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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백인의 1/3은 인종주의자?

등록 2005-09-29 15:00 수정 2020-05-02 19:24

대규모 파시스트 정당이 나온 적이 없는데도 왜 인종차별문화가 퍼졌을까

▣ 런던= 줄리언 체인 전문위원

런던 테러의 가해자가 영국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대라는 게 밝혀진 뒤 이슬람 사회가 영국 사회로 잘 통합됐다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브리튼 친구들에 대해 왜 그렇게 무자비했을까. 영국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갖가지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은 어떻게 해야 더 잘 통합되고 그들이 소속된 사회에 감사할 줄 알게 될까. 이런 갖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카디프, 리버풀, 브리스틀, 런던 같은 항구도시에는 선원들의 가족으로 구성된 이민자 사회가 오랫동안 있었다. 1950년대 후반에는 보수당 정부가 전쟁 이후의 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에서 사람들을 데려와서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특히 이들은 의료와 운송업계에서 일했다. 주로 남자들로 이루어진 수십만명의 이민자들이 서인도제도, 파키스탄, 인도 북쪽 지방과 방글라데시에서 왔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집에 돌아가기 전에 많은 돈을 벌자는 꿈을 안고 왔다. 그들은 머지않아 영국 여자나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거나, 그들이 살던 지역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왔다. 서인도 제도 사람들은 제국적 고향인 ‘어머니 나라’의 환영을 바라고 왔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고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었다. 이에 반해 인도 아대륙 사람들은 좀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독립적인 사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이민자 사회 사이나 백인 영국인간에는 거의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향에서 아내와 남편을 찾기를 바랐다. 그들은 주로 농촌 지역에서 왔기 때문에 도시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았고 영어도 잘하지 못했다. 여성은 더 심했다. 그들은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외따로 떨어져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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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첫 이민자들은 제국의 몰락과 함께 있었던 전쟁 복구를 위해 왔다. 이 사람들이 대량 이민 프로그램으로 받은 것도 없는데, 대다수 영국인들은 공개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의 인종적 우월주의를 지지하고 이민에 분개했다. 이민자들은 제국의 대도시 런던, 리버풀, 맨체스터, 버밍엄에 그들만큼 가난한 사람들이 꽉 찬 슬램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집집마다 ‘흑인 사절, 개 사절’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날씨는 추웠고 환영 인사는 차가웠다. 도시는 공장과 산업시설에서 나오는 연기로 가득 찼다. 차별은 널리 퍼져 있었다. 교회조차 흑인 형제자매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70년대부터는 세계 곳곳에서 온 망명자들이 이민자 대열에 합류했다. 1990년대에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나라가 되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수이긴 하지만, 현재 영국에는 비유럽 가계가 500만을 헤아린다. 이민자 사회는 도시의 깊숙하고 가난한 지역에 모여 있다.

1959년에 런던 서쪽 노팅힐에서 백인 노동자 계급 ‘테디 보이스’와 ‘서인도인’ 갱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은 백인 젊은이들의 공격으로 시작됐지만 ‘흑인 코먼웰스’(제국 신민으로서 영국에 올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의 수를 제한하는 법이 즉각 통과됐다. 1962년에는 일련의 이민법을 이어 국적법이 통과됐다. 국적법은 영국인 조부를 두어야 영국 여권을 발행하도록 제한하는 법이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정부는 인종차별법에 대항하는 법을 만들고 인종평등위원회를 만들었다. 1964년 총선거에서 보수당의 일부 의원이 인종차별 캠페인을 과도하게 펼쳤다. 1968년에는 영국 이민자를 받아들인 데 책임이 있는 전 보수당 수장인 에노크 파웰이 유색인종 이민정책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여기서 이 정책이 인종 전쟁과 ‘피의 바다’를 불러온다고 말했다. 보수당 의장인 에드워드 헬스는 그를 당에서 쫓아냈다.

영국은 유럽에서처럼 대규모 파시스트 정당이 나온 적이 없다. 주요 정당은 인종 문제에 대해 여론을 주시했다. 우파적 움직임이 있긴 했다. 어쨌든 영국 국민당은 10명의 시의원만이 있고 하원의원은 없다. 그럼에도 인종차별 문제는 대중적이다. 이는 폭행, 모욕, 그리고 스티븐 로렌스, 최근의 앤서니 워커 살해와 같은 사건으로 드러났다. 여론조사에서는 백인의 3분의 1이 그들 스스로를 인종주의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제국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종적 우월성이라는 신화가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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