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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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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기슭서 들리는 평화 깨지는 소리

기존 정치권-마오주의 세력 갈등 끝에 총리 사임으로 위기 맞이한 네팔의 민주주의
등록 2009-05-15 12:02 수정 2020-05-03 04:25
취임 9개월째를 맞은 마오주의 공산당 지도자 푸슈파 카말 다할(프라찬다) 총리가 5월4일 자신의 집무실에서 전격 사임을 밝히고 있다. 프라찬다 총리의 사임으로 네팔 정국이 혼란의 소용돌이로 빨려들고 있다. 사진 REUTERS/ DEEPA SHRESTHA

취임 9개월째를 맞은 마오주의 공산당 지도자 푸슈파 카말 다할(프라찬다) 총리가 5월4일 자신의 집무실에서 전격 사임을 밝히고 있다. 프라찬다 총리의 사임으로 네팔 정국이 혼란의 소용돌이로 빨려들고 있다. 사진 REUTERS/ DEEPA SHRESTHA

흔히들 말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10년여 핏빛 내전으로도 부족한 겐가? 그동안 흘린 ‘피’가 차고도 넘칠 텐데, 네팔의 민주주의가 쉽지 않다. 카트만두의 공기가 다시 무거워지고 있다.

네팔 최대 정치세력인 마오주의 공산당 지도자 푸슈파 카말 다할, ‘프라찬다 동지’로 불리는 그가 5월4일 총리직을 전격 사임했다. 취임한 지 9개월여 만의 일이다. 그가 사임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앞서 지난 5월3일 프라찬다 총리가 이끄는 네팔 정부는 루크만구드 카타왈 육군 참모총장을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해임했다. 하지만 람 바란 야다브 대통령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카타왈 총장에게 ‘현직을 유지하라’고 통보했다. 의회에서 간선으로 뽑힌 대통령이 국민이 직접 뽑은 다수당 출신 총리의 결정을 뒤엎은 게다. 프라찬다 총리로선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제헌의회 선거서 압승한 마오주의 정당

돌이켜보자. 네팔에서 총성이 잦아든 것은 지난 2006년 11월 맺은 ‘포괄적 평화협정’ 덕분이다. 1996년 2월 시작된 네팔 마오주의자들의 ‘인민의 전쟁’은 10년여 세월 만에 그렇게 막을 내렸다. 정치권에 진출한 마오주의자들은 여론의 지지 속에 왕정 타파와 공화국 수립에 박차를 가했다. 2008년 4월 제헌의회 선거는 그 분수령이었다.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압도적으로 제1당이 된 마오주의 공산당은 연립정부 구성을 주도했다. 제2당인 네팔 국민회의당이 끝까지 연정 참여를 거부해 난항을 겪은 끝에 의회에서 투표를 통해 프라찬다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출범시켰다. 공화국이 선포됐고, 갸넨드라 국왕은 폐위됐다. ‘평화’가 머지않은 듯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핏빛 내전을 딛고 평화와 화합의 미래로 가는 길을 멀고도 험난했다. 첫째, 기존 정부군과 마오주의 반군이란 ‘두 개의 군대’ 통합 문제가 지지부진하다. 둘째, 장기간 지속된 군사적 대치 과정에서 징발된 토지를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문제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셋째, 과도헌법에 따라 2010년 5월까지 마무리해야 할 새 헌법은 초안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평화협정의 등줄기를 이루는 이들 쟁점이 여전하니, 네팔의 평화는 그 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예 평화협정 체결 당시부터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었던 군 통합 문제에서 파열음이 나고 만 게다.

네팔 내전의 한 당사자였던 마오주의 반군, 이른바 ‘인민해방군’ 출신자는 1만9천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평화협정에 따라 현재 네팔 각지에 설치된 유엔 캠프에 분산 수용돼 있다. 마오주의 진영에선 애초 올 7월까지 이들을 정규군에 편입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제헌의회에 군 통합특별위원회까지 따로 꾸려둔 상태다. 하지만 특위에 참여한 국민회의당의 미온적인 태도 탓에 통합의 기본 원칙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여기에 기존 군부와 마오주의 진영 간의 해묵은 반목이 문제를 키워왔다. 그 중심에 카타왈 참모총장이 버티고 있다.

군 수뇌부 반대로 군 통합계획 지지부진
루크만구드 카타왈 네팔 육군 참모총장이 지난 4월24일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민주주의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카타왈 참모총장은 정부군과 마오주의 반군을 통합하라는 명령에 “세뇌된 자들과 같은 군복을 입을 수 없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 사진 REUTERS/ GOPAL CHITRAKAR

루크만구드 카타왈 네팔 육군 참모총장이 지난 4월24일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민주주의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카타왈 참모총장은 정부군과 마오주의 반군을 통합하라는 명령에 “세뇌된 자들과 같은 군복을 입을 수 없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 사진 REUTERS/ GOPAL CHITRAKAR

애초 군 통합 문제는 군부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마오주의자를 포함한 공화파에선 이를 통해 ‘과거사 청산’은 물론 왕당파 중심으로 짜인 부패한 네팔 군부를 개혁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장기간 총질을 해온 인민해방군과 같은 군복을 입는 것을 군부가 반길 리 없었다. 특히 내전 기간에 벌인 군부의 각종 인권유린에 대한 진상조사 움직임으로 연결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프라찬다 총리의 군 통합 지시에 카타왈 참모총장을 포함한 군 수뇌부는 “마오주의 반군 출신들은 정치적으로 세뇌돼 있기 때문에 정규군으로 통합시킬 수 없다”며 버텨왔다.

마오주의 진영의 정치적 약진을 경계해온 기성 정치권도 이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국민회의당은 물론 연정 파트너인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조차 카타왈 참모총장 해임에 대해 “마오주의자들이 일방적으로 해임 결정을 내렸다”고 비난한 것도 이런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카타왈 참모총장이 그간 보여온 행태는 해임의 명분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카타왈 참모총장은) 군에 대한 문민 우위란 민주주의 원칙을 철저히 무시해왔다.” 인도 일간 는 5월4일치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실제 카타왈 총장은 정부의 허가도 없이 일방적으로 신병을 모집해 일선에 배치하는가 하면, 장성급 8명의 임기를 멋대로 연장했다. 애초부터 그는 마오주의자들과의 평화협정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최근엔 그가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떠돌던 터였다.

프라찬다 총리는 5월4일 네팔 전역에 방송된 사임 연설에서 “(카타왈 참모총장 해임을 무효화한) 야다브 대통령의 결정은 신생 민주주의와 막 발걸음을 뗀 평화체제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라며 “군에 대한 문민 우위의 원칙이 무너졌으며,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금지령이 내려졌음에도 이튿날부터 수도 카트만두 중심가에서 붉은 깃발을 앞세운 마오주의 공산당 지지자들의 대규모 거리시위가 시작됐다. 일부 시위대는 대통령 집무실 부근으로 몰려들어 연좌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인권운동가를 포함해 6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5월7일엔 500여 명의 여성 시위대가 카타왈 참모총장 즉각 해임을 요구하며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다 진압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제헌의회 선거로 마오주의 진영이 권력에 다가섰지만, 네팔인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진 게 없다. 선거 직후부터 극한 폭력사태는 수그러들었지만, 각지에서 크고 작은 유혈충돌이 끊이지 않는 등 치안은 여전히 엉망이다. 경찰은 치안 확보 능력이 없고, 군은 민주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매일 10시간 넘게 정전되는 상황도 바뀐 게 없다. 물가는 폭등했고, 석유는 부족하다. 프라찬다 총리는 사임 연설에서 “정부가 적대세력에 둘러싸여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네팔 국민들이 마오주의 공산당에 걸었던 희망의 불씨도 점차 사그라지는 모양새였다. 마오주의 공산당으로선 이래저래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는 계제였다.

프라찬다 총리의 사임으로 네팔 연정은 무너졌다. 야다브 대통령은 5월4일 25개 주요 정당에 닷새 안에 새 연립정부를 구성하라고 통보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리라는 점은 야다브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터다. 당장 5월5일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이 제안한 제 정당 회합이 마오주의 진영의 반대로 무산됐다. 연정 구성이 어려워지면 권력 공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야다브 대통령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헌법에 따라 의회에서 다수결로 총리를 선출하라고 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게다. 마오주의 진영에서 이미 ‘실력 저지’를 공언했기 때문이다.

1년 뒤엔 헌정 중단 사태 가능성도

취약하긴 했지만, 마오주의 공산당 주도의 연립정부는 신생 공화국 네팔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제헌의회 최대 정당인 마오주의 진영의 참여 없이는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정부를 구성할 수 없다. 대치 국면이 길어지면, 새 헌법 성안 작업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자칫 과도헌법이 정한 2010년 5월이란 시한을 넘긴다면, ’권력 공백’을 넘어 ‘헌정 중단’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국민회의당을 비롯한 기존 정치권에선 “마오주의자들이 전제주의 국가를 만들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우려해야 하는 건 “국가의 기능 자체가 정지되는 상황”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팔의 시련이 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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