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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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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 남을 어떤 이유도 모르겠다”

미 국무부 소속 지역재건팀 책임자 매슈 호 사직서
“부패한 정부와 함께하다 수렁에 빠진 베트남전 악몽 떠올라”
등록 2009-11-05 18:23 수정 2020-05-03 04:25

“큰 유감과 실망을 안고 국무부 외교정무관실 (아프가니스탄) 자불 지역 민간대표의 직에서 사임하고자 합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년 세월 중 6년여를 이국 땅에서 미 합중국을 위해 일했습니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또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두 차례 미 해병 장교와 국방부 민간요원으로 이라크에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5개월여를 아프간에서 보내면서 저는 미국이 아프간에 남아 있어야 하는 전략적 목적에 대한 이해도 믿음도 잃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현 아프간 전략과 미래 전략을 이해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임하는 이유는 전략 때문이 아닙니다. 미국이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아프간에 있느냐에 대한 회의 때문입니다.”

‘유엔도 불타고 있다.’ 10월27일 오전 탈레반으로 보이는 무장괴한의 공격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유엔 게스트하우스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날 공세로 유엔 직원 3명을 포함해 8명이 숨졌다. 카불의 현주소다. 사진 AP 연합

‘유엔도 불타고 있다.’ 10월27일 오전 탈레반으로 보이는 무장괴한의 공격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유엔 게스트하우스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날 공세로 유엔 직원 3명을 포함해 8명이 숨졌다. 카불의 현주소다. 사진 AP 연합

미 국무부 소속으로 아프간 남부 자불주 지역재건팀(PRT) 책임자로 일했던 매슈 호(36)가 지난 9월 상관에게 보낸 4쪽 분량의 사직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국무부 인사로 아프간 전쟁에 반대해 사임한 것은 호가 처음이다. 그는 10월27일 와 한 인터뷰에서 “난 ‘평화광’도 아니고, 대마초나 피워대며 ‘세상 사람들이 다 사랑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히피는 더더욱 아니다”라며 “그저 아프간 전쟁은 싸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말했다. 신문이 전하는 그가 아프간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를 들여다보자.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아프간 남부서 근무

매사추세츠주 터프츠대학을 졸업한 호는 잠시 출판사에서 일하다 1998년 해병대에 입대했다. 5년여 군 생활 동안 주일미군으로 복무하기도 한 그는 전역과 함께 국방부 민간요원으로 옷을 갈아입고 이라크로 향했다. 사담 후세인의 고향인 바그다드 북부 티크리트에서 재건사업을 지휘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2005년 귀국했지만, 이듬해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지면서 호는 군복을 입고 다시 이라크로 날아갔다. 배치된 곳은 바그다드 서부 안바르주, 팔루자로 상징되는 저항세력의 거점이었다.

그곳에서 보낸 1년, 호는 숱한 죽음을 목도했다. 2007년 봄 귀국한 그가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와 한 인터뷰에서 “2006년 12월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동료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졸도할 때까지 술을 마셔댔다”고 말했다. 그해 말 평상심을 찾아가던 그에게 옛 동료들은 “국무부가 재건·개발 전문가를 뽑는다”고 귀띔했다. 자신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했고, 군과 민간을 아우른 풍부한 현장 경험을 높이 산 국무부도 선뜻 그를 고용했다. 올 초 그는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

수도 카불 근무를 거쳐 지난 7월 부임한 남부 자불은 ‘저항의 땅’이었다. 남서쪽으론 탈레반의 발상지라 할 칸다하르가, 남쪽으론 파키스탄 국경이 맞닿아 있는 그곳에서 그는 “손에 닿는 책이면 뭐든 구해 읽었다”고 했다. 1980년대 소련의 굴욕과 1990년대 탈레반 치하의 삶, 그리고 2001년 10월 침공 이래 8년간 지속된 아프간 점령의 현실을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8월 치러진 아프간 대선에서 온갖 부정이 판치는 걸 목격한 것은 그의 ‘결심’을 앞당기게 했다. 그는 사직서에서 “많은 아프간 사람들은 그저 미군이 자기 나라에 있기 때문에 싸우고 있다”며 “미국은 지금 오랜 내전을 지속하는 아프간에서 애꿎은 병사들의 죽음을 강요하고 있다”고 썼다.

‘10월은 잔인한 달, 최악의 달.’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10월29일 아프간 참전 미군 전사자의 유해가 송환되고 있는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운구 행렬이 지나가자 고인에게 거수경례로 예를 표하고 있다. 10월 한 달간 아프간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은 2001년 10월 이래 가장 많은 55명을 기록했다. 사진  REUTERS/ JIM YOUNG

‘10월은 잔인한 달, 최악의 달.’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10월29일 아프간 참전 미군 전사자의 유해가 송환되고 있는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운구 행렬이 지나가자 고인에게 거수경례로 예를 표하고 있다. 10월 한 달간 아프간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은 2001년 10월 이래 가장 많은 55명을 기록했다. 사진 REUTERS/ JIM YOUNG

침공 8년 만에 미군 희생자 ‘사상 최대’

호가 사직서에서 내놓은 지적은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2009년 10월, 아프간 주둔 미군은 침공 8년 만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 10월의 마지막 주는 특히 유혈로 얼룩졌다. 월요일인 26일엔 북서부 바그디스주에서 저항세력과 교전을 벌이던 중 현장을 벗어나던 미군 헬리콥터가 추락해 병사 7명과 마약단속국(DEA) 요원 3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같은 날 남부 지역에서도 전투 지원에 나섰던 헬리콥터 2대가 충돌하면서 4명이 전사했다.

10월27일엔 남부 칸다하르에서 2건의 매복 공격이 잇따라 벌어져 순찰근무에 나섰던 미군 8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차례 모두 도로매설 사제폭탄(IEDs) 공격에 이은 총격전, 유령처럼 출몰하는 탈레반의 ‘공식’에 따라 벌어졌다. 은 이날 “칸다하르에서 8명이 숨지면서 10월 전사자 수는 55명으로 늘었다”며 “이로써 아프간 대선을 전후로 탈레반의 공세가 집중되면서 51명이 전사했던 지난 8월의 기록을 깨고, 10월이 개전 이래 최악의 달로 기록되게 됐다”고 전했다. ‘10월의 전사자’ 가운데는 10대도 끼어 있다. 미 육군 제4공병대대 소속으로 지난 10월15일 칸다하르에서 순찰근무 도중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브랜든 스타이어 일병은 갓 19살을 넘긴 터였다.

“아프간 주둔 외국군과 아프간 보안군 및 경찰병력을 합하면 탈레반 병력의 12배가 넘는다. 그럼에도 ‘승리’는 요원하기만 하다.”

은 10월27일 새삼 이렇게 지적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지휘부는 추가 병력 투입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병력 증파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게다. 현재 아프간에 주둔하는 외국군은 미군 6만8천여 명을 포함해 모두 10만4천 명에 이른다. 여기에 아프간 보안군 9만4천여 명에, 비슷한 규모의 경찰병력이 버티고 있다. 30만 대군이다. 탈레반은 어떨까? NATO와 미군 지휘부는 탈레반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지만, 통신은 NATO 사령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따 “내부적으론 탈레반 병력 2만 명에, 민병대 등 보조인력 몇천 명 수준으로 보고 작전계획을 짜고 있다”고 전했다. 미군 쪽도 탈레반 전력을 ‘2만5천 명선’으로 파악하고 있단다.

되새겨볼 일이다. 베트남전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68년 현지에 파병된 미군은 120만 명, 이른바 ‘베트콩’으로 불린 베트남민족해방전선 병력의 4배 수준이었다. 단순 비율로 따져 베트남보다 약 3배나 많은 병력이 아프간에 투입돼 있는 게다. 그럼에도 상황은 ‘최악’이다. 호가 사직서에서 ‘베트남의 악몽’을 떠올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부패와 무능, 측근정치와 전범이자 마약 밀매를 일삼는 군벌에 둘러싸인 채 선거부정까지 저지른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정부를 조목조목 비판한 뒤 이렇게 적고 있다.

“이런 정부를 지원하면서도 미국은 저항세력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전의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미국 내부의 안정을 해치면서까지 국민의 신망을 잃은 부패한 정부를 지지했고, 교만하고 무지하게도 우리식 냉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민족주의에 기반한 저항세력과 맞섰던….”

‘30만 대 2만5천’이지만 전망 불투명

1979년 12월27일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은 1989년 2월15일 철군을 시작할 때까지 9년2개월을 악전고투했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것은 2001년 10월7일이다. 점령의 기록은 8년을 넘어섰다. 인터넷 매체 은 10월27일 이렇게 지적했다. “한 나라를 침략해 점령했다. 그러곤 침략과 점령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반군’ 또는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었다. 이제 ‘반군’과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기 위해 그 나라에 계속 주둔하면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독한 순환논법이다. 그들이 싸우는 유일한 이유가 바로 우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거늘….”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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