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2006년 2월19일 이탈리아 토리노 팔라벨라 빙상장.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천m에서 결승선을 1등으로 통과한 사내가 머리까지 덮은 유니폼 지퍼를 가슴팍까지 내리고 얼굴을 내밀었다. 놀랍게도 그는 흑인이었다. 샤니 데이비스(당시 24살·미국). 그는 감격에 겨운 듯 링크를 돌며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다. 관중은 그에게 아낌없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는 겨울올림픽 82년 만에 최초로 개인종목 금메달을 딴 흑인 선수였다. 데이비스는 이번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천m 금메달을 따내며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흑인 선수가 단체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것도 결코 오래된 일이 아니다. 토리노 대회에 4년 앞서 열린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때 봅슬레이 여자 2인승의 보네타 플라워스(미국)와 남자 아이스하키의 제롬 이긴라(캐나다)가 있었다.
장면 2. 2010년 2월24일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 빙상장. 스피드스케이팅 최장거리인 남자 1만m 결승선을 가장 빨리 통과한 선수는 놀랍게도 한국의 이승훈(22·한국체대)이었다. 12분58초55의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아시아인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부문에서 최초로 황색 피부의 사내가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비록 그보다 4초05 빨리 결승선을 통과한 스벤 크라머르(네덜란드)가 레이스 도중 코스를 잘못 바꾸는 바람에 실격당하는 행운을 얻었지만, 서양인보다 다리가 짧은 단점을 엄청난 체력 훈련으로 이겨내며 영광을 안았다. 이승훈은 금메달을 따낸 뒤 “다리가 긴 유럽 선수들을 따라가려면 자세를 많이 낮춰야 하는데 그러면 체력 부담이 크다. 그래서 지난여름 내내 스피드와 지구력 훈련으로 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85년 역사에서 금메달 80%가 유럽·미국 차지
겨울올림픽의 ‘성역’을 깬 선수들 이야기다. 올림픽은 인종과 종교, 빈부를 뛰어넘는 지구촌 대화합의 마당이다. 적어도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그렇다. 하지만 현실도 그럴까? 현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은 205개 나라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는 91개국 5500여 명이 참가해 금메달 86개를 놓고 각축을 벌였다. 그러나 대회가 막바지로 치닫는 2월24일(한국시각) 현재 메달을 하나라도 딴 나라는 참가국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26개국이다.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1924년 제1회 샤모니 겨울올림픽부터 2010 밴쿠버 대회까지 86년 동안 메달을 하나라도 딴 나라는 IOC 회원국의 20%도 안 되는 39개국이다. 그중 금메달 맛을 본 나라는 불과 26개국이다. 지금까지 86년 동안 나온 금메달 825개 중에 절반이 넘는 433개를 독일(125개), 러시아(123개), 노르웨이(100개), 미국(85개) 등 네 나라가 휩쓸었다. 여기에 오스트리아(55개), 스웨덴(46개), 캐나다(44개), 스위스(42개), 핀란드(41개)까지 상위 9개국이 전체 금메달의 80%가 넘는 661개를 가져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겨울올림픽을 ‘북반구 부자 나라 백인들의 잔치’라고 부른다. 겨울올림픽은 유색인종과 제3세계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우선 환경적으로 겨울 스포츠는 백인이 많이 사는 유럽과 북미의 추운 지역에서 발달했다. 흑인이 많이 사는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은 눈을 보기조차 어려운 겨울 스포츠 불모지다. 겨울 스포츠는 돈도 많이 든다. 스키나 스케이트, 썰매는 온갖 장비를 갖추려면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신체적으로도 흑인은 몸에 지방보다는 근육이 많아 백인이나 황인종에 비해 추위에 약하다. 또 크로스컨트리나 스키점프,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등 다리가 긴 서양 사람들에게 유리한 종목이 많다. 쇼트트랙, 프리스타일스키(모굴·에어리얼·스키크로스) 등 몸집이 작은 동양인에게 유리한 종목도 있지만 대부분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서야 정식 종목이 됐다.
환경적·경제적·신체적 요인만 탓하면서 메달이 편중되는 현상을 나 몰라라 지켜보는 것은 겨울올림픽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IOC가 앞장서서 나서야 한다. 그런데 북반구 부자 나라들은 이 문제에 소극적이다. 아니,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금메달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달이다.
겨울올림픽 유치 세 번째 도전에 나선 평창의 실패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단은 2007년 6월 말 저 멀리 지구 반대편 과테말라로 날아갔다. 2014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IOC 총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평창은 획기적인 공약을 내놓았다. 유럽과 북미가 독식하고 있는 겨울 스포츠를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 제3세계 국민에게도 보급해 즐길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 겨울올림픽의 저변을 넓히도록 이들에 대한 파격적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그냥 돈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 프로그램을 통해 제3세계 국가들도 겨울올림픽의 주인으로 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평창이 이런 내용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많은 이들은 박수로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평창은 또 울었다. 2007년 7월5일 아침 8시25분(한국시각) 과테말라시티 레알인터콘티넨털 호텔.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소치”였다. 2차 투표에서 러시아 소치에 47표 대 51표로 쓴잔을 마신 것이다. 평창은 1차 투표에서 36표를 얻어 소치(34표)를 2표 차로 제쳤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25표로 1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잘츠부르크를 뺀 1·2위 후보 도시 간 2차 투표에서 소치에 4표 차로 역전패를 당했다. 기억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던 역전패의 악몽이 4년 만에 판박이처럼 재연된 것이다. 승자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러시아 소치로 바뀌었을 뿐 비운의 패자는 두 번 모두 평창이었다. 1차 투표에서 탈락한 뒤 승부의 ‘보이지 않는 손’(3위)으로 작용한 도시 역시 4년 전과 똑같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였다. 잘츠부르크를 지지한 유럽의 부자 나라들은 여전히 낯선 아시아의 한국보다 같은 유럽 대륙의 러시아를 택한 것이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차라리 같은 유럽의 소치에 표를 주면 줬지, 어디 감히 듣도 보도 못한 아시아의 평창이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느냐는 보수적 인식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평창은 현지 실사에서 IOC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국민의 유치 열기와 경기장 시설 등에서 경쟁 도시에 앞서 겨울올림픽 유치가 유력했다. 그해 6월4일 발표된 IOC 평가보고서에서 평창과 잘츠부르크는 ‘엑설런트’(excellent), 소치는 이보다 한 단계 낮은 ‘베리 굿’(very good) 점수를 받았다. 미국의 는 투표 전날 인터넷판에서 “평창이 가장 유력하다”는 기사를 내보내며, 그 근거로 IOC 기술평가 보고서에서 평창이 경쟁 도시를 가장 앞선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실사건 프레젠테이션이건 모두 소용없었다. 겨울올림픽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유럽과 북미 IOC 위원들의 표심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사이 세계 평화와 스포츠 저변 확대라는 올림픽 정신은 공염불에 그쳤다.
‘왕따’ 아시아인들의 반격
밴쿠버 올림픽 역시 여전히 지구촌 북반구 부자 나라들의 잔치판이다. 그러나 그들만의 잔치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북미와 유럽 이외에 1970년대 처음 금메달을 딴 일본에 이어 최근 20년간 한국, 카자흐스탄,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등이 금메달 대열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역대 최다 금메달 국가 11위에 올라섰다. 흑인이 금메달을 따고 아시아인이 불가능해 보이던 종목의 성역을 넘고 있다. 지구촌 절반 이상이 소외됐던 ‘겨울 축제’가 명실상부한 ‘지구촌 축제’로 거듭나는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체포 대신 사전영장” 윤석열이 다급해졌다…경호처 분열 해석도
“술 고주망태, 건달 말투” 윤석열 찾는 ‘수배 전단’ 나왔다
[단독] 우원식, ‘내란 상설특검 추천 의뢰’ 않는 최상목에 권한쟁의 청구
‘무죄’ 박정훈 대령 “국민 지지 덕분…채상병과 약속 지키겠다”
술도 끊고…! 입만 열면 거짓말 [그림판]
박정훈 대령 무죄…군사법원 “채 상병 사건 항명 아니다”
“최전방 6명 제압하면 무너진다”…윤석열 체포 ‘장기전’ 시작
경찰, ‘체포 저지’ 26명 신원확인 요청…2차 집행 앞두고 ‘경고’
‘관저 밖 윤석열’도 체포할 수 있나요? 전직 판사가 답했다
“체포 말고 구속” 윤석열 역제안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