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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확산, 많을수록 좋다”

“중동 정세 불안의 근본적 원인은 이스라엘 때문”이라 한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 향년 88살로 사망해
등록 2013-05-22 09:13 수정 2020-05-02 19:27

모든 핵무기는 마땅히 폐기해야 한다. 순간의 오판이, 인류라는 ‘종’ 자체를 사라져버리게 할 수도 있다. 냉전 시절 횡행하던 ‘상호확증파괴’(MAD)란 단순논법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버렸다.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전혀 다른 견해도 있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논리는 제법 정연하다. 그러니 한번 들어보자.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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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 문제의 해법 3가지

북한을 빼면, 현재 핵무기와 관련해 지구촌에서 가장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나라는 이란이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이스라엘 등 강경 대응을 주도하는 나라의 전문가들과 정책 결정권자들은 하나같이 “이란의 핵무장은 상상 가능한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한다. 물론, 전혀 다른 주장도 있다. 미국의 저명한 원로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사진)는 지난해 외교안보 전문 격월간지 7·8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란 핵 문제의 해법을 크게 3가지로 나눠 살폈다.

첫째, 제재를 포함한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이란의 핵 포기 결정을 이끌어내는 게다. 월츠는 이를 “사실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봤다.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핵무장에 자국의 안보가 달렸다고 판단하는 이상, 이란의 마음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제재 강화는 되레 안보 위기감을 키워, 이른바 ‘궁극적 억지력’(핵무기) 욕구를 더욱 키울 뿐”이란 게 월츠의 지적이다.

둘째, 이란이 무기화 직전 단계에서 핵개발 프로그램을 멈추는 게다. 언제든 신속하게 실험을 거쳐 핵무장이 가능한 수준의 기술을 확보한 채로 말이다. 월츠는 “이란으로선 핵억지 능력 확보를 통한 장점은 고스란히 취하면서도, 실제 핵무장으로 인한 정치적 고립 등 현실적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지”라고 봤다.

문제는 ‘결정적 순간’에, 이미 확보했다고 믿었던 기술력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유럽 쪽과 달리, 핵 능력 자체를 문제 삼는 이스라엘이 이를 용인하지도 않을 터다. 월츠는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이스라엘은 주특기인 ‘첩보작전’에 집중해, 어떻게든 이란의 핵 능력을 제거하려 들 것”이라고 봤다. 안보 위협이 이어진다면, 이란으로선 실제 핵무장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셋째, 현 상황을 지속해 결국 핵무장에 이르는 게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공언해왔다. 월츠는 “따져보면, 새로운 핵무장국이 등장할 때마다 강대국은 똑같은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일단 핵 보유국의 지위를 얻고 나면, 큰 문제 없이 공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꼬집었다.

그래서다. 월츠는 “중동 정세가 불안한 근본적 원인은 이스라엘이 지역 유일의 핵무장국이란 점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 “중동 불안의 원인은 핵으로 무장한 이스라엘이지, 핵무장을 추진하는 이란이 아니다”란 그의 지적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월츠가 이런 주장을 내놓은 것은, 기실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그는 1980년 발표한 ‘핵무기 확산: 많을수록 좋다’란 제목의 논문에서도 똑같은 논리를 설파한 바 있다. 앞서 그는 (1959)과 (1979) 등 일련의 저서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학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학자’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할까

한국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전과 이라크 침공(2003)에 앞장서 반대했던 그를, 학계에선 ‘구조적 현실주의(신현실주의)의 아버지’라 부른다. 그는 혼돈 덩어리인 국제정치 체제의 구조적 모순이 각국에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구조적으로 개별 국가의 선택권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본질이라고 설파했다.

월츠는 지난 5월12일 저녁(현지시각) 폐렴과 충혈성 심장마비로 인한 합병증으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향년 88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그의 평가가 새삼 궁금해진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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