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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보다 검은 코트디부아르의 미래

선거 부정 논란으로 두 명의 대통령 출현한 ‘카카오의 나라’…
뿌리 깊은 지역·종교·종족 갈등 속에 내전으로 번지나

제840호
등록 : 2010-12-14 16:14 수정 : 2010-12-1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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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아’와 ‘카카오’의 차이는?

주위에 물었더니,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같은 것 아냐?” “코코아 원료가 코코넛이고, 초콜릿 원료가 카카오 아냐?” “야자수에 달리는 게 카카오 아냐?”

카카오나무의 럭비공 모양 열매가 카카오다. 코코아는 카카오의 알맹이를 갈아서 만든 카카오매스를 물에 잘 풀리도록 만든 가루 상품이다. 카카오매스에 당분 등을 섞어 굳히면 초콜릿이 된다. 코코넛은 흔히 빨대를 꽂아 즙을 먹는 둥근 모양의 전혀 다른 열매다. 카카오나무의 학명은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로, ‘신의 음식’이라는 뜻이다.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국(약 45%)인 아프리카 중서부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의 현실은 달콤한 초콜릿과는 너무도 먼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다.

선관위·헌법위가 각각 당선자 선포

코트디부아르에 두 명의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중 한 명인 알라산 와타라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12월2일 로랑 그바그보 현 대통령의 고향 마을인 가그노아의 거리 한복판에서 와타라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나라는 두 명의 대통령이 대립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지난 11월28일 실시된 대선 결선투표가 직접적 계기가 됐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공화당(RDR)의 알라산 와타라 전 총리가 54.1%의 지지율을 얻어 45.9%에 그친 로랑 그바그보 현 대통령을 꺾고 승리했다고 12월2일 발표했다. 하지만 하루 뒤 그바그보 대통령이 장악한 헌법위원회가 7개 선거구에 대해 선거부정 및 무효표를 주장하며 그바그보의 승리를 선포했다. 4일 두 사람은 각각 대통령 취임선서를 강행하고, 5일에는 총리도 따로 지명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와타라 전 총리 지지자들이 거리시위를 벌이는 등 내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트디부아르는 한동안 서아프리카에서 ‘평화의 섬’ ‘경제 기적’ ‘불어권의 맏형’으로 불렸다. 1842년 프랑스에 점령당한 뒤 1960년에 독립한 이 나라는 독립 뒤 20여 년간은 카카오와 커피 등 열대작물을 수출하면서 식민지에서 벗어난 대표적 모범국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자원 고갈, 경제위기, 부채 증가 등으로 위기가 서서히 다가왔다. 혼란은 1993년 말 ‘아프리카의 현인’으로 불리며 재임 33년간 코트디부아르의 성장과 안정을 이끌었던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초대 대통령이 88살에 숨지면서 터져나왔다. 결국 1999년 로베르 게이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우푸에부아니 대통령의 후임인 앙리 베디는 프랑스로 도망가기에 이른다. 2000년 민중봉기로 게이 장군이 쫓겨나고 그바그보 대통령이 취임하지만 이는 또 다른 대립의 시작에 불과했다. 뿌리 깊은 남북 및 인종 간의 싸움이 불붙었다. 남북 갈등의 비극은 한반도만의 얘기는 아니다.

북부 지역은 척박한 사바나 지대로 농업이 어렵고, 무슬림이 대부분이다. 반면 열대우림 지역인 남부는 카카오·커피·면화 등 플랜테이션 농업이 번창해 북부보다 삶이 풍요로웠다. 종교는 기독교인이 다수다. 삶에 찌들린 북부 주민들이 남부로 일자리를 찾아 내려오자, 가뜩이나 경제 상황이 나빠지던 차에 남부 주민들의 불만은 북부 이주민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카카오 농사를 위해 몰려든 이웃 국가 이주자들도 남부 주민들의 불만을 낳았다. 코트디부아르 인구는 현재 약 2160만 명(유엔 추정)인데, 이 가운데 약 26%가 부르키나파소·말리·라이베리아 등 상대적으로 더 가난한 주변국 출신이다. 코트디부아르는 구매력지수(PPP)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2009년 1700달러인 반면, 말리(1200달러)·부르키나파소(1200달러)·라이베리아(500달러) 등은 한참 뒤진다. 여기다 종교적 차이까지 이주자에 대한 불만을 키웠다. 무슬림(38.6%)·기독교인(32.8%)·원시신앙인(11.9%)으로 구성된 이 나라에서 이주자의 70%가 무슬림이고 20%만 기독교인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절대다수인 남부 주민 사이에서 북부 주민이나 이주자에 대해 싸잡아 거부감이 커진 것은 당연하다.

‘2등 국민’ 차별받은 북부 주민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이 12월4일 아비장의 대통령궁에서 강행한 대통령 취임식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기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부아리테’, 곧 코트디부아르 국민의 정체성 논란이 빚어진 배경이 됐다. 북부 주민들은 ‘진짜 코트디부아르인이 아니다’는 비난을 듣고 ‘2등 국민’처럼 차별을 받았다. 신분증 발급이나 투표권을 거부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지난 2000년 대선에서는 북부 이슬람계를 대표하는 와타라 전 총리가 순수 코트디부아르인이 아니라며 국적 증빙서류 위조 혐의로 기소되고 대통령 후보 자격이 박탈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자국의 총리를 지낸 사람을 단지 부모가 이웃 나라 부르키나파소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선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이렇게 2000년 10월 대선에서 코트디부아르의 정체성을 주장한 기독교도인 그바그보가 당선된다.

결국 높아지던 북부 주민들의 불만은 2002년 북부를 장악한 이슬람 반군과 남부의 기독교 정부 세력 간의 무력충돌로 터져나왔다. 반군이 경제 수도 아비장까지 진출해 코트디부아르 전체를 장악할 정도에 이르렀다. 프랑스군의 개입으로 정전이 성립됐지만 국토는 둘로 갈라졌다. 남부는 정부군이, 북부는 반군이 각각 통제하게 됐다. 2003년 1월 ‘리나-마르쿠시스 협약’이 체결됐지만 2004년 3월 아비장에서 다시 반정부 시위대와 정부군 사이에 120명이 숨지는 유혈충돌이 벌어졌다. 2004년 4월 이후 유엔 코트디부아르평화유지군(ONUCI)이 약 8천 명 주둔하고, 2007년 3월 북서부 반군 사령관 기욤 소로가 총리에 임명되면서 그나마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 10월 취임한 그바그보는 2005년 10월 임기가 끝났지만 시국 불안 등을 이유로 수차례 대선을 연기해왔다. 이번에 드디어 선거를 치렀지만, 북부 반군 신세력(FN)이 같은 북부 출신인 와타라를 위해 선거 부정을 도왔다고 주장하며 개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와타라의 정체성을 문제 삼아 후보 자격을 박탈했던 2000년 대선 때와 같은 정체성 논란이 깔려 있다. 남북 갈등에 더해, 60여 개 종족으로 이뤄진 이 나라에서 기독교도인 그바그보는 최대 종족인 베테족(약 20%) 출신이고, 무슬림인 와타라는 3대 규모인 바울레족(12%)이다. 종교에 종족 갈등까지 뒤섞여 있다. 베테족은 바울레족 출신인 초대 대통령 우푸에부아니의 집권 기간에도 꾸준히 저항했다.

서방의 사임 압력에 버티는 그바그보 대통령

코트디부아르

타보 음베키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반군 신세력 지도자 출신인 소로 총리는 와타라 전 총리 지지를 선언했고, 군부는 그바그보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은 지난 12월9일 “그바그보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의 사임 요구를 거절한 것은 물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전화를 받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엔은 북부 지역에서 일부 폭력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대선이 민주적·평화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안전보장이사회가 경제 제재 등을 경고하면서 그바그보의 퇴진을 압박하고 있다. 와타라 전 총리 진영은 유엔에 군사 개입을 통해 그바그보를 축출하도록 요청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바그보 진영이 지난 12월8일 권력 분점 협상 의지를 밝혔지만 와타라가 이를 거부하면서 내전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전 국민의 35%가 코코아 농업에 종사하고 ‘카카오가 잘되면 모든 것이 잘된다’는 코트디부아르. 정치가 남북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는커녕, 분단과 대립으로 내몰기는 한반도와 비슷해 보인다. 참담한 비극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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