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오디션의 나라다. TV를 켜면 늘 누군가 오디션을 보고 있다(또는 요리를 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누군가를 심사하고 있고, 실패한 자도 합격한 자도 모두 울고 있다. 도전자들의 기구한 사연은 최고의 스펙이다. 오디션 주최 쪽 스스로 우승자에게 ‘기적’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이 나라의 청춘에게 할당된 기회가 얼마나 한정된 것인지를 자인하고 있다.
지금, 누군가들의 가난하지만 뜨거운 축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KBS 은, 각자의 이유로 축구를 그만둔 청춘들을 찾아 오디션을 하고 최종 선발된 21명이 벨기에의 산골로 전지훈련을 떠나 팀이 되어가는 것을 담담히 지켜보는 프로그램이다. 악마의 편집도 없고 “60초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장난도 없다. 이것은 90분의 정규시간 동안 실패한 청춘들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로스타임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는 별달리 기구한 사연도 없다.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또래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났을 뿐이다. 누군가는 PC방을 운영하고, 누군가는 학업을 택했고, 누군가는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 이름도 없는 유니폼을 받고 흥분하고, 동네 목욕탕 같은 철제 로커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보고 감격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기 전의 축구에 대한 이야기다.
공동감독인 안정환과 이을용의 존재는 이 프로의 핵심이다.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지만 10대의 안정환은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던 선수다. 스무 살의 이을용은 명문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러주는 팀이 없어 막노동을 했던 선수다. 10년 뒤 이들은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을 넣었고,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역사가 되었다. 대표팀의 코치직 제의에도 움직이지 않은 안정환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이 선수들의 운명에 동참했고, 자신의 ‘스무 살 지옥’을 떠올린 이을용도 주저 없이 이 실패한 청춘들을 끌어안았다.
개인의 드라마가 아니라, 하나의 팀이 세공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재미다. 우리는 이 방송을 통해 축구팀이 선수들의 멘털을 관리하고 포지션을 정하고 패스의 길을 만들고 수비 라인을 정비하는 공정을 볼 수 있다. 완성된 스타들의 화려한 전술훈련이 아니라, 11명의 불완전한 개인이 1개의 유기체(팀)를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놀라운 것은 선발된 선수들 중 최고의 경력(청소년 대표)과 기술을 가진 이강을 탈락시킨 것이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부족한 체력 탓에 경기에서 누군가 그의 빈자리를 메우며 뛰어야 한다는 것에 감독들은 과감히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방송용 드라마가 아니라 진짜 축구를 만들고 싶었던 의지였다.
이 프로그램의 방송시간은 토요일 밤 10시25분이다. 한국에 유럽 축구가 몰려오는 시간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완성된 팀들이 펼치는 황홀한 녹색 전쟁이 펼쳐지는 시간에, 나는 청춘FC의 축구를 본다. 유럽 축구를 보고 있으면 지금 현대 축구가 가닿은 최전선의 경지를 확인할 수 있지만, 청춘FC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축구를 처음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가졌던 순정을, 운동장에 나가기 전 축구화 끈을 매고 있을 때의 터질 듯한 심장을 느끼게 된다.
냉정하게 말해 이들의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기를 다 보는 듯한 슈틸리케 감독도 이들까지 쳐다볼 이유는 없다. 객관적인 실력을 감안할 때 프로팀에서 이들에게 손 내밀길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방송 끝나고 마땅한 팀을 못 찾으면 어떻게 하냐?”라는 제작진의 걱정에 이들은 “지금 이렇게 이름과 등번호가 찍힌 유니폼을 입고 축구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하다”라며 오히려 제작진을 안심시킨다.
어차피 지금 한국의 모든 청춘에게 미래는 불공평하다. 오직 우리에게 공정한 것은 성공한 자도 실패한 자도,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어쨌든 숨 쉬고 살아 있는 현재의 시간뿐이다. 실패한 과거와 답 없는 미래는 제쳐두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2015년, 한국 사회의 청춘 유나이티드 모두, 행복하자, 우리.
김준 스포츠 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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