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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년 만의 교황 사임, 진짜 이유는?

‘건강’만으로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 고향 독일 언론은 전통만 고집한 교황의 사임 환영
등록 2013-02-19 13:14 수정 2020-05-02 19:27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성서 ‘마테오복음’ 16장 18절)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 초기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은 열두 사도의 맏형 격이던 시몬 베드로였다. 가톨릭에선 서기 67년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를 받아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한 그를 초대 교황으로 여긴다. 로마 대교구의 주교이자 바티칸 시국의 수반, 가톨릭 교회의 최고위 성직자인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다.
오직 형만이 알았던 사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하느님 앞에서 나의 양심을 반복해 되돌아본 결과, 저는 고령으로 인해 더 이상 교황직을 수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확신에 이르게 됐습니다.”
지난 2월11일 아침 바티칸 교황청에서 열린 추기경 회의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라틴어로 쓴 짤막한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장내는 곧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저는 교황직을 2월28일 오후 8시에 내려놓겠다는 것을 완전한 자유의지로 선언합니다.”
일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2천 년여 가톨릭 교회의 역사에서 교황은 ‘종신직’으로 인식돼왔다. 생존해 있는 동안 교황이 ‘완전한 자유의지’로 물러나기는 1294년 첼레스티노 5세 이래 무려 719년 만의 일이다. 당시 2년 가까이 교황 선출에 실패한 교회의 강권에 못 이겨 79살에 교황 자리에 오른 첼레스티노 5세는 재위 불과 161일 만에 사임한 뒤 은둔 생활을 택했단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등 외신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네딕토 16세의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바티칸 내부에서조차 그의 사임이 임박했음을 눈치챈 이들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단 한 사람, 지난해 여름부터 교황이 사임할 것임을 알고 있었던 이가 있다. 그의 친형인 게오르크 라칭거(89)다.
“나이가 많아지면 기력이 쇠잔해지지 않나. 교황께선 곧 86살이 되신다. 주치의도 장거리 여행을 자제하라고 권했고, 최근에는 걷는 것조차 힘겨워하셨다.” 영국 일간 은 2월12일 인터넷판에서 그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3살 터울인 게오르크-요제프 형제는 1951년 6월29일 함께 사제 서품을 받았고, 요즘도 매주 한 차례 이상 통화를 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오르크 라칭거는 2005년 4월 동생이 교황에 선출되기 전에도 그의 건강을 염려해, “성배가 동생을 비껴가기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베네딕토 16세의 건강이 나빴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엉덩이와 무릎, 발목뼈 등에 관절염이 심해 보행마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전격적인 사임의 원인을 ‘건강’만으로 설명하는 건 부족해 보인다. 자국 출신의 교황 탄생에 환호했던 독일 가톨릭계가 8년여 만에 그의 사임을 ‘환영’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임, ‘전례’를 깬 유일한 사례”
“생존해 있는 동안 교황직에서 물러났다는 점이 베네딕토 16세가 ‘전례’를 깬 유일한 사례로 기록될 게다.” 독일 일간 은 2월12일치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성소수자,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 사제의 성추문 등) 21세기 교회가 맞닥뜨린 산적한 과제에도, 보수적인 교황이 20세기적 전통만 고집했다”는 비판이다. 진보지 은 아예 “교황의 사임으로 가톨릭 교회가 더는 옛 방식을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바티칸 쪽은 오는 3월 말 부활절 이전에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비밀 추기경 회의)를 열겠다고 밝혔다. 주간 은 2월11일 인터넷판에서 “지난 8년여 동안 가톨릭 교회의 분열이 심해져, 새 교황 선출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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