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공원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남북 합작은 수포가 된 비운의 역사
▣ 히로시마=스나미 게스케 프리랜서 기자 yorogadi@hotmail.com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일본 히로시마시 중심부 580m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몇몇 석조건물의 잔해만 덩그러니 남은 채 시내는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원폭으로 히로시마의 모든 문서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 도시에 살던 사람들의 수와 이름을 알지 못한다. 다만, 원폭의 여파로 그해 12월까지 14만여 명이 숨졌다고 추측될 뿐이다. 이후 후유증으로 숨진 사람들까지 합쳐 원폭 희생자는 지금까지 20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평화공원 밖에서 일어난 ‘한국’ 명칭 논쟁
그중 10분의 1에 해당하는 2만 명 이상이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일본의 온갖 군수시설들이 몰려 있었기에 조선인 노동자들도 많이 끌려와 있었다. 전쟁 말기 히로시마에 사는 조선인은 군인·군속·노동자·일반 시민을 포함해 10만여 명에 달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원폭돔’이 있는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는 수많은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비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위령비)다. 이 비에서는 매년 8월5일 재일 한국인들이 모여 위령제를 연다.
위령비에는 한국 근대사의 상처를 보여주는 여러 사연이 녹아 있다. 위령비를 만든 사람들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히로시마현 지부로, 원폭이 터진 날로부터 25년이 지난 1970년 4월10일에 완공됐다. 그러나 애초 위령비가 들어선 곳은 평화공원 안이 아니었다.
위령비는 처음 조선 황족 의친왕의 둘째아들인 이우가 피폭돼 쓰러진 히로시마 혼가와의 ‘아이오이(相生)교’ 근처에 세워졌다. 비에는 ‘이우공 전하 외 2만여 영위’라고 씌어 있다. 이우는 11살 때 일본에 끌려와 일본군 중좌 신분으로 군에서 일하고 있었다. 글은 이효상 당시 국회의장의 글을 받아 한갑수 서울대 교수가 썼다.
위령비를 둘러싼 논란이 시작된 것은 1988년이다. 평화공원 밖에 비가 있는 것은 “한국인·조선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운동이 시작됐다. 히로시마시, 민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3자의 협의 아래 남북 통일 위령비를 공원 내에 만들자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졌다. 일을 가로막은 것은 분단된 조선반도의 현실이었다. 민단 쪽에서 ‘한국’이라는 명칭을 고수했고, 총련 쪽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민단과 총련, 더 넓은 남북 통일 위령비 건립 사업은 수포로 돌아갔다.
1990년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면서 위령비를 평화공원 안으로 옮겨오자는 운동은 실마리를 찾는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성의를 표시하기 위해 비를 공원 안으로 옮겨오는 데 동의했다. 비가 평화공원 안으로 안착한 것은 1999년 7월21일이었고, 첫 위령제는 그해 8월5일에 열렸다. 또 하나의 피폭지인 나가사키에는 일본인이 만든 ‘조선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다른 위령비와 달리 권위적 느낌
히로시마의 위령비는 평화공원 안에 있는 다른 위령비와 달리 권위적인 느낌을 풍긴다. 비가 만들어지던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평화공원 안에 들어올 수 없었던 ‘자이니치 코리안’에 대한 차별 문제나, 민단·총련의 교섭 결렬로 상징되는 분단의 상처들이 녹아 있기도 하다. 남북 국민이 얼굴을 맞대는 일이 없는 한반도와 달리, 일본 내에서는 사상이 다른 ‘자이니치 코리안’들이 살을 맞대고 살고 있어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많은 자이니치 코리안들은 원폭 위령비가 남북 통일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일·한 양국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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