단 슘치크의 작품(위쪽)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념조각상.인터넷 화면 갈무리,한겨레 자료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 문제가 한·일 두 나라 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있는 가운데, 오랜 기간 이웃한 소련과 독일로부터 핍박을 받아온 경험을 지닌 폴란드의 한 역사학 교수가 주변국과의 과거사 정리 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글을 에 보내왔다.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의 번역 도움을 받아 소개한다. _편집자

최근 폴란드에서는 조각작품 하나를 둘러싸고 큰 논란이 일었다. 논란 대상이 된 조각상은 폴란드 그단스크 미술아카데미 학생인 예지 보단 슘치크의 작품으로, 옛 소련 병사가 독일 여성을 성폭행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젊은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까지 큰 관심을 끈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경찰이 공공장소에 설치된 이 조각상을 급히 철거했으나, 관련 사진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논란이 한창이던 당시 필자는 때마침 ‘1989년 이후 중·동유럽 지역에 건립된 기념관’을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독일 바이마르시에 머무르고 있었다. 학술대회 강연에서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 독재 청산재단’의 아나 카민스키 소장은 한국의 많은 예술가들이 과거 일본군의 성적 학대 사건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았고, 이것이 일본대사관의 반응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흩어진 자료, 사라진 증인들

슘치크의 조각상은 꽤나 충격적이다. 이 작품의 미적 요소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몇몇 언론은 미적 가치를 평가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 조각상이 노골적인 표현을 통해 효과를 거뒀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슘치크의 조각상처럼 노골적이고 단호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은 필자도 처음이었다. 독일·헝가리·체코·폴란드 등지의 여성을 상대로 한 옛 소련군의 성적 학대 행위는 그간 기껏해야 논문이나 회고록, 문학작품에서만 다뤄져왔다. 게다가 이런 주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것조차 얼마 되지 않았다.

앞서 폴란드의 시사주간지 는 전쟁 중 자행된 성적 학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종종 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 예로 2011년엔 보이치에흐 스마조프스키 감독의 (Rose)라는 영화가 상영됐는데, 이 영화는 연출 방식이나 시각적인 표현 면에서 관객에게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의 주인공인 루자는 소련군으로부터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슘치크의 행위는 단순히 기존 틀을 깨는 예술적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려는 의도를 지닌, 무례하고 지나친 행위라고 보아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애초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르게 역효과가 난 것뿐일까? 그렇진 않다고 본다. 어떤 세대든 역사를 고찰하고 역사에 대한 개인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슘치크의 작품이 다른 예술적 도전으로 이어지거나, 이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담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당시 사건들은 다루기엔 너무 상처가 많은 주제일뿐더러, 직접 보고 겪은 시대의 증인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증명이 될 만한 자료의 출처는 많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그나마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남아 있는 기억을 바탕으로 각각의 사건을 얼추 짐작하고 묘사해보는 일뿐이다.

한국과 폴란드의 비슷한 측면

이와는 달리, 일본군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던 한국의 피해여성들은 다른 길을 택했다.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미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기적인 거리시위를 진행해왔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 전통의상을 입은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이다. 소녀의 옆에는 빈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기념비는 간접적이고 암시적으로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보는 사람이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한국에서 젊은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성적 노예’로 강제 동원됐다는 사실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과거 문제들 중 하나다. 일본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 입을 다물고 있고, 역사 교과서에서도 이를 전혀 다루지 않는다. 일본 총리들은 19세기와 20세기 전쟁에서 숨진 이들을 떠받들기 위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 몇 년 전 필자도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굉장히 꺼림칙한 인상을 풍기는 곳이었다. 당시 한 도쿄대 여학생이 우리 가이드를 맡았다. 가이드는 웬만하면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하지 말라고 했으나, 우리가 한사코 가보겠노라고 했다.

‘위안부’(慰安婦). 1930년대 말까지 일본군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하고 자유를 박탈당한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 피해자 수는 약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피해자들은 일본군으로부터 고문당하고 성적 노예 생활을 강요받아야만 했다. 피해자는 중국·대만·말레이시아·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의 여성들인데, 무엇보다 한국 여성의 수가 가장 많았다. 사실관계가 이렇게나 명백한데도, 일본 정부는 단 한 번도 과거의 죄를 인정하거나 뉘우치는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 일본은 1995년에야 처음으로 정부의 출자금과 개인 기부금을 모아 위안부 문제를 위한 재단을 설립했다. 이로써 어느 정도 유감을 표하기는 했으나, 피해자들은 금전적 보상을 진정한 보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한국의 이러한 태도는 폴란드가 과거 독일의 강제 노역에 대한 피해 보상을 받아내려 노력했던 모습과 여러모로 비슷한 측면이 있다.

위안부 문제, 더 자주 논의돼야

가끔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나라로 시선을 옮겨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무거운 과거사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참 유익한 일이다. 일본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주면서도 절망감을 안겨준다. 앞으로 위안부 문제는 더 자주 논의되어야 한다. 필자는 언젠가 꼭 한 번 ‘한·중·일 공동 역사 교과서’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다. 이미 몇 년 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한 반발로 동북아 3국 공동 역사 교과서가 출간된 바 있다. 당시 영어 번역본까지 출간됐음에도 요즘은 인터넷에서 검색해봐도 더 이상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일본 정부의 대화 의지 부재로 인해 공동 역사 교과서라는 주제가 점차 그 현실성을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브로츠와프(폴란드)=크시슈토프 루흐니에비치 브로츠와프대학교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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