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 프로야구를 양분한 투타의 간판이 류현진과 이대호 선수라면 2010년 한국 프로야구를 한층 뜨겁게 달구고 있는 두 팀은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다. 각각 광주와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두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막판까지 양보 없는 접전을 펼치고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라이벌 관계란 팬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좋은 소재다. 막다른 골목에서 라이벌이 제대로 맞붙었다면 말 그대로 ‘대박’이다.
과연 어디서부터, 누가 조장했는지 기원은 의심스럽지만 연고 구단에 대한 일방적 지지가 지역감정에서 비롯됐다 해도 뭐, 여기까지도 괜찮다. 지역감정이 없었다면 각각 일본 간토와 간사이의 대표 구단으로 자리잡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즈의 인기도 없었다. 미국 뉴욕과 보스턴에 프랜차이즈를 둔 양키스와 레드삭스의 경쟁도 싱거워졌을 수 있다.
문제는 특정 팀에 대한 비방이 도를 넘었다는 사실이다. 시작은 8월2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4위 다툼을 벌이던 롯데와 기아 경기에서 빚어졌다. 9회말 투아웃 타석에는 롯데의 3번 타자 조성환이 들어섰다. 기아에서는 마무리 투수 윤석민이 마운드를 지켰다. 7-5로 앞선 상황에서 윤석민이 체인지업을 제대로 채지 못했다. 타자 몸 쪽으로 바짝 붙어가던 공이 조성환의 헬멧에 꽂히고 말았다. 윤석민은 8월15일 롯데전에서도 홍성흔의 왼손을 맞혔다. 홍성흔은 이때 입은 부상으로 남은 시즌을 접어야 했다. 이때부터 사직구장이 난장판이 됐다. 성난 관중이 기아 타이거즈 선수를 향해 욕설과 함께 물병 등 오물을 던져댔다. 윤석민을 향해 “내려가! 내려가!” 하는 야유까지 터져나왔다. 윤석민이 롯데 더그아웃 쪽으로 모자를 벗고 정중히 사과했지만 부산 팬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롯데 자이언츠를 향한 부산 야구팬의 아주 특별한 사랑과 8월24일 경기장에서 빚어진 불상사가 맞물리며 사태는 일방적인 기아 타이거즈 비방으로 이어졌다. 야구 관련 각종 인터넷 게시판이 들끓었다. 비판 가운데 상당수는 이번 ‘데드볼 사태’와 관계가 없었다. 지난 시즌 우승팀인데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다른 팀을 경기력으로 압도해왔다는 기아 타이거즈의 ‘과거’ 때문만도 아니다. 강팀에 대한 약자의 공동 견제라면 당연히 이번 시즌 내내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SK 와이번스는 더 심한 꼴을 당해야 했다.
좀더 본질적인 문제는 기아 타이거즈가 ‘전라도 팀’이라는 사실에 있다. ‘전라디언’ ‘홍어’라는 용어가 난무하는 현상만 봐도 그렇다. 특정 지역과 특정 지역 사람을 비하하기 위해 쓰는 용어다. 특히 ‘홍어’ ‘홍어존’은 야구계에서만 쓰는 말이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이 조금이라도 기아 선수에게 유리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홍어존’ 논란이 나온다. 일부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슨상존’이라는 표현을 대신 쓰기도 한다. 기아에 우호적 기사를 올린 기자가 알고 보니 호남 출신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거나,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 가운데 호남 출신의 판정 논란을 정리한 글이 떠도는 맥락도 비슷하다.
각 팀을 가리키는 비하적 표현이 없지는 않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를 중심으로 확산된 별명이기는 하지만 SK 와이번스를 ‘충’, 두산 베어스를 ‘’ 혹은 ‘약산’, 한화 이글스를 ‘’, LG트윈스를 ‘엘쥐’로 일컫는 식이다. ‘충’은 SK의 우리말 발음에서 비롯됐고, ‘’은 ‘두산 최악’을 줄인 표현으로 알려졌다. ‘’이나 ‘엘쥐’는 각각 닭과 쥐에 해당 팀을 빗대려는 의도다. 대다수 별칭이 팀 이름이나 연상되는 동물에서 비롯됐다. ‘전라디언’ ‘홍어’ ‘슨상’처럼 특정 지역 비하로 읽힐 수 있는 용어로 곤욕을 치르는 팀은 기아 타이거즈가 유일하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는 정치·사회적 긴장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지역감정’을 만들어냈다. 호남 고립의 ‘지역감정’ ‘지역구도’가 그렇게 탄생했다. 굳이 지역감정의 역사적 기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2010년 한국 프로야구에서 나타나는 지역감정의 양상은 분명 퇴행적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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