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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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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과거사 청산

재임 중 벌어진 불법 행위에 대해 상원 법사위원장이 ‘진실위’ 설립 촉구
등록 2009-02-19 06:24 수정 2020-05-02 19:25

지난 1월20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오전 7시께 일찌감치 공식 일정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버락 오바마 신임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이날 오후 부시 전 대통령 일행은 ‘해병 1호기’로 불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서둘러 워싱턴 외곽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향했다. 일행은 이내 공군 소속 보잉 VC25기에 올라 텍사스주 미들랜드로 향했다. 전용기뿐이 아니라 모든 비행기는 대통령이 타는 순간부터 ‘공군 1호기’가 된다. 더는 아니었다. 이날 부시 전 대통령 일행이 탄 비행기는 ‘공군 특별기 28000’으로 불렸다.

“텍사스로 돌아와 기쁘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REUTERS/ JIM YOUNG

조지 부시 전 대통령. REUTERS/ JIM YOUNG

동부 코네티컷주 출신인 부시 전 대통령은 미들랜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부인인 로라 부시 역시 미들랜드에서 성장했다. 이날 밤 미들랜드의 웨이코 공항에 내린 부시 전 대통령은 3천여 환영 인파에게 “대통령 생활도 즐거웠지만, 텍사스의 석양보다 좋은 건 없다”며 “재임 중에도 가끔 오가긴 했지만, (임기를 마치고) 아예 집으로 돌아오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그런데 이를 어쩐다? 조만간 부시 전 대통령이 다시 워싱턴으로 날아가야 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듯싶다. 워싱턴 정가에서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 신디케이트 는 지난 2월10일 인터넷판에서 패트릭 레이히 미 상원 법사위원장이 부시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벌어진 불법 행위의 진상을 조사할 미국판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실위) 설립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는 레이히 위원장이 2월9일 워싱턴의 조지타운대에서 한 강연 내용을 따 이렇게 보도했다.

“…진보 진영에선 부시 행정부 시절 저질러진 각정 불법·위법 행위에 대한 전면 조사와 처벌을 원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의 문제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며,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의 법과 원칙이 위험스런 수준까지 훼손됐다. 실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명확히 가려내야 한다. …핵심 증인에 대한 강제 소환권과 증언자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일종의 ‘진실위’ 설립이 타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진실위 설립 목적을 1975년 미 상원 정보위원회 주도로 만들어진 ‘처치위원회’에 견줘 설명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정보기관의 불법적인 정치 개입과 국내 첩보활동에 대한 진상조사를 위해 설치된 ‘처치위원회’의 활동은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의 개혁으로 이어진 바 있다. 레이히 위원장은 “때로 미래로 나아가려면 먼저 과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며 “이는 정치적 앙갚음 차원이 아니라, 앞으로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이히 위원장뿐 아니다. 존 코이너스 하원 법사위원장도 지난 1월13일 489쪽 분량의 특별보고서를 내어 “신임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불법 행위에 대한 전면 조사와 처벌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민주당 중진인 셸던 화이트하우스, 존 레빈 상원의원 등도 ‘과거사 청산’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전문 인터넷 매체 는 2월10일 ‘과거사’의 핵심 쟁점으로 △영장 없는 불법 도·감청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 및 불법 감금 △CIA 요원의 신분을 고의로 노출시킨 ‘리크게이트’ △앨버토 곤잘러스 전 법무장관이 연방검사 9명을 무더기 해고해 정치 보복 논란을 부른 사건 등 크게 네 가지로 꼽았다.

테러 용의자 고문 등 핵심 쟁점 네 가지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 공연히 국론만 분열시킬 것”이란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퇴임 뒤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성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의 과거사 청산’은 가능할까? 상하 양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당론을 하나로 모으기만 하면 된다. 본디 영원히 감출 수 있는 비밀은 없는 법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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