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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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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민주화는 민중의 심장으로부터

버마 수해 현장 이라와디 르포 ②… 군정을 믿겠는가, 전쟁 불사 서방을 믿겠는가
등록 2008-10-03 06:38 수정 2020-05-02 19:25

버마 이라와디 삼각주에서 벌어진 일은 참혹했다. 사이클론 나르기스는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였지만, 이후는 인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라와디의 참극은 자연재해가 인간의 손으로 넘어갔을 때 빛을 발했다. 버마 군정은 하루아침에 부모와 형제, 집은 물론 모든 것을 잃고 굶주림에 직면한 이재민들을 내팽개쳤다. 국제사회의 원조를 요청하기는커녕 뿌리치고 까다로운 조건을 다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했다.

이라와디 삼각주의 비극은 자연재해가 인간의 손으로 넘어갔을 때 비로소 시작됐다. 버마 군부가 ‘전시용’으로 만들어놓은 이재민 수용소에서 한 남성이 처연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이라와디 삼각주의 비극은 자연재해가 인간의 손으로 넘어갔을 때 비로소 시작됐다. 버마 군부가 ‘전시용’으로 만들어놓은 이재민 수용소에서 한 남성이 처연한 표정을 하고 있다.

긴급 구호 시점에 군정 비난만

이건 무슨 배짱이었을까. 부패한 버마 군정이 유입된 원조물자로 제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을 보면, 물자를 마다하기는커녕 절실히 원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탐욕에 미쳐 자신들의 안위를 위험에 빠뜨릴 만큼은 아니었다. 이 자들은 촌각을 다투는 이재민 구호에 감격스럽게도 태평양 함대 소속의 군함 4척과 22대의 헬리콥터, 상륙함, 수륙 양용차, 5천 명의 병력 등을 보낸 미국의 ‘자애로움’과 역시 구호물자를 실은 해군 상륙함 미스트랄호를 보낸 프랑스의 ‘인도주의’는 단호히 거부했다.

재난 직후 타이와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국가들의 구호물자 지원이 별다른 차질 없이 진행된 것을 고려한다면 버마 군정이 문을 닫았던 대상은 ‘세계’가 아니라 이른바 ‘서방’임을 알 수 있다. 절망적 상황에 처한 이라와디의 이재민들을 볼모로 버마 군정과 서방이 벌인 긴박한 구호게임의 이면은 현기증과 함께 서글픔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은 가장 먼저 구호의 손길을 뻗치며 안다만해로 달려왔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버마 정부가 국민을 위해 즉각적으로 국제사회의 도움에 문을 열어야 하며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인도(人道)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물론 이것은 유럽과 북미의 공통된 입장이었고, 세계 여론도 이를 선도했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가 군함을 보냈으므로 버마 군정에는 인도가 아니라 정치와 군사의 문제였다. 미국과 프랑스는 군함을 보내야 했던 이유를 구호의 긴급함 때문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군함이 아닌 다른 수송 수단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긴급한 구호가 필요할 때 미국과 프랑스는 구호 대신 버마 군정을 비난하는 데 정력을 소모했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유엔과 서방은 석 달이 지나기 전에 이라와디를 깨끗이 잊었다. 게임 하나를 끝낸 것이다.

이라와디의 참극은 미국과 유럽이 버마에서 갈구하는 것이 인권과 구호가 아니라 천연자원과 시장을 둘러싼 이익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1997년부터 시작된 버마에 대한 미국의 경제봉쇄는 인권유린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바로 그 미국의 기업인 유노칼이 가스관 매설을 둘러싸고 버마에서 군정과 결탁해 벌인 강제노동과 같은 짓은 추악한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1996년 인권유린으로 법정에 선 유노칼은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운 미 국무부의 적극적인 변호로 처벌을 피했다.

미국이 보낸 군함의 의미

또 버마 군정은 미국의 경제봉쇄로 전혀 타격을 입고 있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것으로 비쳐지는 버마는 관광객에게는 그럴지 몰라도 이미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하위이나마 충분히 편입된 상태다. 중국, 타이 심지어 남한도 버마의 유전과 가스전 개발에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를 모색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모두 유노칼과 마찬가지로 버마 군정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 유노칼을 합병한 셰브론텍사코는 여전히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 버마 군정 또한 꿀물에 입을 축이고 있다. 1989년 이후 15억달러의 군수물자를 버마 군정에 공급했던 중국은 가스전, 광물, 목재 사업 등에 손을 내밀어 이익을 챙기는 동시에 군정의 최대 돈줄을 자임하고 있다. 말하자면 버마 군정은 미국과 서유럽 없이도 세계화 시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은덕으로 알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 와중에 경제봉쇄는와 버마 군정 지도부의 자국 내 자산 동결 등 강수를 취해왔던 미국과 서유럽은 유쾌할 리 없었다.

이라와디의 피아폰 강변에 자리한 주택가에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휩쓸고 지나간 상흔이 뚜렷하다.

이라와디의 피아폰 강변에 자리한 주택가에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휩쓸고 지나간 상흔이 뚜렷하다.

미 군함의 상륙 시도, 또 일방적인 공중 투하 방식의 구호 등 미국 일각에서 흘러나온 버마 이재민 구하기 방식은 굳이 국제법을 들지 않더라도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미국은 인도를 앞세워 구호가 아니라 공갈을 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경우에서 알 수 있지만 여건이 조성된다면 미국이 군사적 침공을 마다할 이유도 별로 없다. 약삭빠른 버마 군정은 미국의 침공에 대비해 수도를 랑군에서 내륙 깊숙이 위치한 네피도로 옮겼다. 서방의 미디어는 이를 두고 숫자로 운을 따지기 좋아하는 버마 군부의 수장 탄 슈웨와 그 동료들의 미신으로 이유를 돌리며 비아냥거렸지만, 버마 군부는 현재 버마 최고의 엘리트 그룹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으며 ‘군바리’답게 군사 분야에서는 당연히 전문가들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군함을 들이밀었을 때에는 서로 알고 벌이는 도박판이라고밖에는 딱히 할 말이 없어진다. 둘 다 인도주의와 구호에 관심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말종의 버마 군정과 역시 말종의 서방 제국주의 틈에서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은 버마 민중이다. 그리고 그 한쪽에 아웅산 수치로 상징되는 무기력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존재한다. 아웅산 수치와 NLD는 미국과 유럽이 전폭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가운데 지난 20여 년을 버텨왔다. 버마 군정의 야만적인 탄압 아래 그래도 아웅산 수치가 랑군의 집에서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있고 또 NLD가 조직을 형체나마 보존하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아웅산 수치는 어쨌든 자신을 지원하는 미국과 서유럽의 이익을 대변해왔다. 버마에 대한 경제봉쇄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이 아웅산 수치와 NLD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제일 빨리 팔을 걷어붙인 이들

아웅산 수치가 가택에 연금돼 있는 동안 사실상 버마 민주화운동의 대중적 근거는 황폐화하다 못해 멸절해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2007년 8월의 민주화 시위가 승려들에 의해 촉발되고 또 확산됐던 현실은 이제 버마에는 승려들밖에는 시위를 주도할 세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학생 세력은 이제 껍질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버마의 대학은 이제 통신대학 같아요. 9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그렇게 바뀌었죠. 대학생이 돼도 학교에 나가 수업받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더 많아요.”

그렇게 학생운동의 거점인 대학을 껍데기로 만들 정도로 버마 군정은 야만적이다. 덕분에 학생운동은 초토화했다.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민중의 운동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존재하는 것은 버마의 불빛이 영도하는 위대한 군정의 유일한 전진뿐이다. 그 한편에서 외부 세력의 지원을 받는 아웅산 수치와 NLD만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싸우고 있을 뿐이다. 나는 랑군에서 두 명의 NLD 관련자를 만날 수 있었다. 둘 중 하나는 1997년 선거에서 의원으로 당선됐지만 뒤이어 6년의 옥고를 치렀고 또 다른 한 명도 6년 동안 철창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중 한 명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밖에 뭘 하겠습니까. 뭘 할 수 있는지 한번 말해보세요.”

그는 오히려 나를 다그쳤다. 버마는 이렇게 적반하장이 난무하는 나라다. 그러나 또 다른 NLD 구성원은 내게 전혀 다른 말을 털어놓았다.

“난 아웅산 수치와 NLD에 대한 희망을 버렸어요.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요. 그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할 뿐이지요. 난 지쳤어요. 하지만 난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린 민중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라도 그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강풍에 전신주가 쓰러진 거리에서 구호물품을 기다리는 이재민들이 기다랗게 줄지어 앉아 있다.

강풍에 전신주가 쓰러진 거리에서 구호물품을 기다리는 이재민들이 기다랗게 줄지어 앉아 있다.

그가 본 희망은 나르기스가 남겨놓은 가혹한 상처에 맞선 민중의 모습이었다.

“아무도 정부의 도움을 바라거나 기다리지 않았어요. 모두들 다음날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날아간 지붕을 다시 얹고 무너진 벽을 세우고 골목의 전신주를 세웠지요. 전신주의 전선은 언제 가설될지 몰랐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쓰러진 전신주를 세웠어요. 뭐랄까, 그건 마치 ‘코뮌’을 보는 것과 같았단 말이지요.”

침묵에 잠긴 민주화 항쟁 1주년

그는 현장에서 민중의 위대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들에게 가서 손을 잡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발적인 복구사업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그가 얻은 각성을 나는 늦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웅산 수치에게 목을 빼고 있는 NLD와 같은 랑군의 노쇠한 외세 의존적 엘리트들은 군정의 압도적인 탄압을 빌미로 그들의 폭력적 우민정치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서방의 봉쇄에 군정이 허약해지고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권력이 자신들의 손에 굴러 떨어지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들이 목매어 기다리는 ‘그날’이 언젠가는 올 수도 있겠지만, ‘그날’이란 버마 민중의 ‘그날’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미국과 서유럽 자본의 ‘그날’이 될 것이다.

버마의 극단적인 저개발 상태와 봉쇄는 군정에 완전한 군부독재 통치를 선물하고 있었다. 서방의 경제봉쇄는 천연자원에 의존하는 말종의 군정에 아무런 타격도 가하지 못하고 오직 민중의 고통만을 배가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봉쇄로 인해 심화되는 군사적 탄압과 경제적 빈곤, 정보의 폐쇄가 민중적 역량의 조직과 발전에도 장벽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버마 군정의 종식은 버마 민중이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을 때 도래할 것이다. 서방의 봉쇄에 대한 NLD의 맹목적 지지는 그 길을 가로막고 있다.

야만적 군부독재 통치의 억압 아래 승려들이 앞장서 버마 민중의 자생적 투쟁 의지를 증명했던 2007년 민주화 항쟁이 9월29일로 1주년을 맞았다. 그 1년은 다시금 전과 같은 침묵의 1년이었다. 항쟁이 멈추지 않으려면 버마 민중 스스로의 조직된 목소리가 웅얼거림일지언정 논과 야자나무 너머 밀림에서부터 울려야 한다. 국제사회의 양심은 오직 그 울림에 발을 맞춰 고동쳐야 할 것이다.

랑군·이라와디(버마)=글·사진 유재현 소설가 hyo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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