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비 증액은 또 다른 남북 긴장 부를 위험… 상호군축, 과학화 등 대안 마련 필요
“자주군대로 자리 잡을 것”
언뜻 사회운동 단체의 유인물 제목 같지만 국방홍보원이 펴내는 5월8일치 제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날인 7일 정부출범 뒤 첫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주재해 “주한미군 문제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변화하게 돼 있고, 거기에 우리 국군이 새롭게 맡아야 할 일이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군은 국민 앞에 떳떳한, 스스로 나라를 보위하는 자주국방 국가의 자주군대로 떳떳하게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한 말을 30년 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한 적이 있다.
박정희식의 자주국방과는 다르다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진 1969년 닉슨 미국 대통령은 ‘아시아에서 재래식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 방위의 1차적 책임은 당사국이 져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베트남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 미국은 71년 한국에서도 미 제7사단을 일방적으로 철수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우리가 방어하겠다는 ‘자위국방’ 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애초 자위는 자력방위의 준말로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한 방위개념뿐이었는데, 박 대통령은 72년부터는 자위국방이란 말을 쓰지 않고 ‘자주국방’이란 용어를 썼다. 박 대통령이 내세운 자주국방에는 대미관계까지 포함한 국방체제의 자주성을 뜻했다.
물론 정부 당국은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하는 자주국방은 70년대의 개념과는 다르다고 설명하는 등 무척 조심스럽다. 조영길 국방장관이 6일 오후 청와대에 보고한 ‘자주국방비전’의 핵심은 한-미 연합방위의 틀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우리 힘으로 북한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킨다’는 자위적 방위(self-defense) 역량 확충이다. 권안도 합참 전략본부장은 “감축 등 주한미군의 단계적 변화에 대비해 부족한 전력을 우리 군이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자주국방 비전은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 균형자로서 역할을 늘려나가고 한국군은 자국 방위의 직접적 책임을 확대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70년대 자주국방은 한반도에서 미국이 없는 것을 전제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자주국방을 강조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현실에서는 그만큼 자주국방이 안 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 예비역 장성은 “한국군은 ‘버티기 전력’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에 따르면 국군은 북한의 공격이 시작된 뒤 휴전선 진지에서 처음 5~15일 동안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군은 반격을 위해 미군 등의 증원이 끝날 때까지 서울 북방 20~30㎞ 방어선을 15~20일 동안 유지해야 한다. 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시간대별 병력전개표에 따라 미 본토 등에서 69만명의 병력과 항공모함 전투단, 공군전력, 해병기동군 등을 한반도에 투입하게 된다. 국방부는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유사시 ‘인계철선’ 구실을 한다면, 미 증원전력은 위기 및 전시에 결정적이고 신속한 전쟁의 승리를 보장하는 구실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군은 휴전선에서 서울까지 설정한 3단계의 방어선에서 버티다 미 증원군이 도착하면 비로소 역공세를 준비한다.
이런 지상 방어를 위해 한국군은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155마일 휴전선을 따라 보병이 줄을 지어 있다. 그 뒤를 수십만명의 병력이 지키고 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물 샐 틈 없는 철통경계’라고 뿌듯해하지만, 지상군이 비대한 기형적 군 구조란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는 군 전력구조를 소수정예화와 기술·정보 지향으로 바꾸고 있음에도 미군에 대한 기대심리와 의타심이 몸에 밴 비대칭적 동맹이 한-미 동맹의 한 현실이다.
남과 북의 전력에 대한 객관적 판단 필요

국방부와 합참에 따르면, 남북관계 구도 변화에 조응해 대치기-공존기-통일기의 3단계로 구분해 미래 군사력 기획을 하고 있다. 각 단계의 개념은 △대치기는 북한의 대남적화 의지가 지속되는 한편 남북관계 개선의 모색과 발전이 추구되는 시기 △공존기는 북한의 대남적화 의지가 약화됨과 동시에 남북간의 정전상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는 시기 △통일기는 통일 달성 이후 통합-조정-안정으로 전화되는 시기 등이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각 단계별 시기를 대략 대치기(현재~2008년), 공존기(2009~20년), 통일기(2020년 이후)로 설정하고 있다고 한다. 군사력 건설기조는 대치기에는 현 대북중심 체제를 보완·발전하고 공존기에는 북한·주변국 동시대비 태세로 전환하고 한-미 방위체제의 자주성 확대를 추구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국방부는 노 대통령에게 보고한 자주국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분야별 능력은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첨단정보·과학군 육성과 관련된 전력증강 사업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국방부는 자주적 방위역량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GDP의 3% 이상인 적정 군사비가 지속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 때 ‘군사비를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라며 국방예산을 GDP 대비 2.7% 수준에서 3.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5월6일 오후 조영길 국방장관이 중장기 자주국방계획을 보고하면서 국방예산을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NP) 대비 3.5%선까지 증액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자주국방과 안보상황의 요구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좀더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아직도 남한 사람들은 호시탐탐 남침 기회를 노리는 북한의 우세한 군사력을 두려워한다. 군 당국은 남한의 전력지수가 북한의 70~80% 수준이고 주한미군의 전력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남북한 군사력 비교 관련 자료를 비밀로 묶어두고 있지만, 민간연구자 사이에는 한반도 군사력 균형에 대한 논란이 존재한다. 국방부가 를 통해 공개하는 남북한 군사력 관련 자료는 탱크·비행기·군함 숫자 등 단순 개수비교에 머물러 병력·무기의 질, 지휘능력, 정보능력, 사기, 신기술 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96년 북한 해군이 수상전투함과 잠수함을 합쳐 430 대 180으로 우세하지만 함정의 총 t 수는 15만t 대 10만5천t으로 남한이 우세하다. 일부 연구자는 75년 무렵에는 남북한이 매년 군사비 지출의 수준에서는 균형이 맞추어졌고 80년 남한은 누계 국방비 지출이 160억달러, 북한이 67억달러 등 남한이 2.4 대 1로 앞섰다는 주장도 한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전력증강 시행에 앞서 남북한의 군사력 균형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중장기 국가안보 전략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적인 방식은 상호균형 감축
전문가들은 전력합리화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자주국방=국방비 증액’이란 도식이 반드시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남창희 인하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과도한 인력 중심의 체제를 기술군으로 바꾸려면 고가장비 도입 등으로 비용이 더 드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황에다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비 증액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 같다. 남북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데 국방비 증가가 결국 군비경쟁으로 연결될 수도 있어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다른 사회복지 예산이 주는 등 기회비용을 발생시키므로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는 노력과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꼼꼼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자주국방은 국방비 증액이 불가피하다. 다만 북한 입장에서는 위협이 증대할 수 있다. 결국 이상적인 방식은 상호균형 감축이다. 주한미군의 공백을 우리가 군사비 증액으로 메우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재래식 무기를 줄이는 것과 병행시키는 것이다”고 말했다.
함택영 경남대 정외과 교수는 “3% 이하의 국방비로 현 한국군 병력을 운영하는 것은 국방비를 매우 경제적으로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병력 구조를 줄여야 하는데 북한군이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데다 군 병력이 줄면 장교들의 자리도 줄어들기 때문에 어렵다”고 분석했다.
함 교수는 남북한이 피차 무력도발을 억지하면서도 상대방의 안보불안감을 자극하지 않는 ‘합리적 충분성’ 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상대국에 대한 힘의 우위를 통해 안보를 추구하는 ‘절대안보’ 개념은 상대국도 똑같은 대응을 유발함으로써, 쌍방은 서로 작용-반작용의 군비경쟁 과정을 지속하게 되고 끝에 가서는 오히려 안보가 취약해지는 소위 ‘안보 딜레마’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딜레마는 군사적 우위확보 경쟁이 아니라 결국 정치적 해결로 풀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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