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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아는 여자'는 이방인이 아니다

등록 2011-05-27 06:25 수정 2020-05-02 19:26
KBS N 스포츠 아나운서 김석류. 연합

KBS N 스포츠 아나운서 김석류. 연합

언제부턴가 ‘야구 아는 여자’의 타이틀을 지닌 여성 저널리스트들이 늘어나고, 공중파 방송 3사의 스포츠 채널 야구 프로그램은 모두 여성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았다. 눈에 띄는 미모를 지닌 아나운서들은 ‘야구 여신’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야구 팬들을 그대로 흡수해 새로운 팬덤을 형성했다. ‘의외로’ 날카로운 분석력과 해박한 야구 지식을 보여준다는 평이 그 팬덤의 한 부분을 지탱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대부분 미모와 옷차림, 야구선수와의 스캔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여성에게 배타적인 스포츠 저널리즘의 세계에서 그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했을지 짐작이 되기에, 종종 그런 식으로 비하되는 게 안타깝다. ‘여자’라는 타이틀 없이 자기 이름 석자만 걸고 묵묵히 일하고 있는 스포츠계의 여성 저널리스트들 역시 힘이 빠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세계의 위대한 여성 스포츠 저널리스트나 캐스터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찾았다. 스포츠 전문 기자들에게 열심히 캐물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여성 운동가로 유명한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여성 스포츠 저널리즘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었지만 그는 스포츠 전문기자는 아니었고, 무슨 기사로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기자 탑5’ 같은 랭킹이나 선수들이 여기자들을 성희롱한 사건, 화제가 된 여기자들의 방송 사고 기사는 같은 사건 하나로도 무수히 많은 기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것이 여기자들이 한 일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아직 스포츠계 안팎에서 여성 저널리스트들을 ‘운동선수와 미녀’ 틀에 맞추거나, 이방인으로 여기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포츠 전문지에서 기사거리가 많지 않은 포스트 시즌에 경쟁적으로 여기자들의 말랑말랑한 에세이를 내보내고 있는 것도 그런 차별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 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의 활동 반경을 넓히고 그들의 참여를 존중해 준 사례는 없을까. 1978년 9월 26일, US지법의 콘스탄스 베이커 모틀리 판사는 뉴욕의 메이저리그팀들이 여기자에게도 라커룸 취재를 허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흑인이자 여성의 몸으로 판사와 변호사, 주 상원의원이자 여성운동가로 활동한 모틀리 판사 그 자신도 남자들과 백인들의 세계에 온몸으로 부딪친 선구자였다. 운동선수들의 라커룸은 지금도 사진 촬영이나 경기 전 취재가 불가능하고 팀에 따라 아주 예민하게 관리하는 선수들만의 공간이며, 남성 선수들이 나체로 돌아다니는 지극히 내밀한 공간이다. 그 공간에 출입할 수 있었던 남성 기자들과 여성 기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을 없애준 것만으로도 이 판결은 여성의 스포츠계 참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김지현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참고 문헌: (민훈기 지음,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펴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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