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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사의 폐건물 리조트에서 괴짜 30명과 공동생활하며 진짜 파티를 즐기다
등록 2011-04-08 12:53 수정 2020-05-02 19:26

이비사에서 며칠 동안 씻지도 않은 내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있어 보였는지 나더러 한국에서 교육을 많이 받은 부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노 텐고 카사, 노 텐고 디네로, 노 텐고 나다”(No tengo casa, No tengo dinero, No tengo nada)라고 답했다. “집도 없고, 돈도 없고, 가진 게 없다”는 말인데 그들은 내 말에 하나같이 얼굴 가득 밝게 웃으며 자기들과 똑같다며 좋아했다. 없는 것이 자랑인 이유는 그들의 가난이 자발적이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창조적인 가난은 자발적인 가난뿐이다.

이비사의 폐건물에서 ‘합법적 스쾃’을 하며 같이 지냈던 지와 다리오의 친구들. 지와 다리오 제공

이비사의 폐건물에서 ‘합법적 스쾃’을 하며 같이 지냈던 지와 다리오의 친구들. 지와 다리오 제공

 이비사에서 사귄 친구들은 스페인 전역에서 온 괴짜들이었다. 그들은 하는 일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처럼 건강한 젊은이들이 사회를 위해 일하지 않는 것은 낭비라고 여기는 사회 일반의 가치관에 반항하는 불량 시민들이었다. 그들과 만나 친구가 된 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초대를 받았다.

 도착한 곳은 지중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전망 좋은 리조트(?)였다. 땡전 한 푼 없는 그들이 무슨 돈이 있어 리조트에 사는지 궁금해하겠지만, 그곳은 한때 리조트였던 폐건물이다. 건물 주인이 리모델링할 돈이 없어 흉측하게 방치한 건물인데, 그래도 맘씨 좋은 사람인지 있을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지낼 수 있게 허락했다. 이런 걸 운 좋은 ‘합법적 스쾃’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젊은이 30여 명이 살고 있었다. 이비사에 와 일하며 착실히 돈을 모으는 사람들부터 우리 같은 장기 여행자까지, 서로 다른 이유지만 허름한 한 지붕 밑에 각자의 짐을 풀었다. 모두 개성이 강했지만 보금자리를 공유하는 사람끼리 자체적 규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을 아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두 받는다면 거지 소굴이 될 테니 말이다. 우리는 함께 토론하며 그곳을 더 완벽한 공동체 모습으로 만들어나가려 애썼다.

 우리가 지내는 동안 몇 번의 회의를 통해 공동 예산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하루에 한 사람당 1유로씩 내고 그 돈을 모아 음식을 장만하면 30명이 먹을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고기 한 점 구경할 수 없는 부실한 식사였지만 식재료가 싼 스페인에서는 대식구를 위한 스파게티나 인도 커리 등을 만들 수 있었다.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당번으로 정하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퇴출시키기로 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말 많은 스페인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모습을 이야기했다. 이런 것을 두고 ‘사람들은 원래 정치적’이라는 말이 나온 것일까? 남들이 보기엔 집시 캠프 같은 이 폐건물에서조차 우리는 규율의 필요성을 느끼고 서로의 편의를 위해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하려 노력했다.

 친구들이 나에게 좀더 쉽게 다가올 수 있게 하려면 먼저 나의 벽을 부수어야 했다. 언어 장벽을 좁히려고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돈이 없어 학교에 갈 수 없었지만, 가끔 이것저것 주워들은 스페인어를 알아듣고 대꾸하면 친구들은 환호해주었다.

 우리는 날마다 파티를 했다. 살바의 봉고차에 몇 명이고 태워 숲 속이든 해변이든 파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갔다. 관광객이 아무도 찾지 않는 야생에서의 공짜 파티, 진짜 이비사 스타일의 파티였다.

 우리는 여행할 때 언제나 알 수 없는 이끌림을 통해 지낼 곳을 찾았다. 자신이 있을 곳은 언제나 존재한다. 자신이 있는 모든 곳이 ‘집’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면 동굴도 폐건물도 집이 되었다. 이비사에 있는 나의 집과 가족, 세상은 그들을 겉모습으로 판단해 낙오자라고 낙인찍을 수도 있으나, 그들은 누구보다 지혜롭게 자신이 속한 미니 사회를 이끌어나갔고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지와 다리오 ‘배꼽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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