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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청년’ 와타다의 선택

등록 2007-02-15 15:00 수정 2020-05-02 19:24

‘침략전쟁’ 이라크 파병을 거부하고 군법재판에 회부된 미군 장교… “부당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없다”는 뉘른베르크의 교훈 되살려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조직의 명령을 따른 행위의 결과에 대해 한 개인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나치의 광기를 단죄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피고인 쪽 변호인들이 재판부에 들이댄 논리다. 수백만 인명을 살육하고, 침략전쟁의 포화로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책임을 누구도 지려 하지 않았다. 재판부의 판단은 명쾌했다.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않은 것도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라는 것이다. 뉘른베르크가 인류에게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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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위해 자료를 조사하면서 결심

여기 에런 와타다가 있다. 그는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일본계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다. 그곳 퍼시픽대학에서 재정학을 전공했고, 2003년 우등으로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그는 미 육군에 장교 후보생으로 지원했다.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 젊은이들 상당수가 그랬던 것처럼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입대를 결정했다. 천식을 앓았던 그는 1차 신체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800달러를 들여 외부병원에서 정밀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한 뒤에야 입대 허가를 받아냈다.

포병장교 훈련을 무사히 마친 그가 소위로 임관한 뒤 배속된 첫 임지는 한국이었다. ‘타의 모범이 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도전을 즐기며,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1년 남짓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는 동안 그의 근무평가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표현들이다.

중위로 진급한 그에게 미 워싱턴주 피어스카운티의 ‘포트 루이스’로 전출명령이 내려진 것은 2005년 초다. 이라크 파병을 위한 사전준비 작업을 위해서였다. 한국 근무 당시 와타다 중위는 직속 상관에게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지휘관은 항상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했다. 그가 포트 루이스에 도착하자마자 “이라크 현지에서 맞닥뜨리게 될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현지 상황을 알아야 했다. 이라크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자료를 훑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원인과 미 의회가 전쟁을 승인한 배경으로 눈길을 옮겨가면서 와타다 중위의 ‘고민’이 서서히 싹텄다.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포로학대 사건의 진상을 접했을 때는 차라리 아연했다. 1년여에 걸친 ‘사전준비’ 작업 끝에 와타다 중위는 쉽지 않은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지난 1월23일 미국의 진보적 인터넷 매체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내게 부여된 임무에 대해 의구심만 늘어갔다. 그럴수록 더 많은 자료를 뒤졌다. 결국 이라크 전쟁은 불법·부당한 전쟁이라는 확신에 이르게 됐다. 미국 헌법이 제시한 가치와 규범을 지켜야 할, 그리고 미국민의 평화와 안녕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장교로서 이런 전쟁에 동참해선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고마워요, 중위님”

이라크 파병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한 가지뿐이었다. 2006년 1월 그는 소속 부대 사령부에 전역 신청서를 제출했다. ‘절차상의 하자’를 이유로 신청서는 반려됐다. ‘편한 부대’로 옮겨주겠다는 제의도 있었고, 남들 다 가는 휴가도 못 가게 하는 등 압박도 있었다. 그해 5월 그는 다시 전역을 신청했다.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파병 시점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신념을 가진 건 아니기 때문이란다. 다만 “이라크 전쟁은 불법·부당한 전쟁이기에 반대”하는 것뿐이다. 그는 이라크 대신 아프가니스탄으로 가겠다고 자원했다. 하지만 군 지휘부는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 당국의 입장은 분명했다. “이라크 파병에 응하든가, 아니면 군사재판에 회부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결단’의 순간이 임박한 것이다.

“불의에 맞서는 것은 미 육군 장교로서 내 의무다. 내 법적·도덕적 의무는 헌법에 규정돼 있다. 불법 명령을 내리는 이들에게 복종할 의무는 없다.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미군 병사들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 사명 때문이다. 내 결론은 이렇다. 이라크 전쟁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의 법체계에도 배치되는 일이다.”

2006년 6월7일 와타다 중위는 부대 인근의 한 교회에서 이라크 파병 거부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름 뒤인 6월22일 그의 소속부대인 미 보병 2사단 제3스트라이커 여단 소속 병사들은 이라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와타다 중위는 군 수사기관에 출두해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미 육군 검찰당국은 같은 해 7월5일 군무이탈과 상관모독, 품위훼손 등의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최고 징역 6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혐의다.

해가 바뀌고 지난 2월5일 와타다 중위에 대한 군사재판이 포트 루이스에서 시작됐다. 수백 명의 평화운동가들이 기지 들머리에서 “고마워요, 중위님”을 외치며, 지지 시위를 벌였다. 와타다 중위의 변호인단은 이라크 전쟁의 부당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재판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지만, 재판부는 군사법원이 역사적 심판의 자리가 되는 걸 원치 않았다.

2월7일 군 재판부는 ‘절차상의 하자’를 이유로 와타다 중위에 대해 이틀 동안 진행해온 심리가 무효임을 전격 선언했다. 군 검찰 쪽이 재판부에 제출한 진술조서 내용과 와타다 중위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해’ 재판을 중단시킨다는 설명이었다. 와타다 중위는 이날 직접 증언대에 서 이라크 전쟁의 불법성과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펼칠 예정이었다.

공개적 거부자 중 7명 복역 중

군 검찰 쪽은 미비한 점을 보완해 오는 3월19일 재판을 속개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리 쉽지 않을 듯싶다. 같은 혐의 내용으로 두 차례 기소 또는 재판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변호인단은 와타다 중위에 대한 두 번째 재판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설령 재판이 다시 열리더라도 ‘전쟁의 정당성’을 둘러싼 한판 논쟁을 피하기는 어려울 게다.

미 평화단체들의 연대체인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연합’(UPJ)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현재까지 이라크 참전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미군은 모두 46명이다. 와타다 중위는 이 가운데 유일한 장교다. 파병 거부자 중 현재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인 병사는 모두 18명이며, 7명은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많은 젊은이들이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 캐나다로 ‘망명 아닌 망명길’에 올랐다. 캐나다 평화단체 ‘전쟁거부자 지원 캠페인’은 이라크 파병을 피해 캐나다로 넘어와 머물고 있는 미군 ‘반전병사’가 2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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