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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나라 광기에 휩쓸리다

버마 전역에서 불교 승려가 주도하는 반무슬림 폭동 확산일로 군부가 방조하고 민주 세력은 침묵… 43명 죽고 모스크 37곳 불타

제957호
등록 : 2013-04-18 19:41 수정 : 2013-04-1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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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현 미얀마) 승려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2007년 9월 군부의 탄압으로 지하로 숨어든 ‘사프란 혁명’의 불길을 되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버마로 돌아가 혁명에 나서자’는 망명 승려들의 외침에 대한 화답도 물론 아니다. 군부독재가 주도하는 ‘개혁’의 단맛에 흠뻑 취한 버마는 지금 ‘혁명의 기억’이 거추장스러워 보일 정도다. ‘총칼’에 맞서 ‘죽창’을 들 이유가 없을 법한데, 승려들이 다시 칼이며 장대 따위의 무기를 들었다. 이번엔, 승려들이 폭도 무리의 ‘두목’ 격이다.

무슬림-불교도 말다툼이 폭동으로

지난 3월20일 버마 중부 메이크틸라 지역에선 무슬림 금은방 주인과 불교도 손님 사이에 벌어진 말다툼이 삽시간에 폭동으로 번졌다. 무기를 쥐어든 불교 광신도 무리의 선두에 선 것은 승려들이었다. 일부는 심지어 무슬림 주민들을 산 채로 불길에 밀어넣기도 했다. 평화적인 시위대를 향해서도 발포를 해대던 군인과 경찰도, 이번만큼은 끝없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일부에선 ‘폭력 사태에 개입하지 말고, 불이나 끄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증언까지 내놨다. ‘반(反)무슬림 폭동’은 사흘 동안 이어졌다.

“이건 종교 간 분쟁이 아니다. 무슬림을 겨냥한 일방적인 폭력이다. 차라리 ‘학살’이라 부르는 게 맞다.” 버마무슬림협회(BMA) 양곤 사무소 활동가 묘윈은 <한겨레21>과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폭도들은 그 지역 사람들이 아니다. 밖에서 조직적으로 동원된 이들이다. 심지어 어떤 마을에서는 불도저까지 동원했다.” 그는 “사전에 계획된 폭력 사태”라고 주장했다.

폭동 이후 현장을 방문한 비자이 남비아르 유엔 사무총장 특별자문관도 “(폭력 사태가) 사전에 계획됐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버마 정부가 밝힌 공식 사망자 수만 43명. 이슬람 사원(모스크) 37곳과 건물 1300여 채가 불탔고, 이재민이 1만3천여 명 생겨났다. BMA 쪽은 “사망자가 최소한 70~100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의료지원단체 ‘인권을 위한 의사들’은 지난 4월5일 내놓은 자료에서 “폭동 당시 불에 탄 망갈라자욘 이슬람 학교(마드라사) 안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남학생 32명과 교사 4명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라며 진상 조사를 거듭 촉구했다. 버마 당국이 내놓은 공식 자료에는 실종자에 대한 통계 자체가 없다.

메이크틸라 폭동의 여파는 버마 전역의 무슬림 집단거주 지역으로 확산됐다. 지난 3월28일까지 중부 바고와 수도 네피도 부근, 그리고 양곤 근처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무슬림을 겨냥한 크고 작은 폭력 사태가 줄을 이었다. 일부 언론에선 “(군부의 개혁 조치로)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면서 전에 없던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고 보도했으나, 버마에서 무슬림을 겨냥한 폭력 사태가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영국 식민지배를 받던 1930년과 1938년에도 일찌감치 반무슬림 폭동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군부의 압제가 기승을 부리던 1997년과 2003년, 2006년에도 비슷한 사건은 이어졌다.

개혁 이후 반무슬림 운동 세력 키워


이른바 ‘개혁 조치’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2011년 4월 중부 마구웨에서 무슬림 주민들에게 집단적 폭력이 가해진 것이 시작이었다. 최근의 폭동이 우려스러운 것은, 폭력 사태가 점차 조직적·계획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혐오증’을 부추기는 대중 캠페인이 벌어지는가 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무리도 잘 조직된 모습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게다. 이를 주동하는 것은 주류 버마족과 ‘민족종교 수호’를 기치로 내건 불교 극단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주장하곤 한다. “무슬림, 그 인도놈들. 사우디아라비아 쪽 도움을 받아 ‘786 운동’을 하잖나. 그것도 전국적으로….”

버마 라카인주에서 대대로 살아온 로힝야 무슬림과 일부 중국계 무슬림을 빼고, 버마 무슬림의 절대다수는 영국 식민지배 시절에 이주해온 인도계 후손이다. ‘인도놈’이란 말이 ‘무슬림’과 동의어로 쓰이는 이유다. ‘786’은 인도·파키스탄 등지에서 ‘자비로우신 신의 이름으로’란 이슬람 성서 코란의 첫 구절을 상징한단다. 그런데 이 상징적인 숫자를 버마 불교도들은 ‘무슬림들의 세계 정복 음모’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세 수의 합이 21이며, 이는 21세기에 무슬림들이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최근 잇따르는 ‘종교폭동’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군부의 개혁 조치 2년여 만에 조직과 세를 키운 ‘반무슬림 운동’ 진영은 올해 초 ‘969 운동’을 시작했다. 9는 붓다를, 6은 그의 가르침인 법륜을, 마지막 9는 붓다의 제자, 곧 승려를 가리킨단다. 무슬림의 ‘786 음모’에 맞서기 위해서란다.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해지고 있다.

‘969 운동’을 주도하는 인물은 위라투란 이름을 지닌 승려다. 그는 2003년 벌어진 종교폭동의 배후로 알려졌는데,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대충 이런 식이다. 그해 버마 중부 만달레이주 카욱세에서 무슬림을 겨냥한 폭동이 벌어졌다. 당시 무자비한 진압을 벌인 경찰은 위라투를 비롯한 승려 5명을 ‘증오 선동’ 혐의로 구속했다. 위라투는 이어진 재판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2011년 ‘민간 정부’ 출범을 기념한 대사면 때 석방됐다.

석방 뒤 위라투는 버마 전역의 불교사원을 돌며 ‘반무슬림’ 정서를 자극하는 설교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몬주의 몰라뮌을 방문했을 때는 무슬림이 버스사업에 간여한 것을 두고 이런 식의 설교를 했단다. “만일 우리 불교도가 대중적 역량을 조직화하지 않는다면, 몰라뮌은 머지않아 적(무슬림)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 것이다.” 무슬림이 운영하는 상점에 대한 보이콧을 선동하고 있는 그는 “신심 있는 불교도라면 오직 ‘969 운동’의 스티커가 붙은 가게에서만 물건을 사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단다.

‘반무슬림’ 캠페인 확산은 지난해 6월 라카인 지방에서 발생한 불교도와 로힝야 무슬림 사이의 충돌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 약 200명이 목숨을 잃은 라카인 폭동에서 희생자의 절대다수는 무슬림이다. 13만 명에 이르는 로힝야 무슬림들은 ‘영구적 게토’라 불리는 난민캠프에 갇히게 됐고, 요행히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안전을 위해 배를 타고 강 건너 방글라데시 등지로 피란길에 올라야 했다. 1982년 네 윈 치하의 군부독재 시절 개정된 ‘시민권법’에 따라 버마 시민권을 박탈당한 로힝야족에 대해, 유엔은 “지구촌에서 가장 심하게 박해를 받고 있는 소수민족”으로 규정한 바 있다.

민족주의에 포획된 민주화 세력

“로힝야 무슬림을 제3국으로 추방하자.” 라카인에서 폭동이 발생한 지 석 달 남짓 만인 지난해 9월 초, 테인 세인 대통령은 이렇게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위라투를 중심으로 한 수백 명의 승려들은 이를 지지하는 거리행진을 벌이며 “조국을 구해내자”는 구호를 외쳤다. 그로부터 한 달 남짓 만인 10월23일 라카인 지방에서는 다시 ‘반무슬림 폭동’이 벌어졌다. 폭동의 ‘목표물’은 로힝야가 아니라, 또 다른 소수민족인 카만족이었다. 시민권을 박탈당한 로힝야와 달리 카만족은 버마의 13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무슬림이다. 과거 로힝야족에 초점이 맞춰졌던 ‘반무슬림 운동’이 무슬림 전체로 확산됐음을 알리는 계기였다.

위라투는 메이크틸라 폭동을 앞두고 현지 사원을 찾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그는 “무슬림이 민족민주동맹(NLD)에 지나치게 많이 가입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단다. 그로부터 불과 며칠 만에 메이크틸라에선 사소한 말다툼 끝에 불교 광신도들의 학살극이 벌어졌다. ‘선동’의 효과였다. 지난 2월 양곤의 타르카타와 라잉티야르 지역의 마드라사에서 잇따라 방화사건이 나기 직전에도, 위라투는 현지를 방문해 “머잖아 불교사원이 이슬람 학교로 바뀔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단다.

그럼에도 버마 내부에서 ‘반무슬림 운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의 양윈 대변인은 <한겨레2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칼과 몽둥이를 든 승려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 대한 반응을 묻는 질문에 “만달레이 승려들이 그럴 리 없다. 그들은 진정한 승려가 되려는 이들이다”라고 주장했다. ‘불교민족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다. 군부독재 시절 정치범으로 복역했던 비판적 언론인 윈틴 역시 최근 외신들과 한 인터뷰에서 “(최근 폭력 사태는) 이슬람의 문제로,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유럽은 물론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방글라데시·이라크 등 무슬림 국가들도 ‘지하드’(성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 좋으라고 인종주의 부추기나”

“군인들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분쟁에 의존한다는 걸 모른다는 말인가? 민족주의는 그런 군부의 체제 유지에 이용될 뿐이다.” 사프란 혁명을 최전선에서 이끌었던 전 버마승려연합의 우감비라는 이렇게 강조한다. 혁명 좌절 이후 체포돼 징역 68년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2011년 대사면 때 석방됐다. 우감비라는 출감 이후에도 분쟁과 수탈의 현장을 돌며 민주화운동을 이어갔다. 이 때문에 재구속과 석방을 되풀이했던 그는 결국 승복을 벗었다. “어느 불교사원에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코니니르윈’이란 속명을 되찾은 그는 이렇게 탄식했다.

“승려들은 300여 명에 이르는 정치범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야 했다. 카친주에서 벌이는 전쟁 아닌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는, 농민들에게 빼앗은 땅을 돌려주라고 요구하는 운동을 벌여야 했다. 왜 인종주의를 부추기는가?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위기를 조장하는가?”

방콕(타이)=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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