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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B조 그들은 누구인가


2010 남아공에서 맞붙을 아르헨티나·그리스·나이지리아…
비극의 현대사 공유한 그들의 사회와 정치, 그리고 축구
등록 2009-12-18 07:47 수정 2020-05-02 19:25
월드컵 B조 그들은 누구인가

월드컵 B조 그들은 누구인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조 추첨 결과, 우리나라는 아르헨티나·그리스·나이지리아와 함께 B조에 속하게 됐다. 여러 언론매체들은 B조를 포함한 전체 8개 조 32개국의 전력과 누가 16강에 먼저 안착할지에 대한 예상 분석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월드컵’ 아닌가. 이번 기회에 축구도 즐기며 세계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우선 B조 네 나라는 비극의 현대사를 이겨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대국의 치열한 다툼에 끼어 속박의 세월을 보냈고, 군부독재라는 긴 터널을 거쳐온 것이다. 물론 현재도 적지 않은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지만, 그 사회의 역동성은 희망의 눈으로 미래를 보게 한다. 그렇기에 2002 월드컵이 우리에게 각별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축구와 월드컵은 단순한 대회 이상일 것이다. 세 나라가 놓인 역사·사회적 맥락과 축구의 특색, 예술 작품에 비친 모습 등을 차례로 살펴본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1. 아르헨티나

사실과 환상, 열정과 비탄의 묘한 동거
‘식민지→독립’ ‘군부독재→민주화’의 근현대사 응축한 듯한 열정적인 축구
◎ 탱고, 독립, 멋진 유니폼

브라질 축구를 ‘삼바 축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한국 언론의 별칭일 뿐, 현지인들은 대표팀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셀레상’이나 작은 카나리아를 뜻하는 ‘‘카나리냐’를 외칠 뿐이다. 한국에서 ‘탱고 축구’로 흔히 불리는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다. 현지인들은 희고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뜻의 ‘알비 셀레스테’(Albi Celeste)를 연호하며 자국팀을 응원한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탱고 전사’라니, 그렇게 아름답고 에로틱한 춤을 무기로 하는 군대가 있었다면 지구 평화는 금세 이뤄졌을 것이다.

1818년 2월25일 제정된 아르헨티나 국기는 독립전쟁의 지도자 마누엘 베르크라노 장군이 사용한 깃발을 시작으로 하고 있다. 국기 한가운데에는 잉카문명의 상징인 ‘5월의 태양’이 그려져 있다. 이는 스페인의 압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1810년 ‘5월 혁명’을 상징한다.

2002 월드컵 때 삼성패션연구소가 32개국 유니폼을 상징성·기능성·패션성 등으로 평가한 결과, 아르헨티나 유니폼이 1위를 차지했다. 이탈리아·잉글랜드·크로아티아가 뒤를 이었는데, 아르헨티나 유니폼은 시각적인 선명성과 스트라이프 패턴의 응용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왼쪽부터) 멋진 유니폼· 마라도나교

(왼쪽부터) 멋진 유니폼· 마라도나교

◎ ‘마라도나교’를 아시나요?

‘신의 손’ 마라도나를 신봉하는 신흥 종교 ‘마라도나교’는 1998년 10월30일 새벽 0시15분에 창시됐다. 그의 38번째 생일이 되는 날이다. 이 종교에 따르면 2009년 현재는 D.D 49년이다. D.D. 마라도나가 태어난 해인 1960년이 원년이다. 신도들은 마라도나의 생일인 10월30일을 크리스마스로 존숭하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 골문으로 ‘신의 손’ 골을 터트린 6월22일을 오순절로 기린다. 성령이 강림한 뜻깊은 날이다.

등으로 유명한 세르비아의 영화감독 에미르 쿠스트리차는 지난 2007년 다큐멘터리 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 속에 마라도나교의 미사 의식과 혼배성사가 나온다. 모두 축구장에서 이뤄진다. 그들은 ‘디에고의 기적을 온 우주에 전파하라’ ‘아이들 이름에 디에고를 넣어라’ 같은 십계명을 준수하는가 하면, ‘디에고의 왼발 슛을 거룩하게 하옵시고 신의 묘기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가 공을 더럽히지 않도록 우리를 하베랑고(주앙 아벨란제·전 국제축구연맹 회장)로부터 해방시켜주소서’ 같은 주기도문을 외운다.

항간에는 박지성과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카를로스 테베스(현 맨체스터 시티)가 이 교단의 사도로 임명됐다고 하는데, 정작 테베스는 마라도나 감독의 예측 불가능한 지도 스타일 때문에 대표팀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2002 월드컵 때 할리우드 액션으로 아르헨티나의 16강 꿈을 좌절시킨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은 이 교단에 의해 사탄으로 지목받았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축구 전쟁’이 종교 전쟁으로 비화한 셈이다.

피아졸라

피아졸라

◎ 피아졸라의 탱고

“흠집 많은 인간의 혼란, 땀과 연기에 찌든, 백합 향기와 오줌 냄새를 맡는, 음식 자국과 죄에 물든, 낡은 옷처럼, 주름진 육신처럼, 감시, 꿈, 불면, 예언, 사랑과 미움의 말들, 어리석음, 충격, 목가, 정치적 신념, 부정, 의심, 긍정 따위로 순결을 잃은 영혼.”

현대음악가 존 애덤스가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표현을 빌려 아르헨티나의 위대한 음악가 피아졸라를 극찬한 내용이다. 으로 유명한 콜롬비아의 소설가 마르케스는 서구의 비평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코웃음을 친 적이 있다. 당신들이 ‘환상적’이라고 여기는 에피소드가 남미에서는 생생한 일상이라고 그는 말했다. 탱고 역시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 관능과 파멸, 열정과 비탄…. 그 모든 것이 분리돼 있지 않고 자웅동체로 한 몸이 되어 뒤엉켜 있는 상황이 곧 축구이며 또한 탱고이다. 이 꿈틀거리는 수사들을 보면 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마라도나라는 기이한 존재에 그토록 열광하는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스

그리스

2. 그리스 ‘발칸의 비극’ 껴안은 신화의 나라
극심한 실업률과 사회 불안 속 ‘오토대제’가 이끄는 축구대표팀의 선전은 삶의 낙
◎ 데모와 불타는 국기

지난 12월6일, 그리스의 아테네와 테살로니키에서는 대규모 거리시위가 벌어졌다. 지난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15살 소년 알렉산드로스 그리고로풀로스 추모 1주기를 맞아 대대적으로 벌어진 시위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일부 좌파 그룹과 무정부주의자들이 원조 시위에 나서 이탈리아인 5명과 알바니아인 3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극심한 실업률과 도탄에 빠진 경제 상황, 그럼에도 여전한 부유층을 위한 정책에 대한 불만이 맞물린 ‘그리스 사태’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같은 시위에서 더러 볼 수 있는 모습이 국기를 불태우는 것이다. 최근 외신 사진은 아테네 거리에 몰려든 성난 청년들이 그리스 국기를 불태우며 격렬히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 국기는 하얀색과 파란색의 9개 가로줄이 서로 교차돼 있고 깃대 쪽 위에 파란 직사각형에 하얀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파란색은 바다와 하늘을 뜻하고 십자가는 이슬람과 터키에 맞섰던 그리스 독립의 상징이다. 줄이 9개인 까닭은 1821년 시작된 독립전쟁 때의 구호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9음절을 뜻하며 실제로 독립전쟁 역시 9년 동안 지속됐다.

◎ 21세기에 환생한 ‘오토대제’

오랫동안 그리스 축구는 저 고대 희랍 시절 올림피아 경기의 신화나 되는 듯 유럽 변방의 은일자였다. 이웃한 터키나 발칸반도의 세르비아·크로아티아 등에 비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토대제’ 치세가 시작됐다. 완력의 수비수로 유명했던 오토 레하겔 감독은 2001년부터 그리스 대표팀을 지휘해 ‘유로 2004’에서 우승국이 되었다. 그 바람에 ‘오토대제’라는 별칭을 얻었다. 다양한 공격 전술로 1시간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21세기 축구에 비해 레하겔의 축구는 최후방의 리베로를 병참기지로 하는 힘의 축구를 구사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레하클레스’(레하겔+헤라클레스).

(왼쪽부터) 데모와 불타는 국기·‘유로 2004’

(왼쪽부터) 데모와 불타는 국기·‘유로 2004’

본인은 ‘실리 축구’라고 주장하지만 유럽의 필봉가들은 단조롭다고 하품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로 2004 결승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레하겔이 이끄는 그리스는 단 한 개의 유효 슈팅을 골로 연결하며 1-0으로 승리했다. “이기는 축구가 가장 현대적인 축구다”라는 명언을 남긴 레하겔 감독은 그 어떤 반대와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팀을 이끌어왔는데, 그래서 ‘오토크라시’(Ottocracy)라는 별칭도 얻었다. 그의 이름에 독재라는 뜻의 ‘오토크라시’(Autocracy)를 붙인 것이다.

한편 그리스 대표팀의 별칭은 ‘해적선’이다. 이 말 역시 유로 2004 대회에서 비롯됐다. 당시 개최국 포르투갈이 개막 쇼에서 식민지 개척기인 16세기의 범선으로 위세를 과시하자 그리스의 한 언론인이 “그리스가 해적이 되어 포르투갈을 침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리스는 개막전과 결승전에서 연거푸 포르투갈을 침몰시켰다. 이후 ‘해적선’은 그리스 대표팀의 별칭이 되었다.

◎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들
〈율리시즈의 시선〉

〈율리시즈의 시선〉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은, 비록 약 15년 전의 영화이긴 해도, 오늘의 그리스와 발칸반도의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내한했던 앙겔로풀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사형을 받아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주검을 찾아다닌 기억도 있다. 내란은 그리스에 수십 년 동안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경험 때문에 앙겔로풀로스는 조국을 환멸했고, 독재자들에게 저항했으며, 더 자유로운 분위기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그런데 ‘고전’이란 어느 나라든 똑같은 운명인가. 이 명민한 영화학도 역시 자국의 고전을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를 학교에서 배울 때는 싫어했지만 프랑스 유학 중 우연히 다시 읽고 모든 유럽의 문화가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에 영향을 받아 이나 을 만들었다.”

중반부, 영화사상 빛나는 한 대목으로 기억될 장면이 나온다. 산산이 해체된 거대한 석상이 어느 수집가에 의해 강을 따라 독일로 가게 되는데, 바로 그 석상의 주인공은 레닌. 주인공은 우연히 그 배에 동승하는데, 강 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동아줄에 칭칭 감긴 채 어디론가 실려가는 레닌 석상을 바라본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 거수경례를 하는 군인,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레닌에 대한 추모라기보다는 한 시대의 갑작스런 종말과 그 이후 불어닥친 발칸의 내전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 찬 장면이다.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3. 나이지리아야만에 짓밟힌 초원의 힘
현재진행형인 식민의 상처, 분열과 내전… 유럽식과 남미식 교배한 ‘탄력 축구’의 진수
◎ 정치·종교·종족 사이 끊임없는 분란들

나이지리아. 수단·차드·니제르·말리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나이지리아의 국경선은 유럽 열강에 의해 직선화돼 있다. 19세기에 영국은 현 나이지리아 영토에 거주하는 200여 개 부족의 전통을 무시하고 하나로 묶어버렸다. 그 바람에 1960년 영국의 식민통치가 끝난 이후 현재까지 끝없는 내전과 쿠데타에 시달려왔다. 1억3천만 명의 인구 가운데 북부 하우사족(1640만 명), 서부 요르바족(1130만 명), 동부 이보족(920만 명)이 대립각을 형성하고 여기에 수많은 소수 부족이 다양한 구도로 갈등하고 있다. 독립 이후 10여 차례 가까운 쿠데타와 역쿠데타, 소요와 학살이 벌어졌다. 1999년 이후의 집계만으로도 적어도 1만 명 이상이 정치·종족·종교 갈등으로 사망했다. 2004년 5월 종교유혈 분쟁까지 벌어져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정치·종교·종족 사이 끊임없는 분란들

정치·종교·종족 사이 끊임없는 분란들

나이지리아 국기는 왼쪽에서부터 초록·하양·초록이 배치돼 있는데, 이 셋은 3대 강성 부족을 표시함과 더불어 풍부한 농산물(초록)과 평화와 화합(하양)을 뜻한다. 국기는 1960년 독립 당시 확정됐으나. 진실로 평화와 화합이 나이지리아의 초록색 평원에 정착하기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당시 나이지리아 대표팀은 입국이 늦어져 1·2차전에서 실격패를 당하고, 남아공을 출발해 홍콩을 경유한 뒤 인천공항을 거쳐 대구로 오는 기나긴 여정 동안 짐가방을 분실하는 바람에 대구 서문시장에서 국내 브랜드 키카 유니폼을 구해 입기도 했다. 축구화도 부족해서 축구협회 연락관의 축구화를 얻어 신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는 아디다스가 개발한 ‘테크핏 파워웹‘(TechFit PowerWeb)을 입는다. 아르헨티나와 그리스도 이 유니폼을 입는다. 따라서 B조에서는 나이키가 유일하게 한국 대표팀을 통해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아디다스에 맞선다.

◎ ‘국내파 감독’ 뿌리내릴 수 있을까

1990년대 이후 아프리카는 세계 축구에 강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그들은 유럽식 힘의 축구나 남미식 기술의 축구가 아니라 탄력 넘치는 육체성 위에 그 모든 것을 혼종교배한 아프리칸 스타일로 축구의 자전축을 뒤흔들었다. 먼저 카메룬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고, 그 뒤를 이어 나이지리아가 94년 미국 월드컵과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금메달까지 쟁취했다. 가나, 세네갈, 남아공, 코트디부아르가 그 뒤를 이었다.

그때마다 유럽의 명장들이 아프리카 축구를 이끌어왔다. 나이지리아 역시 네덜란드의 웨스터호프(1994년)와 세르비아에서 최근 멕시코로 국적을 바꾼 밀루티노비치(1998년), 그리고 본프레레(1996년 올림픽) 등이 합류한 적이 있는데,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해 자국의 감독을 옹립하려는 노력을 줄기차게 시도하고 있다. 현재 샤이부 아모두 감독이 이끌고 있다.

여느 아프리카 국가처럼 ‘슈퍼 이글스’ 나이지리아는 첼시의 수비형 미드필더 존 오비 미켈을 비롯해 야쿠부, 요보 등 유럽 상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만으로 너끈히 베스트11을 구성할 수 있다. 국가 정체성보다는 출신 부족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고, 그보다는 가족과 고향의 생계를 더 우선시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은 종종 대표팀 운영에 반기를 드는 경우가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 스포츠신문 는 32개국 감독들의 연봉 순위를 발표했는데 잉글랜드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무려 990만달러(약 114억원)로 1위, 허정무 감독이 60만달러(약 7억원)로 20위에 올랐다. 나이지리아의 아모두 감독은 18만달러로 제일 적은 연봉자다. 그는 자기보다 수십 배씩 버는 스타 선수들을 조율해 남아공으로 가야 한다.

나이지리아의 아모두 감독(왼쪽) 치누아 아체베(오른쪽 사진 오른쪽)

나이지리아의 아모두 감독(왼쪽) 치누아 아체베(오른쪽 사진 오른쪽)

◎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19세기 말, 아무오피아 마을이 몰락해간다.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의 뼈대다. 왜 무너지고 있는가? 그 첫 번째 혐의자는 영국 통치자들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이 침탈자들은 검은 그림자 정도로 기능한다. 아체베는 분노하고 폭로하기보다는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이다. 왜 아프리카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가, 혹시 그 원인의 하나가 내부에 있는 건 아닌가?

28살 되던 1958년 발표한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상당한 작가적 신념과 용기를 필요로 했다. 아직 그의 모국 나이지리아가 영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을 하기도 전의 일이다. 나이지리아의 3대 부족 가운데 하나인 이보족 출신인 아체베는 이 소설에서 나이지리아의 오랜 전통과 문화를 악착같이 복원해낸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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