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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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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다음, 평창의 ‘환경 수치’

딱 일주일 동안 경기를 위해서 500년 가리왕산 산림 훼손
대안이 없다면 경기장 공사비보다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산림생태를 복원해야
등록 2014-03-04 07:30 수정 2020-05-02 19:27
2006년 강원도 태백시 오투리조트 건설 당시 백두대간보호구역인 함백산의 생태계가 크게 훼손됐다.서재철 제공

2006년 강원도 태백시 오투리조트 건설 당시 백두대간보호구역인 함백산의 생태계가 크게 훼손됐다.서재철 제공

소치는 끝났고, 이제 평창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나 현 상황은 어둡다. 가리왕산 환경 파괴 논란 때문이다. 알파인스키 활강 종목 경기장 건설로 조선시대부터 국가산림보호구역으로 지켜온 가리왕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 파헤쳐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논란은 2011년 7월 평창이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날부터 올림픽 준비의 최대 쟁점이었다. 정부는 2012년 3월 산림청을 중심으로 활강경기장 터 선정을 위한 민관 합동기구를 구성해, 가리왕산 이외에 다른 대상지가 없는지 검토했다. 정선 백운산 만항재라는 의미 있는 대안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스키연맹(FIS)의 입장에 막혀 가리왕산으로 결론을 냈다. 그리고 ‘가리왕산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해제하되, 대회 이후 산림생태를 전면 복원하는 것을 조건’으로 사용 승인을 했다. 경기장 건설을 책임진 강원도와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환경올림픽’을 약속했다. 실제로는 말뿐이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말, 자연천이

환경부는 지난 1월 말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의 환경영향평가를 협의하면서 “가리왕산에 대한 엄격한 산림생태 복원 계획을 수립한 뒤 환경부의 검증을 받고 경기장 공사를 착공하라”는 의견을 강원도에 전달했다. 절차상 환경영향평가는 협의해주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올림픽 경기 이후 생태 복원 대책을 다시 세우고, 이 조건이 충족돼야 공사할 수 있다’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강원도와 동계올림픽조직위는 복원에 관한 실현 가능한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관련 예산과 조직도 없다. ‘자연천이’라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대책만 제시했다. 환경부 담당자는 “갑갑하다. 국가적 행사인 올림픽이라 우리도 웬만하면 환경영향평가를 원만히 하려 했지만, 강원도는 핵심 사항인 생태 복원 대책도 없이 그냥 해달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자연천이’는 말 그대로 자연히 회복된다는 것이다. 한국 멸종위기·희귀 식물 권위자인 우이령보전회 이병천 박사는 “자연천이는 가리왕산을 훼손하고 복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을 네 글자로 줄인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올림픽 활강 종목은 딱 일주일 동안 경기를 치른다. 이를 위해 500년 동안 국가의 이름으로 보호돼온 숲을 훼손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 정말 가리왕산 말고는 대안이 없다면, 경기장 공사비보다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산림생태를 복원해야 한다. 그게 정부가 할 일이다.”

일반 스키장으로 사용 가능성 없는데도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건설은 해발고도 800~1400m인 산지 사면에서 폭 20~30m, 길이 3km가량의 면적을 경사도 30도 전후로 깊이 1m까지 파헤치는 토목공사다. 더구나 슬로프 한가운데 제설용 관로를 묻기 위해 길이 2km, 폭 1m, 깊이 1.5m가량을 파헤치는 공사가 포함됐다. 이 때문에 엄격한 산사태 방지 대책을 포함한 복구 대책을 바탕으로 토양부터 종자, 식생의 회복까지 단계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산림생태를 복원하기 어렵다. 산림생태 복원에 대한 치밀하고 과학적인 계획을 가지고 설계와 시공부터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주일간의 경기를 위해 일반 스키장 규모의 경기장을 짓는 것도 논란거리다.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은 대회 이후 일반 스키장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경기장 건설비가 일반 관광레저용 스키장 수준인 550억원으로 책정돼 있다. 환경 파괴에 예산 낭비까지 겹쳐지는 셈이다. 특히 일반 스키장처럼 건설하면 복원은 더욱 하기 어렵다. 임시 시설로 짓는 것보다 훼손 정도가 심해지기 때문이다. 일반 관광레저용 스키장으로 설계·시공하는 것은 대회 이후 복원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1994년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 당시 노르웨이 정부는 대부분의 경기장과 시설을 대회 이후 철거하기 쉬운 가건물로 짓거나 활용도가 아주 높은 방향에서 추진해 재정 부담과 환경 훼손을 최소화했다.

산림청이 요구한 복원 전담 조직은 아예 검토되지 않고 있다. 예산을 담당한 기획재정부, 조직을 담당하는 안전행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정부 차원의 올림픽 지원기구에서도 제대로 검토되지 않고 있다. 1998년 일본 나가노 겨울올림픽 때도 가리왕산과 비슷한 숙제가 있었다. 활강경기장이 북알프스 국립공원을 비롯한 산림생태계 보호지역에서 건설돼 논란이 제기되자, 일본 정부는 생태 복원 전담 조직과 기구를 만들어 복원에 심혈을 기울였다. 복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박사급 인력 10명을 포함해 30여 명에 달하는 전문가들이 상근하는 환경복원연구소를 만들어 생태 복원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기업과 지자체의 재앙이 된 리조트

스키장 건설로 산림생태계가 대규모로 파괴된 사례는 많다. 1996년 겨울 유니버시아드대회 때 덕유산국립공원을 파헤친 무주리조트, 1997년 겨울 아시아대회 때 발왕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파헤친 용평리조트, 2004년 폐광 지역을 진흥한다는 명분으로 함백산 백두대간보호구역을 파헤친 오투리조트 등. 세 곳 모두 주목과 분비나무 등이 살고 있는 생태자연도 1등급 이상인 국내의 대표적 생태보호지역이었다. 특히 ‘특별법’의 특례 조항을 악용해 환경영향평가를 형식적으로 처리한 무주·용평리조트에서는 옮겨 심은 구상나무·주목·분비나무 등이 모두 말라 죽었고, 오투리조트에서는 대놓고 마구잡이로 산림생태계를 파괴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생태계 파괴와 환경 훼손 등이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가리왕산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스키장으로 천혜의 산림과 생태계를 파괴한 무주·용평·오투리조트 등은 환경만 거덜난 게 아니라 부도와 재정 파탄이라는 경제적 손실까지 입었다. 무주리조트의 쌍방울, 용평리조트의 쌍용은 스키장 건설 이후 모두 기업 부도가 났고, 공공투자 방식의 오투리조트는 사업자인 태백시가 재정 파탄을 맞았다.

겨울올림픽은 김진선 전 지사가 유치를 추진했고, 최문순 현 지사가 실제 대회 준비를 책임지고 있다. 지금 계획대로 가면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상 가장 심각한 환경 파괴로 이어질 것이다. 최문순 지사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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