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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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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십계명을 지켜라!

등록 2000-11-22 15:00 수정 2020-05-02 19:21

식민주의에 젖어 죄의식 없이 아랍인의 피를 즐기는 이스라엘을 ‘유대인’이라 부를 수 있는가

요즘은 지구촌 시민들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의례 행위가 생긴 듯하다. 저녁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뉴스에서 거의 매일 빠짐없이 나오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이다. 돌멩이를 던지는(혹은 돌멩이를 던지지도 않는) 가무스름한 피부의 젊은이들이, 군복을 입고 철모를 쓴 하얀 피부의 젊은이들이 발사하는 실탄에 쓰러져 어디론가 실려가는 장면이다. 보통 이 장면을 보여준 뒤 아나운서가 별다른 감정도 없이 사망자와 부상자 수를 이야기해주고, “양쪽의 폭력”이 계속 그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이와 같은 너무나도 ‘객관적인’ 해설을 듣는 대부분의 서구·북미 시청자들은 “글쎄, 양쪽에 문제가 있나보죠. 왜 어서들 화해를 못할까?”라는 너무나도 익숙한 생각을 잠깐 떠올리고 시끄럽고 싫증나는 이 ‘영원한 중동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끊는다.

인종주의에 인종주의로 맞서다

영국에서의 여우사냥이나 아프리카에서의 코끼리사냥을 열렬히 반대하고 모피 착용과 상아의 상업적 이용 등을 혐오하는 서구·북미의 ‘세계인’들이, 왜 하얀 피부의 젊은이들이 가무스름한 젊은이들을 사냥해서 실탄으로 죽이는 끔찍한 장면들을 이토록 냉정하게 지켜보는가? 변변한 무기도 없어 고무총으로 이스라엘의 전차와 헬기에 맞서는 가무스름한 아이들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정도를 넘는 아나운서들의 거짓말을, 왜 의심해보려고 하지도 않는가? 그리고 혈통적으로 유대계에 속하는 필자에게 가장 아픈 질문이지만, 십계명 중 하나인 “죽이지 말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듣는 (적어도 들어야 하는) 그 하얀 젊은이들이, 왜 이토록 방아쇠를 쉽게 당기는가?

이 문제들에 답하려면 햇빛이 쬐는 그 남방의 땅에 하얀 피부의 점령자들이 어떻게 출현했는지 먼저 설명해야 한다. 세계 패권을 확고히 한 100년 전의 유럽에서는 인종우열론과 사회진화론을 사상적 바탕으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군국주의가 난무했다. 유럽 지배층의 상당부분은, 유대인들을 ‘열등인종’으로 완전히 배척하거나 ‘문화·종교적인 이질집단’으로 취급해 유럽 밖으로 내쫓으려고 하였다. 더군다나 경제적 착취에다 민족적 차별까지 받는 유대인들 중에서, 마르크스나 트로츠키 같은 사상가를 위시한 수많은 ‘불온분자’들이 배출되었으니, 유럽 지배층의 반유대주의가 더욱 심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내부로부터의 사회주의의 도전과 외부로부터의 반유대주의의 도전에 직면한 유대인 부르주아 지도층 일각에서, 유대인들의 유럽 밖으로의 추방을 꿈꾸는 유럽 지배층에 일종의 ‘맞불작전’을 펼칠 기획이 세워진다.

“유대인의 빈민굴들이 유럽 정부들을 위협하는 잠재적 혁명의 화약고라면, 차라리 유럽 밖의 땅을 택해서 그 황무지에서 정상적인 민족국가를 만들자!” 바로 이것은 (1896)의 저자인 갑부 출신 헤르츨(1860∼1904)을 시조로 하는 시오니즘의 기본 아이디어였다. 헤르츨과 같은 초기 시오니스트에게는, 유대인들의 유서깊은 고국인 팔레스타인이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영국령이었던 아프리카의 우간다나 남미 아르헨티나의 원주민 거주지대에서 유대족 국가를 만드는 것도 차선책이었다. 그들이 결국 터기령이었던 팔레스타인으로 선택을 굳힌 데에는 민족사에 대한 애착뿐만 아니라 근동에서의 터키 제국의 영향력을 약화하려는 당대 세계 패권국인 대영제국의 이해관계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과연 시오니스트들이 우간다나 아르헨티나, 또는 팔레스타인에서 토착민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느냐?”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초기 시오니즘의 문건에서 그 사실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서 1900년대의 팔레스타인 초기 유대인 정착촌 건설의 표어는 “땅없는 사람들과 사람들이 없는 땅이 서로를 잘 만났다!”였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에서 엄연히 거주하고 있었던 아랍계들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었을까?

학살로 얼룩진 건국

바로 그것이었다. 서구 우월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주변부 원주민들에 대한 식민 모국들의 무한한 멸시가 몸에 밴 유대인 부르주아 ‘민족지도자’들에게는 ‘미개한’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이 그야말로 문제시되지도 않았다. 아랍계 부재 지주로부터 땅을 돈으로 사고, “동물만도 못한 원주민”의 “폭거”로부터의 보호를, 터키나 1923∼1948년 동안 팔레스타인을 신탁 통치했던 영국으로부터 받으면 된다는, 지극히 식민주의적인 발상이었다. 이에 맞선 아랍인들이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하자, 유대계 정착민의 극우파가 영국 식민주의자의 비호하에서 ‘이르군’이라는 악명높은 민병대를 조직해 아랍인 마을들을 초토화하기 시작했다. 땅을 빼앗겨 인종차별을 받는 도시 최빈층으로 전락하기를 싫어하는 ‘불온 아랍인’들이 총탄에 맞아죽거나, 국외로 추방돼야 한다는 것은 영국인과 이르군계 전문적 살인자들의 공동신념이었다. 똑같은 영국의 폭정에 시달린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위대한 비폭력주의자 마하트마 간디가 유대인들에 의한 공포정치를 신랄히 비판했지만, 당대 유럽의 지성은 대개 침묵으로 일관했다. 식민지에서의 테러적 지배가 그 당시 세계의 ‘일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팔레스타인에 쇄도한 유럽 유대인들을 양질의 졸병으로 삼을 수 있었던 ‘민족지도자’들은 영국으로부터 미국으로의 세계 패권 이동의 기회를 타서 이제 미국의 비호하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배권을 영국으로부터 빼앗았다. 이 과정에서는 이르군과 ‘스테른의 갱’ 등 극우계 살인자 집단들이 영국인 병사의 납치와 암살, 건물의 폭파 등 노골적인 테러를 서슴지 않았다. ‘문명인’인 영국인에 대해 이 정도의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면, ‘동물만도 못한’ 아랍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였을까. 1948년 4월9일에 이르군과 스테른의 갱에 의해서 여자와 아이를 포함한 주민 전원이 살해된 ‘데이르 야신’이라는 팔레스타인의 한 마을 이름은, 유대계 극우파의 잔혹성의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데이르 야신의 초토화 작전을 지휘한 이르군의 두목 메니헴 베긴이 나중에 정치인으로 변신, 1977년에 수상으로 당선되어 약 2천∼3천명의 팔레스타인 망명자의 대량학살로 이어진 1982년 레바논 침공을 지휘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팔레스타인인들이 왜 그토록 이스라엘 정치인들을 불신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르군이라는 학살자 집단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우익당(리쿠드)은 물론이고, 서구에서 온건집단으로 분류되는 노동당의 고위당직자 중에서도, 군 장교 경력과 참전 경험을 안 가진 사람은 한명도 없다. 레바논 침략 당시에 군 첩보부를 이끌었던 현직 총리 바라크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없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정치적 엘리트는 전체적으로 학살과 군사적 폭력에 가득 찬 과거를 전혀 청산하지 못한 집단이다.

‘피침략자의 상호 무지’를 격퇴하라

학살과 증오, 제국주의와의 밀약을 배경으로 태어난 이스라엘이라는 군국주의 국가는 과연 아라파트를 비롯한 부패한 지도부와의 야합이 아닌, 팔레스타인 아랍인과의 진정한 평화를 맺을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럴 확률이 극히 적다. 그 이유는 첫째, 일체의 이스라엘인들이 학교와 남녀가 똑같이 의무적으로 다녀와야 할 군대에서 철저한 세뇌교육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교과서에서는, ‘유대민족의 핍박과 저항의 역사’가 장황하게 (그리고 매우 편협되게) 묘사되지만, 이미 반세기 넘어 수도도, 가스도, 전기도 없는 임시 수용소를 벗어나지 못하는 약 150만명의 팔레스타인 망명객의 고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들에게 이르군계의 극우 학살자들은 건국 영웅들이고, 아랍인들은 여전히 야만적 미개인들이다. 일본인 어용 사학자들이 조선인들을 폄하하기 위해서 조작해낸 ‘조선사회 정체론’이나 ‘조선인 체질 열등론’과 같은 오리엔털리즘적 괴설들을, 이스라엘 교과서의 아랍인 관계 서술 부분에서 두루 다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고무총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을 상대로 그토록 쉽게 실탄을 발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00년 전에 초기의 시오니스트들이 서구 제국주의자로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원주민 배척론은, 지금도 이스라엘사회를 사로잡아 하나의 커다란 살인자 집단으로 만든다. 유대교의 가장 소중한 특징인 인명 존중을 완전히 포기한, 서구 제국주의자의 아류인 그들을 우리가 과연 유대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필자의 유대족 관념으로는, 그들은 이미 유대족 전통과 무관한 무리다.

진정한 평화를 기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둘째 이유는, 식민주의 시대 전통대로 아직까지 아랍족과 이슬람교를 열등시하는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젊은이 학살에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 국민’들은 이상한 의례를 치르듯 매일같이 쓰러져가는 가무스름한 젊은이의 처절한 모습을 봐도 별다른 감정을 못 느낀다. 현대사회에서 언론만 믿고 사는 사람이, 이 정도로 탈(脫)인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족·인권운동을 지원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진정한 평화를 촉진하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는 한국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아랍인들의 종교와 문화, 그리고 근세 저항운동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똑같이 제국주의 침략에 희생된- 그리고 지금도 희생되고 있는- 한국인과 아랍인들이 서로의 아픔을 잘 알아야 제국주의를 받쳐주는 하나의 기둥인 ‘피침략자의 상호 무지’가 드디어 무너질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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