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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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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열기로 가득한 타이 총선

탁신의 여동생 잉락이 이끄는 푸에아타이당 지지 뜨거운 총선 현장… ‘푸에아타이-레드셔츠-탁신’ 3자 동맹 우세 속에 여전한 군부 변수
등록 2011-07-01 02:46 수정 2020-05-02 19:26
잉락 친나왓 푸에아타이 당수가 지난 6월17일 타이 중부 랏차부리 지방 무앙지구 선거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고 있다. 사진 이유경

잉락 친나왓 푸에아타이 당수가 지난 6월17일 타이 중부 랏차부리 지방 무앙지구 선거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고 있다. 사진 이유경

6월17일 아침 8시께 타이 방콕 시내 타일랜드 문화센터 전철역. 부정부패 혐의로 해외 도피 중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44)과 그가 이끄는 제1야당 푸에아타이당 후보 20여 명이 나타났다. 경호원이 있는지 없는지 몰려드는 시민들을 아무도 막지 않았다. 전날인 16일 낮에는 카오산에서 붐자타이당 운동원이 괴한의 총에 맞고 사망해 충격을 주었다. 방콕과 인근 지방은 7월3일 치러질 총선의 최대 격전지이자 보안 당국이 경고한 최고 위험 지역이기도 하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군중 속에 묻혀 사진 찍기에 바쁜 잉룩의 캠페인은 삼엄한 경비병을 달고 다니는 집권 민주당의 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 팀과 대조를 보인다.

“탁신이 구상하고 당이 실천한다”

마침내 선거철이다. 총 40개 정당이 500개 의석(정당 투표 125개 포함)을 두고 각축전을 벌인다. 이 조기 총선을 치르려고 탁신 지지자인 도시 빈민층과 농민 출신의 ‘레드셔츠’(반독재민주전선·UDD) 약 1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가 유혈 진압을 당한 지 1년여 흘렀다. 그동안 지도부는 옥살이하거나 해외 도피 중이며, 레드셔츠는 급진화와 내분을 겪어왔다. 그러나 선거를 목전에 둔 요즘 레드셔츠의 다양한 정파들은 일단 푸에아타이당으로 몰려들 기세다. “기대가 크다. 오랫동안 기다려왔고, 유혈 사태에 대해 차근차근 규명되기를 바라기에….” 레드셔츠 강성 지역인 동북부 이산 출신 활동가 사라윳 탕 프라삿(42)이 전하는 현지 분위기다.

1년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보석 석방된 지도부들은 거의 푸에아타이당의 비례대표 후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권을 쿠테타로 몰아내고 선거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총질한 이들이라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푸에아타이당과 손잡지 않으면 우린 살아남을 수 없다.” 지도부의 수감 생활 동안 레드셔츠 의장직을 맡아온 띠타 따본세뜨(66)는 푸에아타이당과의 연대가 ‘생존’을 위한 것이라 강조했다.

6월17일, 잉룩의 캠페인을 동행 취재했다. 타일랜드 문화센터 전철역 밖으로 나온 잉락은 오토바이 운전사와 악수를 하고는 그 오토바이에 자신의 캠페인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방콕의 좁은 길을 누비는 오토바이 운전사들은 대로의 택시 운전사들과 함께 대부분 레드셔츠 성향이다. “우리 당이 집권하면 예정된 지하철 노선을 조속한 시일 내에 건설하겠다.” 탁신 정권 시절 대중고속전철부(MRTA) 수장으로 지하철 프로젝트를 맡은 프라팟 총사구안의 말이다. 2004년 7월4일 지하철이 개통할 때 향후 6년 안에 터널 60km를 더 건설하겠다던 계획은 2006년 쿠데타와 정치 혼란 속에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오전 지하철 순회에 이어 오후 3시. 잉락 팀은 방콕 방플랏 지역의 오톱(OTOP)을 방문했다. 오톱은 지역 특산품을 개발해 주민 경제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30밧(약 1100원) 의료제도’와 함께 탁신의 대표적인 친서민 정책으로 꼽힌다. 탁신 정권의 공과를 되새김질하며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푸에아타이당은 아예 캠페인 구호를 “탁신이 구상하고 당이 실천한다”라고 달았다. 그 오라비의 전설을 타고 정치 경험이 없는 잉락은 푸에아타이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등장했다. 푸에아타이당이 집권에 성공하면 그는 타이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다.

오후 5시. 차로 약 1시간30분을 달려 랏차부리 지방 선거 유세장에 이르렀다. 무대 중앙에는 ‘곧 여성 총리 탄생’이라는 플래카드가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먼저 무대에 오른 건 나타웃. “나타웃 프롬판”이라고 소개하며 옥중에 있는 자투폰 프롬판과의 연대를 표한 그는 군중을 잘 웃겼다. 나타웃은 “작금의 연대는 ‘푸에아타이-레드셔츠-탁신’ 3자의 결속이고, 시국이 빚어낸 이 ‘생산물’을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오후 5시50분께, 잉락이 무대로 오르자 열광의 도가니가 펼쳐졌다.

“잉락 버 능!”(잉락 최고!) 지지자들이 주는 꽃을 한 송이씩 받아드는 그는, 비서가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면 밤새워 꽃을 받을 기세였다. 잉락은 저녁 8시30분 같은 지방의 반퐁 지구로 이동해 “나와 당과 잉락을 믿는다”는 구호와 장미꽃, 지지자들이 내미는 손에 다시 묻혔다. 그는 이미지 정치를 완벽히 소화하고 있다. 빡빡한 스케줄에도 얼굴에 피곤한 기운이 전혀 없다.

민주당 텃밭 방콕도 푸에아타이 우세

“잉락이 비례대표 1번을 단다고 했을 때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지가 신선하고 젊어서 캠페인에 아주 효과적이다.” 생애 첫 투표라 설렌다는 학생운동가 출신 파이 술룩(25)의 말이다. “첫 연설 때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지난 6월18일 유세장에서 많이 변한 걸 보고 놀랐다. 맡은 직무에 잘 적응해가는 것 같다.” 진보적 온라인 매체 에서 선거 취재를 담당하는 기자 핀파카 낭솜도 잉락의 변화에 긍정적 뉘앙스를 담았다.

핀파카를 놀라게 했던 지난 6월18일, 방콕 외곽 웅위안야이 지역에서 열린 푸에아타이당 집회에서 잉락은 각종 공약을 발표하며 정치 보복도 이중 잣대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사회의 빈곤층은 오랜 세월 병원 바닥에서 죽어갔다. ‘30밧 의료제도’를 도입한 탁신은 그 현상을 완전히 바꾼 사람이다. 내 생애에 그런 총리를 본 적이 없다.” 이날 유세 현장에서 만난 방콕 주민 찌라파르 밧사파누랏(65)의 말이다. 솜삭(67) 역시 “탁신이 타이 역사에서 최고의 총리였다”며 “잉락이 탁신의 여동생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기대하는 건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할 수 있는 지도자다”라고 덧붙였다.

옥외 캠페인에 주력하는 푸에아타이당과 달리 민주당은 온라인 캠페인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6월22일 오후 1시45분(현지시각)을 기준으로, 아피싯의 페이스북과 잉락의 페이스북은 각각 67만7887명, 14만156명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 민주당은 유혈 사태 종반에 발생한 방콕 중심가의 방화를 선거 캠페인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선거 캠페인 의제와 방식이 어찌됐건,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푸에아타이당의 우세를 말해준다. 지난 6월17일 여론조사기관 ‘수안 두짓’의 조사 결과를 보면, 격전지로 꼽히는 방콕만 해도 52.05% 대 34.15%다. 민주당 강세 지역인 남부 분쟁주에서도 푸에아타이당의 선전 가능성이 제법 있다고 현지 전문가는 진단한다.

“민주당이 그들이 약속한 것을 전혀 이행하지 못했기에 주민들의 기대가 크지 않다. 대신 푸에아타이당을 대안으로 보고 있고 소규모 지역 정당들도 선전하고 있다.” 남부 지역에 기반을 둔 전 기자 노이 따마(39)의 관전평이다. 노이는 “주민들은 이 지역 문제가 특정 정권보다 군부의 손에 달렸다는 걸 잘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안달이 난 건 군부다. 지난 6월15일 군 최고사령관 프라윳 찬 오차는 군부 소유의 을 통해 “좋은 후보에게 투표하라”며 “양심과 이성과 지혜를 가지고 투표해야 이 국가와 왕정이 안전하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중도 성향의 티티난 풍수디락 출라롱꼰대학 교수는 “딱한 일”이라며 입을 열었다. “프라윳 사령관의 논평에는 그가 원하지 않는 선거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초조함과 절박함이 담겨 있다. 2000년대 선거는 1970∼90년대 선거와 다르다. 정당들의 공약 이행이 일정하게 관측되고 있다.”

선거에서 이겨도 군부가 뒤집는다?

왕정주의자 조직인 반탁신 성향의 ‘옐로셔츠’(PAD·민주주의민중연대)는 ‘투표 거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 6월21일 선거관리위원회에 푸에아타이당의 해산을 요청하는 등 사실상 민주당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푸에아타이당의 승리를 장담하기는 이르다. 6월22일 여론조사기관 ABAC 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 30%가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가까스로 제1당이 되더라도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건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만일 푸에아타이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다면, 취약한 정부를 유지하다가 2008년처럼 ‘기득권층’의 도움을 받는 민주당에 정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수란드 웨자지와의 분석이다. 싱크탱크 ‘시암 인텔리전스 유닛’ 국장인 칸 위안용(39)의 진단은 이렇다. “표퓰리스트 정책을 고려할 때, 푸에아타이당은 정당투표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선거구의 싸움은 가봐야 안다.” 다수의 열망대로 푸에아타이당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레드셔츠 지지세가 강한 타이 동북부 이산 출신 활동가 수라윳의 말은 레드셔츠들의 마음 한구석에 담긴 조바심과 회의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레드셔츠의 지지를 받은 푸에아타이당이 집권 이후 기득권층과 화해할까봐,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
방콕·랏차부리(타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레드셔츠 지도자 인터뷰
“군부와 PAD가 민주당을 돕는다”

코캐우 피쿨통. 사진 이유경

코캐우 피쿨통. 사진 이유경

레드셔츠 지도자이자 푸에아타이당 비례대표인 콕케우 피쿨통은 6월22일 푸에아타이당사에서 이뤄진 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민중연대(PAD)와 군부가 민주당을 간접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PAD가 선거관리위원회에 푸에아타이당 해산을 요청했다.
푸에아타이당을 파괴하려는 음모다. 물증은 없지만 배후가 있다고 믿는다.

지난주 군 최고사령관 프라윳의 ‘좋은 후보에 투표하라’는 성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당을 간접적으로 돕는 성명이다.

PAD가 지금은 투표거부운동을 하지만 막판에 민주당 품에 안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PAD는 그럴 수 있다. 선거 전후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레드셔츠는 푸에아타이당이 정권을 잡은 뒤, 지난 2년간의 유혈 사태에 대한 진상 규명 없이 화해 절차를 밟을까봐 우려한다.
진상규명위원회는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책임자들을 처벌할 것인가.
처벌, 화해와 사면에 대한 건 또 다른 문제로서 사회의 여론과 상황에 달렸다.

아시아의 여성 정치인을 보면 딸이고, 아내이고, 누이이다. 당신 당도 그 모델을 밟나.
남편과 아버지가 정의롭지 못한 처우를 받을 때 여성이 그 뒤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탁신이 이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큰데도 불의한 방식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만일 푸에아타이당이 정부를 구성한 이후 쿠데타나 사법부 판결 등으로 정권이 또 뒤집어지면 싸울 것인가.
시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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