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아이티에 네팔 콜레라를 수출했다

아이티, 대지진에 이어 콜레라 덮쳐 52만여명 감염에 7천여명 사망…유엔군으로 들어온 군인 통한 ‘네팔 기원설’ 뒷받침하는 보고서 잇따라

제895호
2012.01.18
등록 : 2012-01-18 15:40 수정 : 2012-01-19 15:25

“행복한 집안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불행한 집안은 가지각색으로 불행하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대표작 <안나 카레니나>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집안 사정이나, 나라 사정이나 마찬가지다. 잘사는 나라는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잘들 살지만, 못사는 나라는 가지각색으로 어렵다. 카리브의 가난한 섬나라 아이티는 그 극단을 보여준다.

“남아시아 콜레라균과 닮아”

2010년 1월12일 오후 4시53분께(현지시각)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지축이 뒤틀렸다. 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TNT) 50만t에 맞먹는 규모라는 진도 7.0의 강진은 도시 전체를 거대한 공동묘지로 바꿔놨다. 아이티 정부가 내놓은 공식 피해 규모만도 △사망 31만6천여 명 △부상 30만 명 △이재민 100만 명에 이른다. 폐허가 된 주택과 상업용 건물도 각각 25만 채와 3만여 동에 이른다니, 그 참상은 가늠하기조차 버겁다. 비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해 10월 중순 포르토프랭스에서 북쪽으로 100km 남짓 떨어진 아르티보니트 삼각주 일대에서 주민들이 집단으로 구토와 설사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달 21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아이티에서 콜레라가 발병했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이티의 젖줄인 아르티보니트 강물을 따라 콜레라는 삽시간에 온 나라로 퍼져나갔다. 지진이 앗아간 상하수도와 정화조 등 위생시설을 제대로 복구하지 못한 게 콜레라 창궐을 부채질했다. 미 아이티정의민주연구소(IJDH) 등이 추산한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까지 아이티인 52만 명가량이 콜레라에 감염됐다. 아이티 전체 인구(약 970만 명)의 5%를 넘는 수치다. 사망자만도 약 7천 명, 지금도 매달 200명가량이 여전히 극심한 설사·구토로 인한 탈진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궁금해진다. 지진 발생 직후부터 세계 각국에서 응급구조·인도지원 활동가들이 몰려들었다. 그럼에도 지진 발생 두 달여 만인 2010년 3월 CDC는 현지조사 보고서에서 “아이티에서 콜레라 발병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콜레라는 왜 10개월 뒤에야 아이티를 덮친 걸까? 논쟁은 여기서 출발한다.


미 의학전문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은 지난 1월6일 펴낸 최신호에 ‘아이티에서 발병한 콜레라의 기원’이란 제목의 논문을 실었다. 이 매체는 “1991년 이후 라틴아메리카 일대에서 콜레라 발병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이티에선 (2010년 10월 발병 이전까지) 지난 100년 이상 콜레라가 창궐한 적이 없었다”며 “아이티에서 발병한 콜레라 박테리아를 분석한 결과, 지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던 비브리오 콜레라가 ‘인간의 활동’을 통해 아이티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내용을 좀더 살펴보자.

“아이티에서 창궐한 비브리오 콜레라는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일대에서 유행하는 것과 닮아 있다. DNA 분석 결과도 거의 일치한다. …이들 박테리아는 라틴아메리카나 동아프리카 일대에서 발견되는 비브리오 콜레라종과는 크게 다르다. 아이티에 가까운 미국이나 멕시코만 일대에서 떠도는 콜레라와도 차이가 난다. …아이티에서 창궐한 콜레라는 남아시아에서 인간의 활동을 통해 아이티로 유입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연장된 유엔군 활동

‘남아시아’는 어디를 두고 하는 말일까? ‘인간의 활동’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사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말 선거를 통해 집권한 해방신학자 출신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정권이 쿠데타로 무너진 직후, 아이티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쿠데타 발생 직후 평화유지군 파견을 결정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두 달여 만인 4월30일 브라질군이 주도하는 이른바 ‘아이티안정화임무단’(MINUSTAH·이하 유엔군)을 출범시켰다.

유엔군은 주둔 초기부터 온갖 구설에 휘말렸다. 과도한 무력 사용과 폭행, 성폭력 등 추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난해 12월14일에도 브라질 출신 유엔군 병사들이 포르토프랭스의 대표적 빈민가인 시트솔레이 지역에서 고장난 식수트럭을 지키고 있던 주민 3명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한 뒤 체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엔 안보리는 군 병력 7340명, 경찰병력 3241명으로 구성된 아이티 주둔 유엔군의 활동 시한을 올 10월15일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의안 제2012호를 통과시켰다.

그 유엔군의 일원으로 콜레라가 최초 발병한 아르티보니트 삼각주 지역에 2010년 10월8일과 24일 두 차례로 나눠 네팔군이 도착했다. 이들은 파병에 앞서 석 달 동안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훈련을 받은 뒤 건강검진을 마쳤다. 이어 열흘간 휴가를 받아 가족·친지를 방문한 뒤 아이티로 향했다. 우연인가? 네팔 영자지 <히말라얀타임스>는 그해 9월23일치에서 “카트만두 일대에서 지난 2주 동안 확진 판정이 25건이나 나왔다”며 “카트만두시 보건당국이 콜레라 경계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아이티 콜레라의 ‘네팔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그간 여러 차례 나왔다. 심지어 유엔이 외부 전문가를 동원해 자체적으로 작성해 지난해 5월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2009년 네팔에서 유행한 콜레라와 아이티에서 발견된 게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는 “정황을 종합해볼 때, 한 개인이나 집단이 의도적으로 퍼뜨렸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종합적으로 더해져 아이티에서 콜레라가 창궐했다”며 “지금은 원인을 따질 게 아니라, 콜레라 창궐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아이티안정화임무단은 유엔헌장 제7조에 따라 파견됐다. 헌장 제7조는 평화 위협, 평화 파괴 행위, 침략 행위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방안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아이티의 혼란이 국제 평화와 지역 안정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게 유엔군 파견의 논리였던 게다. 문제는 아이티의 현 상황이 여기에 들어맞는가다.

“주둔 비용이 콜레라 지원 모금의 8배”

“주민들의 목숨이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유엔은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2010년 대지진 발생 이후 아이티 상황을 모니터해온 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는 1월10일 성명을 내어 이렇게 지적했다. 이 단체는 성명에서 최근 유엔 마약범죄국이 내놓은 자료 내용을 따 “아이티의 살인범죄 발생률은 10만 명당 6.9명꼴로, 전세계 평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치안 상황이 유엔군을 파견할 정도로 폭력이 난무하는 혼란한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단체의 마크 와이스브로트 국장은 “유엔이 병력 주둔 비용으로 사용하는 금액은 지금까지 아이티 콜레라 지원을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금한 금액의 8배에 이른다”며 “유엔군 주둔의 명분이 사라진 만큼, 이제라도 긴급하게 필요한 재건·복구와 인도적 지원, 콜레라 치료와 예방 쪽으로 예산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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