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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의경제학|버마] 그 돈은 하루생존의 지표!

등록 2004-07-22 00:00 수정 2020-05-03 04:23

다섯가족의 일주일치 쌀을 살 수 있는 1달러는 난민들에게 ‘충격적 기쁨’을 준다네

▣ 매솟(타이-버마 국경)= 글 · 사진 옹나잉(Aung Naing)

편집장

의사 월급이 10달러에 지나지 않는 사회에서 4천달러에 이르는 마사지용 의자가 팔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그건 바로 버마다. 지난 5월 말 판촉행사를 벌인 파나소닉 랑군 지점에서 이틀 만에 10개가 넘는 전기 마사지용 의자가 팔렸다.

버마에서는 1988년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장군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한 대신 시민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날마다 더 가난해져왔다. 1천달러가 장군들에게 하잘것없는 숫자라면, 시민들에게는 1달러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생존선’이 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시민들이 생존을 위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갔다.

1달러, 삶과 죽음 가르는 생존선

국경을 접한 타이 정부나 관련단체들이 외국인 노동자 수를 100만~200만명으로 잡고 있는데, 그 대다수가 버마인이다. 특히 타이 북서부 매솟이라는 도시 한곳에만도 버마인 불법 이주자가 무려 4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다 보니 “매솟은 버마인 불법 노동자들이 먹여 살리는 도시”란 말이 나돌 정도다. 매솟의 타이 업주들은 정부가 정한 일당 최저선 135바트(약 3.4달러)를 한참 밑도는 40바트(약 1달러)로 마음껏 버마인 불법 노동자들을 부릴 수 있다.

1달러는 타이-버마 국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1달러는 버마인 불법 노동자들의 하루 생존을 가늠하는 지표다.” 매솟에 살고 있는 버마 반체제 운동가 먀윈은 1달러의 가치를 그렇게 표현했다. 1달러에 해당하는 타이돈 40바트는 버마-타이 국경지역에서 맥주 한병 값과 같은 액수다.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한 끝에 받아쥐는 1달러는 버마에 살면서 미얏소처럼 몇년 동안 맥주를 마셔보지 못한 이들에겐 ‘충격적’인 기쁨이 되는 돈이기도 하다.

국경 주부들에게 1달러는 가족의 건강과 같은 의미다. 모모와 같이 현대적인 서양 약품을 구입할 수 없는 이들에게 1달러는 삶에 중대한 의미를 지닌 전통 약재를 구할 수 있는 돈이다. 그에게 1달러, 40바트는 세 가지 전통 의약품 값으로 떠오른다. 20바트짜리 근육통 완화제, 8바트짜리 소화제 그리고 12바트짜리 생리통 치료제로. 만약 그에게 10바트가 더 있다면 기침약 하나가 더 붙는다. 일반적인 가정 상비약을 망라한 셈이다.

옷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1달러는 주로 오후에 젊은이들이 즐겨 먹는 절인 찻잎 샐러드 한통과 똑같은 값이다. 또 남성 노동자들에게 1달러는 버마산 엽궐련 50개들이 2통을 살 수 있는 값이다. 계집아이 몬몬은 1달러로 ‘타나칼’이라는 전통 화장품을 살 수도 있지만, 가족을 생각해서 저녁 거리로 소시지볼 24개를 샀던 돈이다.

매솟에는 버마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전쟁과 정치적 박해를 피해 타이로 넘어온 수많은 난민들이 살고 있다. 난민들은 버마에서 건너온 불법 복제 CD로 버마 영화를 보면서 향수를 달래기도 하는데, 그게 1달러다. 이번 기사 취재를 위해 내가 카렌족 난민 젊은이에게 1달러를 쥐어주자, 그이는 지체 없이 달려가서 쌀 1kg을 샀다. “쌀 1kg은 우리 다섯 가족이 1주일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렇게 1달러는 타이-버마 국경 불법 노동자들과 난민들에게 실로 엄청난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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