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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기 병역 이행제를!

망가진 무릎, 멈춰버린 K의 꿈
등록 2014-08-15 17:57 수정 2020-05-03 04:27
AFP 연합뉴스

AFP 연합뉴스

군대 후임 K는 프로축구팀의 2군 선수였다. 청소년대표 상비군을 거친 유망주였으나 군문제 해결을 위해 빠른 입대를 택했다. K는 궤적의 슈팅들로 연병장을 지배했고, 우리는 ‘군대스리가’를 제패했다. 우리는 파주의 스페인이었으며 K는 금촌의 메시였다. K는 유선 가설병이었고 군생활 내내 20kg의 방차통을 메고 산을 뛰어다니며 야전 선로를 설치하는 일을 했다. 병장이 된 K는 무뎌진 실전 감각과 무거운 방차통을 메고 달리느라 망가진 무릎 때문에 괴로워했다. 어느 날 전역을 앞둔 나에게 K가 다가왔다. “김 병장님은 좋겠어요. 이제 인생 시작이잖아. 나는 무릎 상태를 보니 선수로서는 끝났어요.” 전역 뒤 K는 팀에 복귀했지만 무릎은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방출돼 15년이 지난 지금 청과물 시장에서 과일 도매업을 하고 있다. 나와는 달리 평생 축구만 해온 K에게 군대 시절은 2년이 아니라 남은 인생의 모든 시계가 멈춰버린 시간이었다.

사람마다 인생의 승부처는 다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20대 초반에 군대를 갔다와 미래를 준비하지만 운동선수들은 그 나이가 인생의 승부처다. 그러나 운동선수의 군 복무에 대한 국민의 잣대는 엄격하다. AS 모나코 선수라는 우연으로 장기체류 자격을 얻어 선수생활 이후로 입대를 연기할 방법을 찾은 박주영의 ‘적법한’ 행운은 전 국민으로부터 인격적 학살을 당했다. 대만의 ‘체육역’과 같은 대체복무제도도 없는 상황에서, 선수들은 세계대회 메달이라는 유일한 특례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고 결국 벼랑 끝에 몰린 선수들의 병역 비리도 터져나왔다.

특정 조건에 있는 남성들에 대하여,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각자의 인생시계에 맞춰 최적의 시간에 병역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 이것을 이해하는 게, 그런 제도를 만드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운동선수의 군문제에 관한 한 진보와 보수의 차이도, 제도의 개선을 고민하는 정치인도 없어 보인다. 남성 유권자들의 뇌관을 건드리려는 모험은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병역의 의무는 국민의 기본 의무이지만 그것이 기회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충돌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다. 20대에 인생을 시작하는 일반인과, 20대에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하는 운동선수가 같은 시기에 입대해야 하는 기계적 평등이 과연 합리적일까.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그들의 세계에 갈 일이 없지만, 그들은 경기장에서 실패하면 우리의 세계로 와서 늦은 경쟁을 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평등한 걸까.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서 월드컵의 승리를, 프로야구의 발전을 요구하는 것이, 천재적인 선수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국민의 의무와 개인의 꿈을 모두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 중심에 필요한 것이 이미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여론이다. 경험 따위는 자랑하지 말자. 이제는 어른이 된 우리가, 병역 문제로 꿈을 접어야 하는 다음 세대를 보듬어 합리적인 제도의 변화를 함께 고민하자. 그게 진짜 사나이다.

김준 사직아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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