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7월18일 이른 아침 행정 수도인 프리토리아의 한 병원을 찾았다. 폐 감염에 따른 합병증으로 41일째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병문안을 위해서다. 면회를 마치고 나온 주마 대통령은 활짝 웃는 표정으로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섰다.
“마디바(만델라 전 대통령에 대한 존칭)께선 의료진의 치료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용태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말하자면 3·1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지기 한 해 전인 1918년 7월18일 태어났다. 이날로 95살을 맞은 그가 ‘신화’의 반열에 오른 것은 이미 오래다. 유엔이 그의 생일을 기념하는 ‘세계 만델라의 날’을 제정한 것도 벌써 4년여 전의 일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최악의 유혈 사태
27년의 기나긴 투옥 기간을 견뎌낸 그가 1990년 2월12일 석방됐을 때부터, 전세계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소수 백인 정권과 치열한 협상 끝에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를 철폐하고 1994년 5월10일 그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지구촌은 남아공의 ‘무지갯빛 미래’를 낙관했다. 노혁명가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지금, ‘포스트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20년에 다가서고 있는 남아공의 현실은 어떤 빛깔일까?
“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건가? 내 나이 벌써 팔순을 넘겼다.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이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웃으면서 무덤으로 향하도록 해줄 순 없는 건가? 오랜 세월 고문을 당하고,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고통을 참아가며 싸워온 ‘자유’가 겨우 이런 것이란 말인가!”
지난해 9월 초 남아공 최대 도시인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 행사에서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행사장 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소속 정치인들을 겨냥한 외침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투쟁의 상징 가운데 한 명으로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투투 대주교를 절규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남아공 북서부 마리카나 지역에는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다국적 광물업체 론민이 운영하는 백금(플래티넘) 광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남아공은 전세계 백금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2012년 8월16일 그곳 광산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최악의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등 현지 언론의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이날 해 질 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 중이던 광산노동자들을 겨냥해 시위 진압 경찰이 최루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대치 중이던 노동자들은 삽시간에 인근 야산 쪽으로 도망쳤다. 이와 때를 같이해 경찰이 손에 들고 있던 반자동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마리카나 학살’이다.
34명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부검 결과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는 등에 총을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도망치는 노동자들에게 총질을 해댔다는 얘기다. 사건 발생 직후 체포된 것은 총질을 해댄 경찰이 아니었다. 남아공 당국은 대대적인 검거작전에 나서, 파업 노동자 270여 명을 체포했다. 이들에게는 동료 노동자 살인 혐의가 들씌워졌다. ‘불법 파업을 주도해, 동료 노동자가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논리였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도 비슷한 논리가 횡행했다. 백인 경찰은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한 뒤, 어김없이 그 책임을 흑인 주민들에게 물었다. 여론이 들끓은 건 당연했다. 주마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비난이 봇물을 이뤘다. 결국 남아공 당국은 체포한 노동자들을 슬그머니 모두 풀어줬다.
민주화 이후 나아진 것 없는 삶의 질
마리카나 학살이 벌어진 날은 꼭 25년 전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위해 남아공 광산노동자들이 대대적인 총파업 투쟁을 벌인 기념일이었다. 당시 투쟁을 이끌었던 전국탄광노동조합(NUM)은 집권 ANC의 주요 구성단체 가운데 하나다. NUM의 지도부 가운데 상당수가 정치권에 진출해 있다. 마리카나에서 학살극이 벌어지기 전까지, NUM은 어떤 중재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 시사주간지 은 지난 3월4일 현지발 기사에서, “올 들어 다시 파업에 나선 론민 광산노동자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부르던 저항가에서 ‘백인’이 등장하는 부분의 가사를 ‘NUM’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년 세월이 만들어낸 변화다.
상황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유엔개발계획(UNDP)은 해마다 회원국의 소득과 교육 수준, 평균수명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항목의 점수를 종합 평가해 ‘인간개발지수’(HDI·1에 가까울수록 삶의 질이 높다)를 발표한다. UNDP가 지난 3월 내놓은 2013년 HDI 평가 결과에서 남아공의 HDI는 0.629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187개국 가운데 121위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직후인 1995년 남아공의 HDI는 0.650을 기록했다.
항목별로 나눠 비교해보자. 1995년 남아공의 평균수명은 59.9살이었다. 2013년엔 이보다 6.5살이나 줄어든 53.4살로 나타났다. 1990년대를 휩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창궐로 인한 기현상이다. 교육 수준은 어떨까? 2013년 남아공의 평균 취학 기간은 8.5년을 기록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절정이던 1980년대의 4.8년에 견주면 2배 가까이 늘어난 기간이지만, 1995년(8.2년)에 견주면 거의 차이가 없는 수치다. 1995년 7350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2013년 9594달러까지 늘어난 게, 그나마 HDI 순위 추락을 막아준 것으로 보인다.
성장 과실 백인들이 독식하는 구조
세계은행이 지난해 7월 펴낸 ‘남아공-기회의 불평등’이란 제목의 54쪽 분량 보고서를 보면, 남아공 경제는 ‘포스트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들어선 1995년 이후 연평균 3.4%씩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왔다. 남아공이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과 함께 이른바 ‘브릭스’로 불리는 신흥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기간이다. 문제는,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 남아공의 소득수준 상위 10%는 전체 소득의 58%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 하위 10%가 차지하는 비율은 단 0.5%에 그친단다. 하위 5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에 그쳤다. 세계은행은 보고서에서 “2008년 남아공의 소득 기준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 상태)는 0.7, 소비 기준 지니계수 역시 0.63에 이르렀다. 남아공은 전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 가운데 하나”라고 못박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에도 인종 간 소득 격차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1년 말을 기준으로 한 통계를 보면, 남아공의 인구는 약 5200만 명이다. 이 가운데 79.2%가 흑인이다. 전체의 9% 남짓인 백인을 뺀 나머지는 인도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계와 기타 ‘유색인종’으로 채워져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6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인구 10명 가운데 8명꼴인 흑인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4%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반면 백인은 전체 소득의 40%를 차지했다.
소득수준을 구간별로 살펴도 결과는 엇비슷하다. 흑인은 전체 소득 구간에 고루 분산돼 있는 반면, 백인은 거의 80%가 소득수준 상위 20%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계 등 아시아계 주민의 60%도 소득 상위 20%에 속했다. 세계은행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흑인은 토지나 금융자산은 물론 기술·교육·인맥 등 인적 자산마저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철저히 박탈됐다. 남아공의 현 빈부 격차는 명백히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남긴 유산”이라고 짚었다.
사실이다. 만델라 대통령 취임 직후, 아파르트헤이트가 꽁꽁 닫아걸었던 노동시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변변한 일거리를 찾지 못했던 흑인 노동자들이 대거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런 자리가 요구하는 숙련된 기술이나 높은 교육수준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남아공의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오랜 기간 만들어진 ‘근본적인 생산성 격차’가 존재했던 게다.
인구의 약 47% 빈곤선 이하 생활
‘포스트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엔 좀 나아졌을까? 200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남아공의 대학 진학률은 인구 6명에 1명꼴이다. 남아공 취업 연령대 흑인의 1.4%가 대학 교육을 받은 반면, 같은 연령대 백인의 대졸률은 20%에 육박한다. ‘격차’는, 줄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해마다 노동시장으로 유입되는 신규 인력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것도 골칫거리다. 세계은행은 “남아공 경제는 1995년 이후 꾸준히 3%대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같은 기간 노동시장에 유입된 신규 인력은 5% 이상씩 증가했다”며 “결국 낮은 성장으로 인한 고용 압박이란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2012년 말을 기준으로 한 남아공의 공식 실업률은 25.2%, 취업 포기자를 포함하면 33%에 이른다. 청년층 실업률은 50%에 육박한단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막을 내린 이래 1인당 국민소득(GDP)이 30%가량 늘었음에도, 빈곤율이 눈에 띄게 낮아지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아공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약 47%가 여전히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흑인 가운데 56%가 빈곤층인 반면, 빈곤층으로 분류된 백인은 단 2%에 그친단다.
상황이 이런데도 집권 ANC 지도부는 애써 눈을 감고 있다. 주마 대통령은 지난해 11월1일 의회에 출석해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빈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은 코미디다. 언론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잘 교육받았기 때문에, 자기들의 주장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저 선동만 일삼고 있다. (ANC가 집권한) 1994년 이후 빈부 격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다만 기존에 워낙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어서 그 간극을 메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일 뿐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20년, 남아공은 여전히 ‘격차사회’다. 어딜 봐도, 현실이 조만간 나아질 것이란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심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4월 남아공 인종관계연구소(SAIRR)가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2살 미만 유아를 양육하고 있는 흑인 여성 가운데 77%는 배우자가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조건의 백인 여성의 89%는 결혼을 했거나 소득이 있는 동거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격차가 되물림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파질라 파룩 남아공 시민사회정보서비스(SACSIS) 사무총장은 지난 5월24일 인터넷 매체 에 기고한 글에 이렇게 썼다.
인종·경제적 분리는 바뀐 게 없어
“남아공의 소득 최상위 계층은 여전히 백인 남성이 주도하고 있다. 소득 최하위 계층은 흑인 여성이 주류다. 흑인 여성 가운데 일자리를 얻은 이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축이다. 취업 흑인 여성 가운데 20%는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에도, 남아공 사회의 인종·경제적 분리는 바뀐 게 없어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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