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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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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전쟁 노름

일주일째 이어진 폭격으로 420명 숨지고, 2100명 다친 가자 지구… 그 두려운 참극
등록 2009-01-06 05:01 수정 2020-05-02 19:25

‘하누카.’ 빛의 축제라 불린다. 기원전 2세기 예루살렘 성전을 재헌정한 때를 기념하는 유대 명절이다. 매년 11월 말에서 12월 말 사이 여드레간 히브리력에 따라 엄수된다. ‘이교도’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는 유대인의 오랜 의지를 오롯이 담고 있다. 2008년 하누카는 12월21일 해질 녘에 시작돼 12월29일 일몰과 함께 막을 내렸다.

이슬람 사원도 성역은 아니다. 12월29일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은 가자지구 북부 제발리야의 이슬람 사원이 폐허로 주저 앉아 있다. REUTERS/ MOHAMMED SALEM

이슬람 사원도 성역은 아니다. 12월29일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은 가자지구 북부 제발리야의 이슬람 사원이 폐허로 주저 앉아 있다. REUTERS/ MOHAMMED SALEM

동요에서 따온 작전명 ‘캐스트 리드’

하누카 기간이면 유대인 가정에선 팽이처럼 생긴 ‘드레이델’이란 일종의 전통 주사위로 내기를 한단다. 사각뿔 모양의 몸체에, 돌릴 때 사용하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 를 보면, 전통 드레이델의 4개 면에는 각각 히브리어 알파벳 ‘N(넌)·G(기멜)·H(헤이)·S(신)’이 새겨져 있다. ‘네스 카돌 하야 샴’(거기서 위대한 기적이 일어났다)이란 말의 약어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는 네 번째 알파벳이 S에서 P(페이)로 바뀌었는데, 뜻도 ‘여기서 위대한 기적이 일어났다’로 달라졌다.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접고, 마침내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드레이델 놀이는 한 사람이 판을 모두 차지해야 끝이 난단다. 이스라엘 군 당국은 12월27일 오전 11시30분 시작된 ‘가자 전쟁’의 작전명을 드레이델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동요에서 따왔다. 유대 민족시인 하임 나흐만 비알리크(1873~1934)가 쓴 란 노랫말에서 작전명 ‘캐스트 리드’가 나왔단다. 이스라엘에 가자 전쟁은 일종의 ‘노름’인 게다.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전쟁 노름’을 다시 시작한 것에 놀랄 필요는 없다. 1967년 가자를 점령한 이후, 그 땅에선 전쟁 노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예상을 뛰어넘은 것은 가공할 폭력의 수위다. 아랍 위성방송 는 1월2일 인터넷판에서 “일주일째 이어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420여 명이 숨지고, 2100여 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1967년 침공 이래 유례를 찾기 어려운 참화다. 아랍의 거리가 분노로 치를 떠는 이유다.

가자에서 이스라엘군이 벌이고 있는 ‘작전’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은 1월1일 벌어졌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하마스 권력 서열 3위이자 무장투쟁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진 셰이크 니자르 리얀(49)을 노린 폭격에 나섰다. 리얀은 가자지구 북쪽 제발리야 중심가에 있는 4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무려 1t짜리 폭탄을 그의 집에 메다꽂았다. 폭격으로 건물이 통째로 날아가면서, 리얀뿐 아니라 부인과 자녀 등을 포함해 최소한 11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인터넷 매체 등 외신들이 전했다. 폭탄에는 눈이 없고, 살상은 무차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전쟁범죄’로 부를 만하다.

하마스 본부 안에 있다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주검을 앞에 둔 채 가자 주민들이 엎드려 추모를 하고 있다. REUTERS/ LBRAHEEM MUSTAFA

하마스 본부 안에 있다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주검을 앞에 둔 채 가자 주민들이 엎드려 추모를 하고 있다. REUTERS/ LBRAHEEM MUSTAFA

대체 무엇을 얻으려는 겐가? 이스라엘의 무한 폭력 앞에 묻게 된다. 은 12월28일 이번 공세를 주도한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말을 따 “하마스가 쏘아대는 로켓 공격을 더 이상 참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마스와 맺은 6개월 휴전 합의가 종료된 게 12월19일이다. 불과 열흘도 안 돼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했단다. 바라크 장관은 “독립국가라면 (자국민 보호를 위해) 당연히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모든 책임은 하마스에 떠넘겨졌다.

‘봉쇄 계속되는 한’ 불가능한 휴전

따져보자.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중재로 휴전에 합의한 건 2008년 6월19일이다. 휴전 합의 뒤에도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 쪽을 겨냥한 박격포와 카삼 로켓이 산발적으로 날아올랐다. 하마스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독립 무장세력 ‘이슬람 지하드’가 벌인 일이란 게 정설이다. 휴전 합의를 무시하긴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지난 11월4일엔 가지지구를 급습해 하마스 요원 6명을 사살하기까지 했다. 본디 폭력의 악순환이 일방의 책임이긴 어렵다.

이스라엘의 행보도 수상쩍다. 지난 12월13일 이스라엘 정부는 휴전 기간을 연장할 뜻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조건은 하나, 하마스가 합의 내용을 이행하는 것이었다. 일주일 만인 12월20일 하마스는 휴전 기간을 연장할 뜻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봉쇄가 계속되는 한’이란 단서를 달았다. 봉쇄를 푸는 것은 애초 휴전의 합의 내용 중 하나였다. 결국 양쪽은 같은 주장을 한 셈이다. 휴전 합의의 조건을 상대방이 지킨다면, 휴전 기간을 연장할 뜻이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휴전은 연장되지 않았다. 로켓과 박격포가 다시 네게브 사막을 향해 날아들더니, 기다렸다는 듯 ‘충격과 공포’가 가자를 휩쓸었다.

아니, 기다리고 있었다. 6개월의 휴전 기간 내내 이스라엘 쪽은 가자지구 침공 계획을 차근차근 준비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이스라엘 언론을 통해 속속 새나왔다. 영자지 가 12월27일 인터넷판에서 “바라크 국방장관의 직접 지시에 따라 장기간 가자 침공 계획이 차근차근 준비해왔다”고 전했다. 침공에 앞서 신베트 등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가자지구 내 하마스 관련 핵심 시설의 소상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가 이스라엘 군 당국자의 말을 따 전한 소식을 종합하면, 이스라엘군 당국은 이집트의 중재로 휴전협상을 하는 동안에도 가자 침공 계획을 마련하고 있었다. 는 ‘소식통’의 말을 따 “바라크 장관은 휴전 기간에 하마스도 이스라엘과의 대결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겠지만, 이스라엘군 역시 (가자 침공)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가지지구 외곽에 전진 배치된 이스라엘 병사가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장갑차의 무한궤도 사이로 눈에 띈다. REUTERS/ YANNIS BEHRAKIS

가지지구 외곽에 전진 배치된 이스라엘 병사가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장갑차의 무한궤도 사이로 눈에 띈다. REUTERS/ YANNIS BEHRAKIS

‘도발’에 도사리는 표심잡기 음모

우선 광범위한 정보 수집 작업이 시작됐다. 하마스 관련 시설은 물론 가자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장세력의 근거지, 무기 보관 시설, 훈련 장소, 주요 인사의 집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속속 쌓여갔다. ‘설계도’ 수준에 머물렀던 침공 계획은 11월 들어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습격과 하마스의 반격이 엮이면서 실제 ‘작전계획’으로 떠올랐다. 는 “11월19일 카삼 로켓 10여 발과 박격포탄이 이스라엘로 날아들자, ‘캐스트 리드’ 계획안은 최종 결재를 위해 바라크 장관에게 제출됐다”고 보도했다.

휴전 기간 만료를 하루 앞둔 지난 12월18일,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와 바라크 장관이 텔아비브의 이스라엘군 사령부에서 마주 앉았다. 가자 침공 계획은 이 자리에서 공식 승인됐다. 티피 리브니 외교장관에게도 이런 사실이 전해졌지만, 휴전 연장과 관련한 하마스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 실행 시점은 일단 연기됐단다. 는 “이날 밤 총리실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가자에서 로켓 공격이 계속된다면, 하마스와의 정면 대결은 불가피하다’는 말을 흘렸다”고 전했다.

그리고 12월24일, 5시간여에 걸친 각료회의를 거쳐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 침공 계획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어 12월26일엔 국방부와 정부기구 고위 인사들이 마지막 점검회의를 했고, 이윽고 군에 작전명령이 하달됐다. 이날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로 통하는 5개 관문을 ‘인도적 이유’를 대며 개방했고, 100여 대의 트럭이 식량과 의약품을 싣고 가자로 들어갔다. 오랜 정보전의 ‘화룡점정’이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덫’에 꼼짝없이 걸려들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이로부터 꼭 하루가 걸렸을 뿐이다. 이러고도 짐짓 ‘인내심의 한계’를 입에 올렸다. 차라리 서글프다.

폭격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 여성이 자녀로 보이는 아이를 안은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REUTERS/ LBRAHEEM MUSTAFA

폭격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 여성이 자녀로 보이는 아이를 안은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REUTERS/ LBRAHEEM MUSTAFA

영국 일간 은 12월29일치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도발’ 이유를 국내적 요인과 국제적 요인 두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오는 2월10일 총선을 앞두고 이스라엘 정가는 여론에 극도로 민감해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가 이끄는 극우강경파 리쿠드당은 하마스를 몰아붙이지 못한 책임을 물어 바라크 장관의 사임까지 요구한 바 있다. ‘거친 언사’는 표심으로 연결됐다. 리쿠드당은 여론조사에서 리브니 외교장관이 이끄는 집권 카디마당을 앞서나가고 있다. 바라크 장관의 노동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참패할 것이란 결과만 얻고 있다. ‘도박’에 나설 이유로 충분하다.

미국의 ‘정권 교체’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은 “부시 행정부 시절엔 유대 정착촌 확대나 레바논 침공 등에 대해 미국의 지지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 상황이 어떨지 알 수 없다”며 “새로운 미 대통령을 곧바로 시험대에 세우기는 어려우니, 이스라엘로선 (침공) 시점을 앞당기는 게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당선자는 가자 전쟁과 관련해 일주일째 침묵을 지키고 있다.

“가자지구엔 인도적 위기가 없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48시간 휴전’ 제안에 대해 티피 리브니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이렇게 말하고, “따라서 인도적인 이유로 휴전을 선언할 이유도 없다”고 거부했다고 는 1월2일 인터넷판에서 전했다. 리브니 장관은 이어 “휴전은 되레 (인도적 재난이 벌어지고 있다는) 하마스의 주장만 정당화해줄 뿐”이라고 덧붙였다.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음을 선언이라도 하려는 걸까. 예비군 동원령과 함께 이미 대규모 병력을 가자지구 인근에 전진 배치해놓은 이스라엘군은 이날 가자지구에 갇혀 있던 외국인과 외국여권 소지자의 ‘탈출’을 허용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여성들이 12월31일 가자에서 울부짖고 있다. REUTERS/ SUHAIB SALEM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여성들이 12월31일 가자에서 울부짖고 있다. REUTERS/ SUHAIB SALEM

국제사회의 ‘후안무치’한 태도

흔히 낯이 두꺼우면 뻔뻔하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양심을 저버린 탓이다. ‘후안무치’란 말은 이렇게 생겨났다. 이스라엘의 가공할 폭격을 두고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로켓 공격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벌써 8년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번에도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결의안조차 내지 못했다. 미국의 ‘후안’과 국제사회의 ‘무치’가 지속되는 한, 가자의 낯익은 참극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속될 게다. 그것이 두렵다.


봉쇄된 자들의 도시
땅도 바다도 막고 죽으라 하네

전쟁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띤다. 때로 시끄럽고 눈에 보이기도 하지만, 은밀하고 조용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2008년 12월27일 이스라엘군의 전면 공세가 불을 뿜기 전에도 가자지구는 벌써 한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에 시달려왔다. 파타당을 몰아내고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2007년 6월부터 18개월여째, 가자 주민들은 ‘봉쇄’된 섬에 갇힌 채 고통받고 있다. 일상이 곧 전쟁이다.
“장기간에 걸친 봉쇄로 가자지구에선 인간의 존엄성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지난 12월15일 펴낸 주례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가 만들어낸 비극을 촘촘히 기록했다. 보고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지난해 11월 초 휴전 기간 중임에도 폭력사태가 재연되면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봉쇄를 더욱 강화했다. 이후 가자지구로 진입이 허용된 화물트럭은 하루 평균 6대에 불과했다. 봉쇄가 시작되기 직전인 2007년 5월엔 하루 평균 475대의 트럭이 식량과 의약품, 생필품 등을 가득 싣고 가자지구로 들어왔다. 극한 봉쇄의 효과는 쉽게 나타났다. OCHA는 보고서에서 “가자 주민 절대다수가 하루하루 마실 물과 식량, 연료 등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적었다.
가자지구의 유일한 발전소도 봉쇄에 따른 연료 부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가자지구 전역에서 필요한 전력량은 약 237MW에 이른다. 봉쇄 이전까지만 해도 이 가운데 51%(122MW)는 이스라엘에서, 7%(17MW)는 이집트에서 사다가 충당했다. 봉쇄가 시작되면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연료를 틀어막았다. 발전소는 가동 시간을 줄여야 했다. 이에 따라 가자지구 전체적으로 필요 전력량의 41%가 부족해졌다. 번화가인 가자 시티 주민들조차 하루 최대 16시간이나 전력 공급이 끊긴 채 지내고 있다.
전력 부족은 고스란히 공공 서비스 전반에 치명상을 입혔다. 물 정화 및 하수 관리에도 악영향을 끼치면서 공중위생에도 심각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가자 시티 주민의 절반 이상이 일주일에 한 차례, 7시간의 급수로 버티고 있다. 시설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조차 장기간 조달되지 않으면서 상하수도 체계도 무너져내리고 있다. OCHA는 “이미 가자지구에서 공급되고 있는 마실 물 가운데 80%가량이 세계보건기구(WHO)의 음용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하수 오염도 심각해, 장기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하루 약 7천만ℓ에 이르는 처리되지 못한 하수가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치명적인 해양오염은 불을 보듯 뻔하다.
봉쇄는 일자리도 앗아갔다. 2007년 2분기에 32.3% 수준이던 가자지구 실업률은 외부와 접촉이 차단되면서 2008년 2분기에 49.1%까지 치솟았다. 살인적인 실업률로 악명을 쌓아온 가자지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수치다. OCHA는 보고서에서 “일할 의사도, 능력도 있는 10만여 명의 가자 주민이 삽시간에 일자리를 잃으면서 ‘인간 존엄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봉쇄 이전까지만 해도 가자지구 고용의 54%가량은 민간 부문이 떠맡았다. 하지만 장기간의 봉쇄로 가자지구 산업기반은 뿌리째 뽑혀나갔다. 이유는 분명하다. 가자지구 제조업체는 원·부자재의 95%를 외부에 의존해왔다. 판로도 마찬가지여서 △가구 생산량의 76% △의류 생산량의 90% △식료품 생산량의 20%를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지로 내보냈다. OCHA는 “가자지구의 3900여 제조업체 가운데 현재 가동되고 있는 곳은 고작 23개에 불과하다”며 “이에 따라 산업 부문에서만 모두 3만4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전했다.
봉쇄로 인한 연료·설비 부족으로 가자지구 농지의 70%가량에 물을 대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봉쇄가 풀린다 해도, 황폐화한 농지를 복원하는 데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할 터다. 봉쇄의 장기적인 효과다. 땅길만 막힌 게 아니다. 바다도 봉쇄의 대상이다. 봉쇄 이후 농·어업 분야에서도 약 4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은 빈곤과 동의어다. 식량을 구할 돈도 없으니 금융기관을 드나들 이도 없다. 금융체계 역시 붕괴 직전이다. 이미 2008년 1분기에 가자지구 인구의 56%가 만성적인 식량부족 상태로 내몰렸다. 그 땅을, 지금 이스라엘군 최첨단 전투기가 때려대고 있다.


■ 2007년 7월 이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내용

-최대 물품 반입 통로인 카르니 검문소 폐쇄
-모든 물품 외부 반출 금지, 의약품·생필품 이외의 물품 및 산업·생산용품 반입 금지
-연료 반입 극도로 제한
-유일한 보행자 이동 경로인 에레츠 검문소에 팔레스타인인 출입 금지
-이집트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라파 검문소 사실상 폐쇄
-팔레스타인 어민 접근 가능한 바다 면적 대폭 축소

*자료: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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