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감축인 미 국방예산

오바마 정부가 획기적 군축으로 호들갑 떠는 국방예산 감축안, 실제로는 증가에 가까워…끝난 전쟁비용 빼면 예산은 오히려 늘어나고, 첨단무기 개발·도입 비용도 전혀 변화 없어

제897호
2012.02.08
등록 : 2012-02-08 16:08 수정 : 2012-02-09 16:26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국제정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외교적 협력을 강화하는 데 탁월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게 시상 이유였다. “조지 부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벨상까지 받았다”는 우스개가 떠돈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해 4월 체코 프라하에서 밝힌 ‘핵 군축’에 대한 비전도 평가를 받긴 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말’뿐 ‘성과’는 전혀 없었다. ‘선불제 노벨상’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군축’에 대해 일종의 의무감이 있을 법도 하다.

2013년 국방 예산, 냉전 때보다 많아

지난 1월26일 오바마 행정부가 국방예산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날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향후 10년 동안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국방예산을 4870억달러까지 감축할 것”이라며 “최종 감축 규모가 최대 6천억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미 언론은 흥분했다. 는 이튿날 “국방부의 새 예산 삭감안에 따라 지상군 병력 10만 명이 줄어들고, 상당수 군 기지가 폐쇄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도 “2013년 미 국방예산은 1998년 이후 처음으로 감축된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국방부가 의회에 요청할 내년 예산은 모두 5250억달러로, 이는 올해에 견줘 1%가량 줄어든 규모”라며 “병력과 전투기·전함을 줄이고 일부 기지를 폐쇄하는 대신, 무인항공기와 특수전 병력을 늘려 대규모 기지에 주둔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전투에 투입될 수 있는 방향으로 예산을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야흐로 ‘군축’의 시대가 오는 걸까? 따져볼수록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먼저 ‘예산 삭감’ 규모다. 지난해 의회를 통과한 예산절감법은 미 국방예산을 향후 10년 동안 4870억달러 삭감하도록 정해놓고 있다. 이 가운데 향후 5년(2013~2017년) 안에 2590억달러를 삭감하도록 규정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군비 축소’ 계획은 이에 따른 조처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자.

2012년 물가로 환산하면, 냉전 시절 미국의 연평균 국방예산은 약 4400억달러 수준이다. 2003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본격화하자 미 국방예산은 냉전 시절의 평균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부시 행정부 말기엔 미-소가 ‘별들의 전쟁’을 벌이던 냉전 막바지인 1980년대 중반 수준에 근접해갔다. 군축단체 ‘국방대안프로젝트’(PDA)가 내놓은 분석자료를 보면, 1998~2010년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미 국방예산은 약 55%나 증가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새 ‘감축안’을 따르더라도, 2013년 미 국방예산은 모두 5250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60억달러 감축된 수치지만, 냉전 이후 최저치(약 3500억달러)를 기록한 1998년에 견줘선 31%나 많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 전쟁비용으로 884억달러를 추가로 요청하기로 했다. 역시 올해(1150억달러)보다 줄어든 규모이긴 하다. 그러나 전쟁비용을 뺀 미 국방예산이 2014년엔 5340억달러, 2017년에 이르면 5670억달러까지 치솟는다. 오바마 행정부가 제시한 추가 감축 방안을 따르더라도, 미 국방예산은 냉전 시절의 평균치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게 PDA의 분석이다. ‘군축’이라도 하는 양 호들갑 떨 일은 아닌 게다.


지난 1월26일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마틴 뎀지 합창의장과 함께 ‘향후 10년간 국방예산을 대폭 삭감할 계획’이라는 내용을 뼈대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 국방부 제공

‘원상 회복’ 수준에 불과한 병력감축

지상군 병력 축소는 어떤가? 2003년 3월 시작된 이라크전쟁은 2011년 12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은 지난 2월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담에 참석하려고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패네타 국방장관의 말을 따 “오는 2013년 하반기 중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NATO군의 군사작전을 종료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9·11 동시테러 이후 10년 세월 미국의 발목을 잡아온 두 개의 전쟁이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으니, 지상군 병력 축소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뉴스 신디케이트 <매클래치>의 보도를 보면,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미 지상군 병력은 56만2천여 명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7년까지 이를 49만 명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같은 기간 해병도 현재보다 2만 명 줄어든 18만2천 명 수준으로 감축할 방침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9·11 동시테러 직전인 2001년 미 지상군 병력은 48만여 명, 해병은 18만여 명 수준이었다. 아프간·이라크 전쟁을 치르며 폭발적으로 늘어난 병력을 ‘원상 회복’하는 수준이란 얘기다.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 1월31일 인터넷판에서 “미 국방부는 두 개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전투병 8만 명을 추가로 모병했다”며 “여기에 위험수당 등 각종 혜택이 추가되면서 인건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인건비는 미 국방예산의 약 30%를 차지한다. 2001년 수준으로 병력을 감축하면 국방예산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 국방예산이 되레 느는 이유는 뭘까? 첨단기술 연구·개발과 주요 무기체계 도입 등에서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1월26일 국방예산 감축안을 발표할 때 패네타 국방장관이 “모든 종류의 전투에 대비해야 한다”며, 지상군 병력의 신속기동체제 유지·확대를 위한 예산 편성과 무인항공기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예산 30% 확대 등을 거론한 바 있다. 여기에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말썽이 끊이지 않던 미사일방어(MD) 관련 예산과 기술적 결함 논란에 휩싸인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 관련 예산(약 3820억원)도 고스란히 유지된다. <매클래치>는 “실제 수치를 놓고 보면, 미 국방예산은 향후 10년 동안 해마다 약 2%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삭감이 아니라 내역의 변화일 뿐”

미군기지 축소 문제도 엇비슷한 상황이다. 칼 레빈 미 상원 국방위원장(민주당)은 최근 등과 한 인터뷰에서 “유럽 등 해외 기지가 축소되기 전에 국내 기지를 폐쇄하는 방안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윌리엄 손버리 하원의원(공화당)도 “국내 기지를 폐쇄해 국방예산을 줄이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민주·공화 두 당이 모두 이에 반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야흐로 ‘선거의 해’다. 군사기지가 ‘일자리’와 동의어인 상황에서, 미 국내 기지 폐쇄에 찬성할 정치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딘 베이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소장은 지난 1월27일 진보적 대안매체 <코먼드림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국방예산 감축 계획을 보면, 2000년 조지 부시 행정부 출범 이래 폭발적으로 늘어난 국방예산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앞으로도 계속 지출하겠다는 뜻이다. 삭감이 아니라 지출의 내역이 바뀌는 것일 뿐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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