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유치 놓고 인천·부산·대전·목포 첨예한 대립… 결국엔 대통령의 결단?
“바다도 없는 대전으로 해양경찰청을 옮긴다는 게 말이 되는가? 바다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기관이다. 부산으로 가야 한다.”(허태열·김진재 등 부산 출신 국회의원들)
“21년간 인천에 있던 해경청까지 다른 도시로 넘기려는 것은 인천시민을 무시한 작태다. 어떻게든 잡아두겠다.”(박상규·이윤성 등 인천쪽 의원들)
“국익을 위해 일해야 할 선량들이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하고 있다. 이미 결정된 대전 이전은 지켜져야 한다.”(김영대 ‘대전시 현안사업을 위한 범시민대책위회’ 회장)
발빠르게 움직인 대전시
해양경찰청 청사 이전을 둘러싸고 해경과 부산·인천·대전·목포시 등 4개 도시가 뜨겁게 대립하고 있다. 해당 지역별로 이익단체나 시의회, 지역 언론이 합세해 나름의 당위성을 설파하며 단체장을 향해 “왜 좀더 열심히 뛰지 않느냐”고 독려하고 있다. 단체장들은 몸이 달았다. 청와대와 국회, 국무총리실, 기획예산처 등 힘있는 곳을 발에 땀이 나도록 찾아다닌다. 격해진 주민정서를 확인한 국회의원들도 정부와 해경을 다각도로 압박한다. 여야 구별없이 출신지역별로 전선이 형성됐다. 해경청사 유치전이 지역간 총력전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분란의 씨앗은 해경이 인천시 중구 북성동1가 105번지에 있는 현 청사를 대전으로 이전하려 한다는 입소문이 정치권 안팎에 널리 퍼지면서 싹텄다. 해경이 청사 이전을 추진한 것은 99년 초부터다. 79년 건립된 현 청사가 너무 낡았고, 600명의 직원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비좁다는 게 이유였다. 정부도 타당성을 인정했다. 결국 지난해 4월9일 인천의 송도매립지를 청사신축 부지로 선정했다. 청사 설계비 명목으로 올해 8억원의 예산까지 배정했다. 이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경찰청 보안국장 출신인 김종우 해경청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김 청장이 올해 1월11일 송도매립지를 답사한 뒤 제3의 지역을 물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반침하로 공사비가 과다소요되고 교통이 불편하다는 게 변경의 핵심 근거였다. 그러나 해경과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룹 본사를 송도로 이전하려던 대우가 몰락하면서 송도 미디어벨리 개발이 늦어지자 해경이 마음을 바꾼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때 발빠르게 움직인 게 대전시다. 한국토지공사 소유의 둔산터미널 터 8432평(대전시 서구 월평동 소재) 처리 문제로 고심하던 대전시와 토지공사는 해경의 청사터 물색 정보를 입수하고 본격적인 유치전에 돌입했다. 대전시는 2월24일 기획관을 해경에 보내 둔산터미널 터를 공용청사부지로 도시계획시설을 변경해 청사가 들어설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뜻을 전했고, 2월29일에는 최단시간 내 관련 절차를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해경도 대전시와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해경청은 2월17일 전 직원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벌여 대전 이전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뒤 김 청장 등 간부들의 현지 답사(3월22일), 대전시 방문 업무 협의(4월21일) 등 이전 수순을 착착 진행했다. 대전에 해군본부·해양연구소선박분소 등이 있어 업무협조에 적합하다는 이유도 대전 이전의 정당성을 뒷받침했다.
지역언론들까지 유치전
그러면서도 해경은 인천의 반발을 우려해 한동안 이를 전면에 내세우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5월3일 명분이 생겼다. 김대중 대통령이 건교부에 “수도권 과밀억제를 위한 법령개정 강화”를 지시했고, 건교부는 공공청사를 수도권에 신축할 수 없도록 ‘수도권정비계획법시행령’을 고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해경은 이때부터 “대통령 지시와 건교부 방침으로 송도청사 건립이 불가능해졌다”면서 대전 이전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6월27일 대전시에 둔산부지를 공용청사부지로 변경해달라고 정식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뒤늦게 대전 이전 정보를 입수한 부산쪽 국회의원들과 경제단체 등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허태열(부산 북강서을) 의원 등 한나라당쪽은 6월28일부터 일제히 “정치권의 눈이 쏠린 사이 해경이 바다도 없는 대전으로 청사를 이전하는 음모를 꾸몄다”며 “부산 이전”을 요구하고 나섰다. 7월19일에는 김기재 의원 등 민주당쪽도 “청와대에 지역여론을 전달하겠다”고 가세했다. 그리고 이들은 7월21일 여야 의원 146명의 서명을 첨부해 총리실과 해양수산부에 부산이전을 공식 요구했다.
허 의원 등은 “부산이 해운·수산업의 중심항구이며 동·서·남해안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해경의 작전과 업무수행에 효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전 이전이 강행될 경우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부산시와 지역언론도 발벗고 뛰고 있다. 등 언론들은 안상영 시장을 향해 “어디서 뭘하느냐”며 공격적인 유치전을 주문했다. 또 “정부 외청이 밀집해 있는 내륙도시 대전으로의 이전은 행정편의주의의 극단”이라며 반발여론을 고조시키는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비판여론에 직면한 안 시장은 7월14일 “부산유치” 성명을 발표하고, 최근 이한동 총리와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 남궁진 정무수석 등을 만나 협조를 당부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힘깨나 쓰는 분들’ 압박에 해경 곤혹
그동안 대전 이전에 입을 다물고 있던 인천시도 부산의 움직임에 자극받아 발끈하기 시작했다. 인천 상공회의소 등 지역 단체들은 “원래 계획대로 인천에 있어야 한다”고 반박 성명을 냈고, 등 언론들도 “인천시가 청사 이전을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결국 국회의원들이 ‘해경지키기’에 나섰다. 이윤성 의원(인천 남동갑·한나라당)은 해경을 방문해 대전이전 철회를 요구했고, 박상규 의원(부평갑·민주당) 등은 인천과 경기도 의원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수도권의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특히 해경이 수도권정비계획법시행령 개정안을 근거로 인천유지가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이자 법 자체를 고치겠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이윤성 박상규 두 의원은 “국세청 등 다른 기관은 수도권 증·개축을 허용하면서 해경만 증·개축을 막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며, 송도부지 확정 뒤 입법예고된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소급행위”라며 법 개정을 외치고 있다.
지난 7월26일 목포시까지 싸움에 가세하면서 유치전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목포시는 인근 해역에 외국어선의 영해침범이 빈번하고, 목포 부근 섬이 1963개로 전국의 63%에 이르는 등 해경 치안수요가 많다는 것을 근거로 목포이전을 요구했다. 뒤늦게 뛰어든 목포시는 목포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를 아우른 ‘해경유치사업을 위한 범시민협의회’와 ‘지원전담팀’을 발족하는 등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부산·인천·목포시의 전면 공격에 직면한 해경과 대전시는 대응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경은 ‘힘깨나 쓰는 분’들의 압박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대전 이전 뜻을 굽히지 않는다. “대전 이전을 결정할 때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했고, 그 의견에 변화는 없다. 인천에는 있고 싶어도 수도권정비법 때문에 안 된다.”(유익재 해양청사건립기획단장) 다른 해경 고위관계자는 부산과 목포쪽 요구에 강한 반감마저 드러냈다. “해군본부는 규모도 더 크고 배도 많은데 왜 대전에 있는가. 해본이나 우리는 후방지원 업무를 한다. 일선치안은 12개 해양경찰서에서 맡고 있다. 본청은 바다와 상관이 없다.”
해경청 이전에 따른 이득을 기대하며, 둔산 터의 형질변경 절차를 밟던 대전시는 ‘마른 하늘에 웬 날벼락이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김영신 대전시 기획관은 “재경부와 토지공사가 부지 매입가격을 협의하고 있는데 다른 도시가 뒤늦게 끼어드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치논리와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정당한 사업이 표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급해진 대전시는 국회의원과 시의원, 시민단체, 지역언론을 향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면서 “해경청 대전 이전의 당위성을 부각시키고, 부산지역의 왜곡된 지역주의가 초래할 결과를 국민 모두에게 인식시키자”고 주문하고 있다. 대전시 의회도 “대전 이전은 계획대로 추진돼야 한다”는 긴급 성명을 발표(7월15일)했고, 대전지역 107개 시민단체는 ‘대전시 현안사업을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꾸려 다른 도시로의 이전이 부당함을 알리는 시민운동을 벌이고 있다. 홍선기 대전시장도 지난 7월27일 급거 상경해 청와대와 총리실 등을 상대로 대전유치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가뜩이나 정치경제적으로 물먹고 있다고 느끼는 대전시민들이 이전 계획 변경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전시의 설명이다.
해경청사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각 지역의 감정 대립과 의원들의 다툼, 그리고 해경의 이해가 복잡하게 맞물리면서 상황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하다. 급기야 해당 지역의 언론들은 “해경청 이전 문제가 지역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며 “대통령의 결단”까지 촉구하기 시작했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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