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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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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근본주의가 판치는 이스라엘

유대 율법 내세워 여성을 폭행하고 소녀에게 침뱉는 유대 근본주의…높은 출산율 바탕해 이스라엘의 결정적 10%로 성장한 하레디, 집권여당 내무장관 등 맡아
등록 2012-02-09 07:03 수정 2020-05-02 19:26

“여성은 집 밖으로 나갈 때 남의 시선을 끌지 않도록 옷차림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여성들이 떼지어 걸으면 남성들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남성과 반대편에서 걷는 게 좋다. 동네 한복판이나 건물 들머리에 여성들이 떼지어 있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어린 소녀는 자전거를 타선 안 된다. 공공장소에서 여성은 눈길을 끌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율법이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묵시요, 계율이다. 누구의 것인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생각나는가? 아야톨라의 터번을 떠올리는 이도 많을 게다. 틀렸다. 지난해 12월23일 이스라엘 방송 가 전한 극단적 유대 근본주의자(하레디)들의 주장이다. ‘극단적 근본주의’는 ‘이슬람’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얘기다.

두 자리수 의석 차지한 하레디 정당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보면, ‘하레디’는 히브리어 ‘하라다’(두려움·불안)에서 나온 말이란다. ‘신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 정도로 풀어볼 수 있을 텐데, 주로 동유럽에 흩어져 살아온 유대인 공동체가 그 뿌리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가 벌인 유대인 말살정책(홀로코스트)을 버텨낸 이들이다. 이스라엘 건국 때까지 살아남은 하레디 유대인은 극소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건국 초기 이스라엘 국민 절대다수는 하레디 유대인이 한 세대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는 지난 1월14일치 기사에서 하레디 유대인 역사 전문가인 작가 조너선 로젠블룸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로젠블룸은 “홀로코스트로 절멸 위기에 처한 하레디 유대인에게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가 병역 면제, 생계보조금 지급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줬다”며 “말하자면 ‘극소수자’인 하레디 유대인이 위엄 있게 ‘사회적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덧붙였다.
세월이 꽤 흘렀다.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희귀’했던 하레디 유대인은 급격히 머릿수를 불렸다. 율법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출산율은 이스라엘 평균치의 서너 배를 웃돌기 때문이다. 는 “하레디 유대인 가정은 평균 6~8명씩의 자녀를 두고 있다”며 “약 78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인구 가운데 하레디 유대인은 10%를 훌쩍 넘는 100만여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인구의 20%가 아랍계인 사실을 고려하면, 하레디 유대인의 비중은 더 높아진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향후 50년 안에 이스라엘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하레디 유대인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미 해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의 4분의 1가량이 하레디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 시사주간지 은 지난 1월13일 인터넷판에서 모르데차이 크렘니처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 부소장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한 집단의 인구가 많아지면, 그 집단의 정치적 영향력도 커지기 마련이다. 2009년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서 크네세트(의회) 전체 120석 가운데 1석이라도 확보한 정당은 모두 12개다. 이 가운데 두 자릿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모두 5개, 하레디 계열 정당 ‘샤스’는 11석을 확보했다. 1984년 창당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샤스는 4석을 얻은 바 있다.

여성 ‘옷차림’ 문제삼아 돌맹이질
치피 리브니 전 외무장관이 이끄는 카디마당(28석)이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한 뒤, 샤스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27석)이 주도한 연정에 참여했다. 푸짐한 대가가 뒤따른 것은 당연했다. 엘리 이샤이 샤스당 대표가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맡는 등 장관을 4명이나 배출했다. 1984년 하레디 유대인의 종교적 신념을 대변하는 ‘소수 정당’으로 출발한 샤스가 어느새 ‘집권세력’의 당당한 일원으로 성장해 있는 게다. 이를 두고 서지오 델라코르골라 헤브루대 교수(인구학)는 과 한 인터뷰에서 “(하레디 유대인은) 이스라엘 사회의 ‘결정적인 10%’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확대된 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하레디 유대인의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대 율법에 기반한 자신들의 극단적 신념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고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예루살렘 서부 베이트 셰메시에서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잇따라 벌어진 여성을 겨냥한 폭력사건은 이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인구 8만여 명의 소도시인 베이트 셰메시 주민의 65%가 하레디 유대인이란다. 이스라엘 인터넷 매체 가 전한 가장 최근에 벌어진 사건부터 살펴보자.
지난 1월24일 나탈리 마쉬아(27·여)는 베이트 셰메시 일대에서 광고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다. 그날 오후 1시께 한 유대교 회당 부근에 차를 세운 그가 포스터 붙일 만한 곳을 찾고 있을 때 갑자기 하레디 남성 여럿이 나타났다. 삽시간에 마쉬아를 에워싼 하레디 남성들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마쉬아가 ‘적절한 복장’을 갖추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그가 타고 온 차량의 유리는 깨지고, 타이어는 펑크 나 있었다. 마쉬아는 인근 건물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이내 돌멩이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다행히 경찰 순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마쉬아를 뒤쫓던 하레디 남성들은 자취를 감췄다. 그는 와 한 인터뷰에서 “주민 50여 명이 주변에 몰려 구경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다.
베이트 셰메시에선 지난해 말 하레디 남성이 초등학생 나마 마르골레스(8·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침을 뱉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역시 마르골레스의 ‘옷차림’을 문제 삼은 짓이었다. 버스 앞좌석에 앉은 여성 병사에게 맨 뒷좌석으로 옮겨앉으라고 강요하며 집단으로 폭언을 퍼붓던 하레디 남성들이 출동한 경찰에 체포된 사건도 있었다(하레디 유대인은 버스 앞좌석을 ‘남성 전용’으로 여긴다). 지난해 12월27일 하레디 유대인의 ‘종교적 강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그곳에서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시위대가 외친 구호는 ‘이스라엘은 테헤란이 아니다’였단다.

선민의식 충만한 비옥한 토양
지난 1월27일 이스라엘 일간 는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현지 거트먼여론조사센터와 아비차이재단이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유대인은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5%는 율법과 십계명이 신이 부여한 의무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극단주의’에겐 더없이 ‘비옥한 토양’인 셈이다.
이슬람의 샤리아는 유대교의 토라다. 이브라힘과 무사의 알라는 곧 아브라함과 모세의 야훼다. 무슬림들이 ‘알라 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칠 때, 유대인들은 ‘바루크 아타 아도나이’(주여, 우리를 축복하소서)라고 목을 놓는다. 누가 누구에게 ‘극단적 근본주의’의 낙인을 찍는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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