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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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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수술칼이 휘었다

등록 2003-04-17 15:00 수정 2020-05-02 19:23

현행 체제 대체로 유지하는 개혁 방안 마련… 투명성 강화·해외정보 집중하는 약물 처방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서동만(47) 상지대 교수는 4월3일 다이너스티 승용차에 몸을 싣고 국정원으로 향했다. 차량은 국정원이 제공했고, 들른 곳은 대북 특수시설이 가득 찬 부속건물(9국)이었다. 이 건물에는 “미 중앙정보국(CIA) 정보도 가로챈다”고 할 정도의 최첨단 전자장비가 갖추어져 있으며, 다른 부서 직원은 근접도 못하는 곳이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이 집권 초기 국정원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을 외쳤다가 이 건물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부터는 국정원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한다. 국정원이 서 교수를 이곳으로 ‘모신’ 이유도 개혁의 예봉을 피해보자는 심리가 작용했을 법하다.

서동만 교수가 개혁 방안 진두 지휘

또 서 교수는 고영구 국정원장 내정자가 3월27일부터 서울 강남의 국정원 외곽사무실에서 업무보고를 받을 때 배석했고, 고 내정자의 국회 청문회 준비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외부인사로는 김덕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가 더 있는데, 김 교수는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낸 김인영 전 민정당 의원의 아들로, 인수위 시절부터 자문위원으로 서 교수와 호흡을 맞춰온 인물이다.

물론 서 교수에 대한 국정원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정식으로 부임받지도 않은 민간인에게 정보기관의 비밀사항을 공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잡음에 대비해 고 내정자는 업무보고를 받기 전 1, 2, 3차장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고, 서 교수도 “기밀이 누설될 경우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보안서약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 교수의 사상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왔으며, 심지어 “일본 유학시절 방북한 전력이 있다”는 설까지 유포됐다. 서 교수가 서울대 재학시절 학내시위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데다, 1995년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정 1945~1961’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을 놓고 나온 말들이다.

그러나 반발의 핵심은 국정원 개혁과 관련한 서 교수의 비타협성을 우려한 때문이다.

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인수위 통일외교안보팀의 윤영관·이종석·서주석 위원을 끌어들인 것도 서 교수로 알려졌다. 서 교수는 인수위 시절부터 국정원 개혁방향을 연구해왔으며,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청와대의 문재인 민정수석, 박범계 민정2비서관과 함께 마스터플랜을 짜왔다. 서 교수는 이 플랜을 3월22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최종보고하고 재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 교수는 자신의 청사진을 현실에 접목하기 위해 국정원 각 부서의 중요인물 11명으로 ‘조직운영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운영하는 한편, 국정원에 들어가 개혁을 집행할 소규모의 ‘외인부대’를 모집하고 있다.

서 교수가 맡을 기조실장이란 자리는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서 “원장은 짧고 기조실장은 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실세 자리다. 5·6공과 문민정부를 통틀어 11명의 부장이 거쳐갔지만, 기조실장은 윤옥영·엄삼탁·김기섭 3명뿐이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초기에는 이강래·문희상 등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앉았다. 기조실장이 인사와 예산, 조직을 모두 틀어쥐고 있어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공정책실 기능·역할 놓고 고심 거듭

하지만 ‘서동만 기조실장’에게는 돈과 자리를 챙기는 임무보다는 국정원에 ‘칼’을 대야 하는 악역이 맡겨져 있다.

고영구 내정자와 서 교수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정치사찰’ 논란을 일으켜온 대공정책실의 기능과 역할에 모아졌다. 고 내정자는 3월27일 첫 업무보고 때 1, 2, 3차장과 기조실장을 모두 제쳐놓고 대공정책실장을 먼저 찾아, 이날 하루를 대공정책실장과 밀도 있는 문답을 나누는 데 보냈다.

대공정책실은 국내정보를 담당해온 2차장 산하부서 가운데도 노른자위 부서로, 국정원에서 가장 우수하고 훈련된 인력들을 배치하는 것으로 평판이 나 있다. 여기에는 정치·경제·사회·기관·지역·신문·방송·안보과 등으로 세분돼 있으며, 정당·국회(정치과), 금융기관과 대기업(경제과), 종교·시민·노동 단체와 학원(사회과), 정부부처(기관과), 지방자치단체(지역과), 군(안보과) 등이 국정 전반을 망라하며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왔다. 직접 기관과 단체를 출입하며 정보를 얻는 대공정책실 소속 정보요원들의 수는 300명 정도지만, 이들이 생산해내는 정보보고서가 국정원 전체 정보에서 ‘화룡점정’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치과의 경우 여의도 정가에만 50명가량이 나오고 있으며, 이들은 1999년 국회 529호 문건공개 파문으로 한때 공개적 활동을 중단했으나, 결국 여의도 분소만 폐쇄했을 뿐 기능이 그대로 유지돼올 정도로 중요성을 인정받는 곳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대면 접촉을 통해 생산하는 정보의 양은 5%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95%는 공개된 자료와 장비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 5% 때문에 나머지 95% 정보의 가치가 살아나기도 하고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며 중요도를 강조했다.

하지만 청와대쪽 분위기는 다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우리도 정보요원들의 출입 문제에 대해 다면평가를 해봤다. 기존 타성에 젖어 있는 국정원 간부들은 출입을 금지할 경우 정보기능이 마비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젊고 유능한 사람들은 ‘막혀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요원들이 그동안 존안자료를 만든다는 점을 이용해 너무 쉽게 정보를 획득해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오해를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공개적으로 기관과 단체를 드나드는 행위는 금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정보를 얻기 위해 개인적 인맥과 기량을 발휘해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까지 금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정보요원의 기본 역량의 문제”라고 말해 정보수집의 우회로는 열어두었다.

외부 접촉 허용… 해외 정보력 취약

국내정보 업무와 해외정보 업무를 별도의 기관이 담당하도록 하는 문제는 노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청와대와 고 내정자쪽에 한때 부담으로 작용했다.

노 대통령은 후보시절인 지난해 11월30일 부산지역 유세에서 “중앙정보부가 말썽이다. 안기부로 바꿔도 말썽이고 국정원으로 바꿔도 말썽이다. 대통령이 되면 국정원은 국내사찰 업무를 일체 중지시키고, 해외정보만을 수집·분석해 국익을 위해 일하는 해외정보처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나라당의 도청 의혹공세를 정면 돌파하려는 정치적 판단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그래도 ‘공약사항’인 만큼 한때 진지하게 검토됐다. 미국의 경우 국내정보 업무는 연방수사국(FBI)가, 해외정보 업무는 CIA가 각각 담당하고 있으며, 영국은 내무성 산하 국내정보국(MI5)과 외무성 산하 대외정보국(MI6)으로 분리돼 있고, 이스라엘도 모사드(해외)와 신베스(국내)로 나누어져 있어, 해외사례가 집중적으로 연구됐다.

이에 국정원쪽에서는 지난 9·11테러 이후 각국이 미국의 정보 실패를 교훈삼아 국가 차원에서 정보기관 간 통합·조정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득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미국 CIA와 FBI 사이에서도 서로 직원을 파견하고 공동 브리핑 등을 통해 공조체제를 강화한다는 점이 부각됐다.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우리가 해외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나라는 동티모르 하나밖에 없을 정도다. 지금보다 100배의 예산을 쏟아부어도 미국 CIA의 100분의 1이나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CIA 한국 거점 책임자는 우리나라 국회의장이나 장관들을 언제든지 만나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우리 같은 약소국은 대사관 쓰레기통을 뒤지는 수준이다. 해외정보만 수집한다는 것은 정보기능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개혁안은 현행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국내정보 업무를 축소하고 해외정보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국내정보 업무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 2차장 산하에 함께 묶여 있는 정보수집 기능과 분석 기능을 분리해 분석 기능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넘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과거 안기부와 중앙정보부 시절 수사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숱한 사건조작과 인권침해를 저질러왔다는 것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혀졌다며 국정원의 수사권 박탈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개혁안에서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 이후 고문 등 인권시비가 거의 발생하지 않은데다 대공수사는 첨단 과학수사장비와 정예화된 수사요원, 국내외를 연결한 첩보망이 필요한 전문수사영역이라는 판단이 우선했기 때문이다. 대신 검찰·법원 등을 통한 ‘사법적 통제’를 강화해나간다는 것이 개혁안 내용이다.

국회 정보위의 예산 통제권 강화

장막에 싸여 있는 국정원 예산도 개혁의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국정원 예산은 크게 국정원 본예산, 기획예산처의 예비비에 숨겨진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활동경비’, 각 부처 예산 가운데 ‘특수활동비로 분류된 정보예산의 상당부분’의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예비비에 숨겨진 활동비는 예비비라는 특성 때문에 예산심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각 부처의 특수활동비도 그 근거가 제대로 제시되지 않아 관련부처 상임위에서 실효성 있게 심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개혁안은 국회 정보위의 예산 통제권을 강화하고, 그 대신 정보위 소속 의원의 국가기밀 유출을 엄격히 제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정원의 가장 큰 변화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위상과 기능이 크게 강화되면서, 사실상 국정원이 그 산하에 들어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부는 3월18일 국무회의에서 NSC 사무처를 확대개편하면서 NSC를 새 정부의 외교·안보와 재난관리의 명실상부한 사령탑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의 대북·해외 정보도 일단 NSC를 거쳐 노 대통령에게 보고된다. 또 NSC에는 이종석 사무차장과 서주석 전략기획실장이 포진하고 있어, 서 교수와 함께 인수위 시절의 통일외교안보팀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게 됐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신설된 정보관리실로, 지금까지 국정원·통일부·외교부·국방부 등의 정보가 서로 공유되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보고, 정보관리실이 각 부처 정보를 모아 관리하고 종합판단까지 내린 뒤 대통령에게 보고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정원장의 대통령에 대한 ‘직보’ 체제는 없어진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동안 대통령이 국정원과 직거래하면서 생기는 각종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중간에 완충지대를 만든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 안에서도 1, 2차장 산하부서 간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정책정보실’이라는 것을 만들어 운영해보았으나 결국 실패했다. 강력한 중앙통제가 없는 한 서로 다른 조직 간의 정보공유는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러한 기본 개편방안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장치를 도입했다는 의미가 있으나 외부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킬 정도는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최후의 통치수단을 놓칠 수 없는 고민

노무현 정부가 이렇듯 ‘온건한’ 처방을 들고나온 데는 국정원이 조직방어를 위해 전력투구한 측면과 함께 역대 최약체 정부라는 평가가 나오는 노무현 정부의 위기감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건 국정원장은 최근 대선 이후 처음으로 노 대통령을 독대하면서 두툼한 서류를 꺼내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류의 제목은 ‘향후 5개년 국정운영 계획’으로 국정원이 조직의 운명을 걸고 총역량을 투입해 준비한 역작이다. 노 대통령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국정원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집권 초부터 검찰과는 인사문제로 긴장관계에 들어갔고, 경찰은 지방경찰로 분권화되면서 힘이 약화될 예정이다. 국정원마저 아주 끈을 놓아버리면 최소한의 통치수단마저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해 통치권 차원에서의 고민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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