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고 쓰라린 표정이 역력했다. 지난 1년간 오늘내일하며 기다려온 말레이시아 총선이 마침내 치러진 지난 5월5일 밤, 야당 연합 인민동맹(PR·파카탄 라키아트) 지도부는 9시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장에 자정이 넘어서야 나타났다. 개표 결과 집권 민족전선(BN·바리산 나시오날)의 승리로 윤곽이 잡힐 무렵이었다. 56년 장기 집권을 끝장낼 수 있는 ‘절반의 가능성’은 결국 가능성으로 그쳤다.
약속과 달리 지워지는 잉크
“역대 최대 부정선거다. 공범자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선거에서 지면 은퇴하겠다던 PR 대표 안와르 이브라힘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로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사흘 뒤인 5월8일 야당과 야당 지지자 수만 명은 쿠알라룸푸르 외곽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부정선거로 얼룩진 선거 결과 불복을 공식 선언했다. 정권 교체를 위해 사실상 야권 지지를 보여온 ‘공정선거시민연대’(버시) 역시 ‘부정선거 진상 규명을 위한 인민법정’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총선 직후부터 말레이시아 정국이 법정다툼과 장외투쟁으로 옮겨갈 조짐이다.
역대 최고 투표율(84.84%)이 말해주듯 가히 치열한 선거였다. 투표 당일 이 취재한 쿠알라룸푸르 최대 격전지 램바 판타이 지역에서도 여야 후보 사이에 날카로운 신경전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1시30분께, 한 중년 여성 유권자가 투표 2시간여 만에 잉크가 지워졌다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손톱 끝머리만 잘라내면, (투표를 했다는 표시인) 잉크 자국이 전혀 없을 정도”라는 게다.
선관위가 중복투표를 막기 위해 약속한 이른바 ‘7일간 지워지지 않는 잉크’는 손톱 밑 때만큼만 남아 있었다. 잉크가 지워질 수 있다는 건 일주일 앞서 치러진 군인들의 사전투표에서도 확인됐다. 선관위 쪽은 ‘잉크를 제대로 흔들지 않아서 그렇다’고 해명했지만, 투표 당일 말레이시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지워지는 잉크’에 관한 제보가 봇물을 이뤘다.
이보다 1시간 앞선 이날 정오께, 인도네시아계로 추정되는 이들이 15인승 승합차를 타고 2~3명의 경찰관과 함께 투표소에 나타났다. 이내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형광색 경찰복 윗옷만 입은 이들은 취재진의 질문에도, 주민들의 잇단 물음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실랑이가 이어졌다. 결국 차 안에 타고 있던 경관은 “임무 수행 중”이란 말만 남기고는 이내 사라졌다.
선관위 “여행경비 제공 불법 아니다”
선거운동 기간에 나라 안팎의 외국인들이 여당에 표를 던지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았던 터다. 야당 지지자들은 그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특히 빠따니·얄라·나라티왓 등 타이 남부 3개 주에 거주하는 타이·말레이시아 이중국적자들은 아예 ‘투표여행’을 위해 500링깃(약 18만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는 “특정 정당에 투표하라는 압력이 없는 한, 교통편의나 여행경비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란 유권해석을 내렸다. 사실 말레이시아에선 선거 때마다 ‘외국인 투표’ 문제가 불거져왔다. 다만 예전에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자가 많은 (보르네오섬 북부 말레이시아 영토인) 사바와 사라왁 주 등지에서 주로 나타났던 현상이, 치열한 접전을 벌인 이번 선거에서는 지역적 확장성을 보인 셈이다.
“선거 때만 되면 당국은 별다른 절차 없이 이주민들에게 서둘러 신분증을 발급해주고 여당 투표를 독려해왔다. 대략 1년짜리 ‘선거용 신분증’이다.” 사바주에서 선거감시 활동을 벌여온 ‘말레이시아 선거감시 네트워크’ 옹비케이(54) 활동가의 설명이다. 이번 선거에서 ‘외국인 투표’ 수는 약 4만 명으로 추정된다. 70여 개 선거구가 5% 안팎의 표차로 초접전을 벌인 점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아이렌 페르난데즈 버시 특별위원회 공동대표는 “이 문제가 자칫 ‘외국인혐오증’으로 번지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여당의 ‘돈선거’는 후안무치랄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선거일이 결정될 무렵인 1년여 전부터, BN 쪽은 월수입 3천링깃(약 100만원) 이하의 가구에 한해 500링깃의 현금을 나눠줬다. 저소득층의 민심을 말 그대로 사들인 셈이다. 선거운동 기간엔 곳곳에서 파티가 열렸다. 각종 선전물은 물론 우산·모자·셔츠·물 등이 담긴 보따리가 스스럼없이 뿌려졌다. ‘일당을 받는 자원봉사자’들은 선거캠프를 찾은 취재진에게조차 ‘보따리’를 안겼다.
‘무함마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자원봉사자는 “하루 100링깃(약 3만6천원)을 받는다”며 “아주 유용한 돈벌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주노동자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압둘라(45·가명)는 “말레이시아 생활이 불과 5개월째”며 “영어를 잘 못하는 이주노동자에게 이만한 돈벌이도 없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인들이 받는 일당의 절반인 50링깃을 받는다는 그는 캠프에서 ‘파트타임 자원봉사자’로 불렸다.
이렇게 ‘돈잔치’ ‘사람잔치’를 치른 BN은 전체 222개 의석 가운데 133석을 얻어, 89석에 그친 PR를 눌렀다. 얼핏 BN의 압승으로 보이지만, 뜯어보면 딱히 그렇지가 않다. BN은 이번 선거에서 기존 의석 가운데 7석을 잃었다. 역대 총선 가운데 이번이 ‘최악’이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선 전체 11석 가운데 단 2석을 얻었다. 전체 133석 가운데 절반 이상은 남부 조호르(21석)와 농촌 빈민층이 많은 사바(22석)·사라왁(25석) 등 3개 주에 집중됐다.
중국계 이탈 보이자 ‘인종주의’ 불 지펴
세대·지역·인종별로 고른 득표를 하지 못했음은 물론 지지 기반인 말레이계 유권자의 표심도 상당수 돌아섰다. 1969년 인종폭동 이후 ‘안정’을 대가로 여당을 지지해온 중국계 유권자의 이탈도 두드러져 보인다. 그간 말레이시아 선거가 주로 인종을 기반으로 이뤄져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에서 ‘바꿔’ 열풍이 불긴 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나집 라작 총리는 ‘차이나 쓰나미’를 들먹이며 다시 인종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집권 말레이연합국민기구(UMNO)의 ‘어른’이자, 우익단체인 ‘페르카사’의 자문 노릇까지 하고 있는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는 이번 선거 결과 제1야당으로 떠오른 민주행동당(DAP·중국계 주민이 지지 기반이지만, 다인종 지도부를 구성한 중도좌파 성향의 정당)을 겨냥해 “중국계 유권자 사이에 말레이 혐오를 부추겼다”고 비난했다. 여당 중진인 압둘 가니 의원은 아예 내놓고 “중국계·인도계 다 필요 없다. 말레이계 표만 있으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권의 인종주의 조장에 장단을 맞추는 것은 ‘말레이시아의 조·중·동’ 격인 다. 말레이시아 시민사회가 최근 세 신문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PR 쪽이 이번 선거에서 얻은 총득표율은 절반을 넘어서는 53.29%다. 45.74%를 얻은 국민전선보다 7.5%포인트 이상 앞섰지만, 확보한 의석수는 89석에 불과하다. 지난 선거보다 7석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권에 유리하게 짜인 ‘게리맨더링’(불합리한 선거구 획정)의 피해를 단단히 봤다.
“정권 교체가 될 거라고 보진 않는다. 사바·사라왁 등 시골 선거구를 무시해선 안 된다.” 정치평론가이자 독립언론인 아닐 네토의 선거 전 전망은 맞아떨어졌다. 그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정권 교체를 원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지만, 현실정치에서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히샤무딘 라이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사바·사라왁 2개 주에서 선거감시 활동을 한 이들이 농촌 지역에서 야권의 선거운동이 취약했다고 하더라”고 지적했다.
PR 대표 안와르, 약속대로 은퇴?
농촌 민심 얻기엔 실패했지만, 야권은 말레이시아 사회 전반에서 비교적 고른 득표를 했다. 인종주의 정치에 신물난 유권자의 민심이 반영된 결과다. 정작 어려운 문제는 지금부터다. ‘도둑맞은 선거’가 뒤집힐 것 같지 않은 마당에, 안와르가 은퇴 선언을 번복한다면 신뢰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약속대로 은퇴한다면? ‘안와르 패밀리’가 이끄는 말레이 중심의 인민정의당(PKR), 중국계 세속정당 DAP, 그리고 이슬람 정당(PAS) 등 정권 교체라는 공동의 목표와 안와르의 리더십 아래 간신히 유지해온 야권 연대의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다. 말레이시아 야권은 선거를 통해 드러난 ‘정권 교체’ 열망에 어떻게 화답할 것인가?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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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세대는 더 성숙하다 ‘신세대 정치인’ 누룰 이자 인터뷰 누룰 이자(32)는 현재 말레이시아 정치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세대 정치인이다. 벌써부터 ‘미래 총리감’으로 거론될 정도다. 그는 말레이시아 현대 정치의 굴곡을 온몸으로 보여준 야당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의 딸이자, 어머니 완 아지자 완 이스마일이 이끄는 인민정의당(PKR)의 부대표를 맡고 있다. 2008년 갓 스물여덟 나이에 쿠알라룸푸르 최대 격전지였던 램바판타이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한 그는, 5월5일 치러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은 선거 직전인 지난 5월3일 밤 막바지 지역구 유세에 여념이 없는 그를 1시간30분 남짓 동행 취재했는데, 그때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을 여기에 소개한다. 누룰 이자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거 승리를 자신하나. 내 지역구에선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정당한 경쟁만 유지된다면 이길 거라 확신한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내가 앞서고 있다. 다만 우려되는 건 내 선거구에서도 유권자 실어나르기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쉬운 게임은 아니다. 수많은 부정선거 사례가 쏟아지고 있는데. 말레이시아 정치의 슬픈 현실이다. 오랜 기간 그런 결과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힘겹게 싸우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풍요로운 국가다. 여러 인종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해왔다. 그런 문화가 (정치 때문에) 흔들리는 건 슬픈 일이다. 다른 나라였다면,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폭력사태라도 벌어졌을지 모른다. 집권 여당은 이를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 일부에선 야당이 패하면 분노한 국민이 동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 (강하게 부정하며) 우린 타이와 다르다. 우리 쪽 차량이 여러 차례 공격받았고, 나만 해도 10차례나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지자들에게, 물리적으로 보복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의 천막 유세장으로 오토바이족들이 몰려와 한동안 소란을 피웠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 같은 인물이야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있지만, 우리 신세대는 더 성숙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개인적인 질문을 해보자. 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정계에 입문했는가. 물론 아버지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 정치적 희생양이 됐고, 정치범으로 옥살이까지 했다. 그런데 봐라. 나와 내 어머니는 아버지의 투옥 중에 정치에 입문했다. 우리가 부귀영화나 안정된 무엇이라도 바라고 했겠나?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서 흔한 ‘가문정치’와 다르다는 말인가. 내 말은, 가문정치도 가문정치 나름이라는 것이다. 각기 다른 특징이 있다. (내가 정치에 입문한 건) 변화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는 공학을 공부했고, 공학도를 꿈꿨다. 그러나 내 인생을 후회하며 살고 싶지 않았고, 진솔한 믿음과 사고를 실천할 삶을 다른 것과 바꿀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언제나 말레이시아 총리가 되는 건가. (웃음) 아, 난 지금 의석 하나를 놓고 싸우는 일개 정치인이다. 중요한 건 우리에겐 지금 훌륭한 총리감(안와르를 지칭)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총리는 모두 ‘정의’라고는 모르는 인물들이었다. 5월5일 투표가 마무리된 뒤, 누룰 이자는 야권 연대체인 인민동맹(PR) 지도부들이 함께한 기자회견장에서 부모님 뒤편에 서 있었다. 초조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비록 본인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정권 교체’를 이루지 못한 말레이시아 야권의 씁쓸한 현실이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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