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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김정일의 방중 이후 한반도 정세… 북-중의 전략적 경협 강화 속 중국의 전략공간 확대되며 6자회담 재개 수순 밟을 듯
등록 2011-06-01 05:52 수정 2020-05-02 19:26
지난 5월25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는 모습을 5월26일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26일 일주일간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지난 5월25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는 모습을 5월26일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26일 일주일간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지난해 3월26일 천안함 침몰과 11월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이래 남북관계는 흔히 이렇게 표현된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반면에 지난해 5월 이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년 새 3차례 중국을 찾은 북-중 관계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북-중 관계, 한반도 정세의 핵심적 변수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1991년 9월17일)에 대한 중국의 지지와 뒤이은 한-중 수교(1992년 8월24일) 이래로 20년 만의 격변이다. 1990년대 초 최악이었던 북-중 관계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시작으로 한-중 수교로 훼손된 관계 회복에 나서 지금껏 모두 7차례에 걸친 김 위원장의 방중과 장쩌민·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거치며 중국의 부상과 함께 한반도 정세의 핵심적 변수가 됐다. 반면에 지난해 한-중 관계는 대북정책과 한-미 동맹관계를 둘러싸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심각한 갈등을 보이며 수교 이래 가장 나쁜 상태에 빠졌다. 20년 만의 극적인 관계 역전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남북관계가 나빠지니 북-중 관계가 좋아지는, 그런 단선적인 구도로 상황을 이해해선 곤란하다. 물론 천안함 사건으로 대북 경제협력을 단절한 이명박 정부의 5·24 조처로 경협 분야에서 북-중 경협이 남북경협의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북한의 대중 수출 증가는 그 전년도인 2009년과 비교하면 1~3월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4~5월에는 제로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5·24 조처 직후인 6월부터 플러스로 돌아서더니 7~11월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지난해 북-중 무역은 30억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 1년 사이 김 위원장의 3차례 방중으로 상징되는 북-중의 전략적 협력관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과거와 다른, 질적으로 새로운 정세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선 양자 관계에서 보면, 북-중이 과거의 전통적 유대 내지 혈맹관계를 표현하는 ‘순망치한’(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을 넘어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 원하는 것을 얻는 관계’에 들어섰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순망치한은 양국의 특수한 관계를 의미했지만, 냉전적·이데올로기적 진영 논리에서 나온 낡은 관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 발발 이래,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미-중 협력과 대북 압박 속에서 중국의 새로운 세대 내부에선 이런 북-중의 이데올로기적 당 대 당 혈맹관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언제까지 과거의 피로 맺어진 특수관계를 바탕으로 협력이 지속될 수 있을지 중국은 물론이고 북한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후계 구도 구축을 위한 내부의 정치·경제적 체제 정비 과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국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게다가 2008년 여름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 이후, 그리고 중국이 후진타오 체제에서 2012년 시진핑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 상황에 있기에 그 필요성은 더욱 절박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게 모범답안 내놓은 김정일

지난 5월26일 중국 은 김 위원장이 전날 후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했다. “조(북)-중 양국의 우호관계는 소중하며, 우호관계를 대대로 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중대한 역사 사명이다. 올해는 조-중 우호협력 조약 체결 50주년이고 이 조약은 조-중 원로세대 지도자가 남겨준 중요한 유산이며, 원로세대 지도자들의 전통을 물려받아 조-중 우호관계를 부단히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중요한 건 중국의 반응이다. 후 주석은 전략적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북-중 관계를 계승해 미래를 향하고 친선적이며, 협력을 강화하기 바란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조건부다. 후 주석은 5가지를 제안했다. 북-중 관계가 대를 이어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면 이런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서 공동의 이해를 내세우며 중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것이 ‘경제합작 심화’와 ‘국제지역 형세와 중대 문제에 대한 소통 강화’다.

김 위원장의 최근 3차례 방중은 그 답을 내놓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번 방문에서 중국이 보기에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북한은 정력을 다해 경제건설을 하고 있고, 안정적인 주변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조선반도 정세 완화를 희망하고, 조선반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며, 가능한 한 빨리 6자회담을 재개하고자 주장하며, 북-남 관계 개선에 줄곧 성의를 가지고 있다. 조선은 중국이 6자회담 재개와 조선반도 평화 안정을 위해 노력한 데 감사한다.” 중국이 개혁·개방 전략에서 안정적 대외환경이 필요하듯이 북한도 그런 조건 아래서 중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합의는 우선 5월 말 훈춘~나진 간 도로 보수 공사 착공식이 보여주는 중국의 동북 3성 개발과 북한의 나진·선봉 지역의 연계발전 전략, 지난해 12월 착공한 신압록강 대교를 통한 단둥과 신의주를 연계한 황금평 경공업단지 건설 등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진흥계획과 북한의 개혁·개방 전략이 상호 필요에 따라 결합해 동서 양쪽에서 각각 압록강·두만강 광역경제지대 구축으로 가시화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하나는 6자회담을 포함한 북-미 관계 등 한반도 정세에서 중국의 영향력 강화다. 지금 6자회담을 주도하는 것은 의장국 중국이다. 지난해 3월 천안함 사건 발생 직전 6자회담 재개는 가시권 안에 있었다. 중국은 한-중 및 한-일 외교장관 회담,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의 방중 등 미국과의 조율 아래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를 본격화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이 미국과의 협의, 북한과의 조율을 통해 내놓은 안은 ‘6자 예비회담(양자대화 병행) → 6자 본회담’의 2단계론이다. 이를 바탕으로 김 위원장의 방중이 준비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천안함 사건 탓에 5월로 미뤄졌지만, 김 위원장은 이 방중에서 북한이 천안함과 무관하다는 견해를 중국 지도부에 직접 밝혔다. 이후 중국의 ‘천안함 외교’는 한-미 동맹과의 마찰을 초래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지난해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소행을 명시하지 못한 천안함 의장 성명을 채택한 뒤, 8월 창춘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후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서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라는 답을 얻어냈다. 올해 들어 중국은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이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한-미가 추진한 보고서 채택에 비토권을 행사했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선 남북대화, 후 북-미 접촉을 통한 6자회담 재개’라는 3단계 방안에 대해 김 위원장이 지지를 표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6자회담 재개가 미국 정책 변화 가져올까

선하이타오 지린대학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천안함 사건은 중국이 한반도에서 전략 공간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중국에 이제 6자회담은 다자간 대화·협상·협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동아시아 안보 경쟁 및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북-중 간 전략적 협력을 바탕으로 6자회담 재개 국면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여전히 남북관계는 북-미 관계 진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사정 탓에 6자회담과 북-미 관계는 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남북과 북-미, 한-미가 복잡하게 얽혀 갈등을 보였던 그동안의 3자 관계는 이제 6자회담이라는 장내 협상 공간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어떤 자세를 보일지에 따라 큰 변화를 보일 수 있다. 미국이 ‘선 핵폐기’ 방침을 고수한다면 협상의 진전은 어렵다. 그러나 6자회담 재개는 미국이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에서 ‘포괄적 접근’ 정책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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