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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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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의 아빠’인지 ‘이종범의 아들’인지 WBC에서 결정난다

세계야구클래식 처음 출전하는 이정후, 일본전 맹활약으로 ‘아빠 이종범’을 넘어설 수 있을까
등록 2023-02-24 15:03 수정 2023-03-05 06:08
2006년 3월1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시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일본의 경기, 8회초 1사에 주자 2,3루 2번타자 이종범이 결승타를 날린뒤 환호하며 1루로 뛰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3월1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시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일본의 경기, 8회초 1사에 주자 2,3루 2번타자 이종범이 결승타를 날린뒤 환호하며 1루로 뛰고 있다. 연합뉴스

뉴진스의 <디토〉(Ditto)라는 곡이 있다. ‘디토’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누군가는 영화 <사랑과 영혼>(Ghost, 1990년 개봉)의 대사를 생각했을 것이다. 주인공 샘(패트릭 스웨이지)이 연인 몰리(데미 무어)의 “사랑한다”는 고백에 “디토”(동감)라고 늘 답했고, 사후에 이들을 서로 알아보게 하는 매개체도 ‘디토’라는 단어다.

하지만 <사랑과 영혼>을 본 적이 없는 10대의 딸은 ‘디토’란 말을 듣고 포켓몬스터 캐릭터 메타몽을 생각했다. 메타몽은 미국에서 디토로 불린다. 세대마다 경험이 다르고, 이는 세대의 간극을 만들어낸다. ‘사랑해’라는 의미를 함축한 디토와 어떤 모습으로든 변신할 수 있는 메타몽 디토의 차이랄까.

세대 가르기가 가능한 질문 ‘이정후 알아요?’

프로야구에서도 세대 차이를 단박에 느낄 수 있는 선수가 있다. 단순한 질문의 대답으로 세대 가르기가 가능하다.

“이정후(키움 히어로즈) 알아요?”라는 물음에 “이종범의 아들” “‘바람의 아들’의 아들” 혹은 “바람의 손자”로 답한다면 적어도 30대 이상일 것이다. 1990년대 대표적 ‘5툴 플레이어’(장타력, 콘택트, 스피드, 수비, 송구 능력을 모두 갖춘 선수)로 이종범의 활약을 본 야구팬이라면 이정후에 앞서 이종범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특히 1990년대 야구를 봤다가 지금은 야구와 멀어진 사람이라면 ‘이정후’라고 말하면 모르다가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야구팬이 아닌 경우에는 더 그렇다. ‘90년대 이종범’은 ‘모르면 간첩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1020세대는 이정후를 그저 슈퍼스타 이정후로만 본다. 오히려 이종범 엘지(LG) 트윈스 코치를 “이정후의 아버지”로만 안다. ‘이종범’이란 이름 자체를 아예 모르는 이도 있다. 이 때문에 이정후의 리그 활약으로 오히려 이종범 코치의 과거 현역 시절 활약이 재소환된다. 아들에게서 아버지를 떠올리는데, 3월 열리는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은 이들 부자 관계를 더욱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후는 이번이 세계야구클래식 첫 출전이다. 2017년 대회 이후 코로나19 탓에 계속 연기됐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2017 시즌 뒤 한국·일본·대만·오스트레일리아 4개국 24살 이하 선수들이 나선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출전으로 첫 성인 국가대표가 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는 만 스무 살 나이에 참가해 타율 0.417(24타수 10안타), 2홈런 7타점의 맹활약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종범 코치 또한 2002 부산아시안게임 대표로 우승한 적이 있어 ‘부자 야구 금메달’ 역사가 만들어졌다.

2020 도쿄올림픽 때는 다소 아쉬웠다. 타율 0.241(29타수 7안타), 1홈런 3타점으로 이정후는 다소 부진했다. 대표팀 또한 4위로 고꾸라지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이정후가 세계야구클래식을 단단히 벼르는 이유다. 이정후는 2023년 1월 초 미국 출국 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올림픽은 잊었다”며 “세계야구클래식은 제일 큰 야구대회다. 오랜만에 열리는 대회니까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기정사실화하는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

이정후는 이번 시즌 뒤 포스팅(비공개 입찰)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터라 대회 개막 전부터 국내외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 뒤 메이저리그 공식 누리집 엠엘비닷컴(MLB.com)은 그를 메인 화면에 띄우기도 했고, 최근 세계야구클래식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꼽으면서 외야수 부문에 마이크 트라우트(LA 에인절스), 무키 베츠(LA 다저스)와 함께 비메이저리그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정후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정후의 미국 현지 에이전트가 ‘미다스의 손’ 스콧 보라스라서 그의 미국 진출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정후를 보기 위해 수많은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가 대표팀 연습경기를 지켜보지만 정작 이정후 자신은 초연한 편이다. 이정후는 “세계야구클래식은 나를 알리는 쇼케이스가 아니다. (스카우트를) 의식하지 않고 팀 승리에만 초점을 맞추겠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통상 3월 시범경기 성적이 좋지 않았던 점은 마음에 걸린다. 세계야구클래식이 3월에 열리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이정후의 통산 시범경기 성적은 타율 0.266, 출루율 0.321. 그의 시즌 통산 성적(타율 0.342, 출루율 0.407)과는 꽤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이정후는 2023년 비시즌에 컨디션을 빨리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타격 폼 또한 빠른 공을 던지는 메이저리그 투수를 상대할 수 있게 간결하게 바꿔나가고 있다. 전년도 타격 5관왕의 모험일 수도 있는데 언제나 그랬듯 “해마다 더 나아지고 싶은 욕심”으로 주저 없이 도전하고 있다.

2023년 2월18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스포츠 콤플렉스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23 대한민국 대표팀 훈련. 이정후가 배팅 케이지에 들어가 타격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2월18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스포츠 콤플렉스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23 대한민국 대표팀 훈련. 이정후가 배팅 케이지에 들어가 타격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범 코치의 경우 세계야구클래식 초대 대회(2006년) 때 대표팀 주장으로 출전했다. 당시 7경기 타율 0.400(25타수 10안타), 2루타 6개 등으로 절정의 타격감을 뽐냈다. 특히 2라운드 일본전에서 0-0으로 맞선 8회초 1사 2·3루에서 일본 대표팀 마무리투수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터뜨린 2타점 2루타는 한국을 4강으로 이끈 기적의 2루타가 됐다. 대회 기간 감기 몸살에 시달렸는데도 큰 경기 디엔에이(DNA)는 살아 있었다. 그는 대회가 끝난 뒤 이승엽, 박찬호와 함께 올스타로도 선정됐다. 그리고 2023년 그의 아들이 세계야구클래식 첫발을 뗀다. 일본과 같은 B조(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체코)에 속해 일본과도 1라운드 조별리그에서 맞붙는다. 한국과 일본이 세계야구클래식에서 맞상대하는 것은 2009년 이후 14년 만이다. 이종범 코치는 MBC 객원 야구해설위원으로 세계야구클래식을 중계할 예정이다.

아들 출전 경기 아버지는 해설위원으로

‘디토’가 한 단어지만 여러 메타포(은유)를 품었듯이 경험은 다르지만 공유를 통해 메타포는 더 확장된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정후를 통해 이종범이 누군지도 알게 될 것이다. ‘아버지 이름’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 인내하며 야구를 했던 이정후가 세계야구클래식 데뷔 무대에서 ‘아버지 이름’을 되새기게 할지도 모르겠다. 이정후가 세대에서 세대로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야구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네버엔딩 스토리가 된다. 2006년 3월16일 ‘종범신’의 통쾌한 일본전 결승 2루타가 이정후에 의해 소환되기를 고대해본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김양희의 인생 뭐, 야구: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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