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김영삼 주연, 김병관 우정출연…

등록 2000-10-18 00:00 수정 2020-05-03 04:21

‘13일의 금요일 특집 코미디’ 고려대 앞 YS 문전박대 촌극의 전말

‘고려대, YS 문전박대’ 촌극이 벌어진 지난 10월13일 밤 11께 고려대 정문 앞. 쌀쌀한 가을 밤이 깊어가면서 남아 있던 시위학생들이 오히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우리 좀 집으로 보내달라”고 외치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관련자료: YS 16일 기자간담회 전문)

오랜 대치에 지친 학생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11시40분께 남은 학생은 10여명뿐. 이때 고려대 김정배 총장이 세 번째로 나타났다. 김 총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곧 모시러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학교 안으로 되돌아갔다. 어느덧 김 전 대통령의 ‘검은 금요일’도 가고 날짜가 바뀌었다.

김대중과 김정일의 배후조종 합작품?

모시러 오겠다던 김 총장은 새벽 1시가 다 돼서야 나타났다. 그리고 학생들이 쇠사슬로 감아놓았던 정문이 활짝 열렸다. 김 전 대통령의 승용차도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의 방향은 학교가 아닌 상도동쪽이었다. 열린 정문을 뒤로 한 채,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승용차는 어둠 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YS가 고려대 앞에 나타난 지 14시간여 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예전에 곧잘 쓰던 말이 ‘대도무문’(大道無門)이었다. ‘큰 길에는 길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날의 사태는 ‘길은 있지만 들어갈 문은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YS는 이런 ‘대도무문 사태’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촌극이 빚어지기 사흘 전인 10일 고려대 총학생회는 YS의 고려대 방문 저지를 이미 결의했다. 물론 대학당국은 성만영 학생처장을 통해 강연이 어려울 것 같다며 YS의 대변인 노릇을 해온 박종웅 의원(한나라당)에게 연기를 요청했다. 고려대 관계자는 “그런 사태가 예상돼 학생처장이 박 의원에게 특강이 어려우니 연기하자고 했으나 김 전 대통령쪽이 이를 무시하고 고집스럽게 온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의원은 “당일 오전 10시께 사전점검차 학교에 찾아갔을 때 ‘잠깐 시위하다 그만두기로 학생들이 양해했다’는 학교당국의 얘기를 듣고 안심하고 왔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쪽의 말은 다르다. “우리가 흉내만 낸 뒤 시위를 정리하기로 했다는 말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전혀 터무니없는 말이다.”
이번 YS의 강연을 기획한 함성득 교수도 하루 전 총학생회로부터 YS 교내진입 저지방침을 통보받았지만 수업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신’을 갖고 강연을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학과 수강생 36명은 총학생회와 달리 “수업받을 권리를 왜 침해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특강을 듣겠다는 쪽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검은색 세단이 고대 정문 앞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50분께. 정문을 막아선 200여명의 학생시위는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YS는 정문 옆 지하보도 근처에 승용차를 세워둔 채 차 안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정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예정된 특강시간은 11시30분부터 12시40분까지. 40분 일찍 도착한 것은 특강 전에 김정배 총장실에서 차 한잔을 나누기로 약속이 돼 있어서였다.

비타협적인 YS, 분유통으로 생리 해결!

박 의원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때까지만 해도 차 안의 김 전 대통령은 박 의원의 ‘사전점검’을 믿고 ‘학생들이 저러다가 물러나겠지’하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배 총장이 정문 앞에 나타나지 않는 점에 비춰볼 때 대학당국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어느새 예정된 특강시간은 마냥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총학생회쪽로부터 제안이 나왔다. “우리는 정문만 막고 있으므로 후문이나 쪽문을 통해 들어가는 길은 터주겠다”는 타협안이었다. 함 교수가 김 전 대통령쪽에 이를 알렸다.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일그러진 표정을 감추지 못한 YS의 반응이 즉각 나왔다. “뒷문으로는 절대 안 들어간다. 떳떳하게 정문으로 들어가겠다.” 사실 이날 촌극의 핵심은 ‘정문이냐, 뒷문이냐’였고, 여기서부터 김 전 대통령의 질긴 ‘고집’이 시작됐다. 물론 ‘촌극 수준으로’ 일이 꼬인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날 YS가 끝까지 버틴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탄압받는 김영삼’의 모습을 전 국민들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까. 실제 그는 10월16일 상도동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13일 고대사태는 김정일과 김대중의 불순한 세력이 배후조종한 합작품”이라고 단언했다.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기미를 보이자 12시30분께 김정배 총장이 나섰고 성만영 학생처장과 이길수 부총학생회장이 협상에 들어갔지만 김 전 대통령이 ‘정문’만을 고집하는 바람에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23일간이나 단식을 했는데 이런 것 하나 못 버티겠느냐.”

이날 무려 14시간이나 계속된 대치상황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이 화장실에 간 것은 목격되지 않았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생리현상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하는 야릇한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다. 김 전 대통령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곁에 있던 박종웅 의원이 제지하는 것도 물리쳤다). “경호원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옷 속에 큰 분유통을 갖고 왔더라. 그거 좋데. 작은 것은 그렇게 해결했지.”

술냄새를 풍기며 등장한 김병관 회장

교문을 사이에 둔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2시40분께 고려대 재단이사장인 김병관 동아일보사 회장이 나타났다. 술을 마시고 온 듯 얼굴이 불콰했다.

김 전 대통령의 차 안에 들어가 면담을 하고 나온 김 이사장은 “이사장실에서 차나 한잔하자고 YS에게 말했다”며 “우선 학교 안으로 들어올 명분을 만들어주려고 제안한 것인데, 그래도 말이 안 통했다”고 혀를 찼다. 차에서 나온 김 이사장이 직접 나서면서 ‘또다른 촌극’이 시작됐다. 김 이사장이 시위학생들에게 다가가 “정문을 열라”고 호통을 쳤지만, 학생들은 “못 연다. 걸어서 들어가라”며 야유를 보냈다. 이에 김 이사장도 “나는 학교에 걸어서 들어가 본 적이 없다”며 큰소리로 맞받았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결국 김 이사장은 별 수 없이 정문에 딸린, 차가 드나드는 옆문을 통해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4시10분께, 김 이사장이 두 번째로 정문에 나타났다. 김 이사장은 “너희들이 이러면 동아일보로 모시겠다. 고려대학은 민족대학, 동아일보는 민족신문, 동아일보로 모신다”고 말한 뒤 김 전 대통령 차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잠시 뒤 차 밖으로 나온 김 이사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98년 10월22일 나에게 ‘하사’한 이라는 CD 가운데 이라는 곡을 김 전 대통령에게 들려줬다”고 말했다. 이 CD는 당시 조선아태평화위원회 김용순 위원장의 초청으로 김 이사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이사장은 이어 둘러싸인 기자들에게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은가…”라는 의 노래가사를 읽어주기도 했다.

그러던 김 이사장이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정연주 논설위원이 쓴 ‘한국신문의 조폭적 행태’라는 칼럼의 복사본이었다. 김 이사장은 이를 보여주며 “YS에게도 보여줬다. 동아일보는 DJ 신문이 아니다. 한겨레신문은 조폭들 보고 다 일어나라고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등 두서없이 말했다.

이때 김 이사장의 두 번째 촌극이 연출됐다. 느닷없이 농성학생들 틈에 섞이더니 학생들이 들고 있던 피켓을 빼앗아 들고 10여분간 학생들과 함께 앉아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왕 망신당하는 마당에 내일 톱으로 나련다. 나도 열두시까지 여기 있겠다.” 이렇게 버티던 김 이사장은 동아일보 관계자들의 설득으로 결국 되돌아갔다.

김 이사장은 이날 밤 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이 고려대 앞에 나타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오전 11시30분쯤 YS가 학교에 못 들어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오늘은 학교에 안 가려던 참이었기 때문에 경원대에서 예정된 점심을 그대로 먹었다. 그러나 학교 이사장인데 체면도 있고 해서 안 가볼 수 없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김 전 대통령의 상도동 집에 찾아가기도 하는 등 YS가 야당총재를 하던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도 이렇게 탄압받는데…”

김 이사장은 또 전화통화에서 “CD는 내 차 안에 두고 다니며 가끔 듣고 있던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에게 ‘김정일을 너무 욕하지 마라. 북에도 이런 좋은 노래가 있으니 한번 들어보시라’고 권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또 이어진다. “차 안에서 YS가 ‘동아일보도 요즘 김대중과 붙어가지고 뭐하는 것이냐’고 해서 때마침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있던 ‘정연주 칼럼’ 복사본을 보여줬다. 동아일보도 이렇게 탄압받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YS에게 따졌다.”

그러면 김 이사장의 이런 행동에 대한 YS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 김 전 대통령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가리키며) 너그 회장한테 술 좀 그만 묵고 다니래라. 대낮에 취해갖고 차 안에서 말도 많이 하고. 그래갖고 회사나 학교 운영 되겠나. 내 차 안에서도 들어와서 노래 듣자고 하던데, 생각해보라. 내가 그때 노래 듣게 됐나”고 얼굴을 붉혔다.

이날의 해프닝에 대해 고려대 관계자는 “이사장께서 어젯밤 폭음을 한데다 오늘 낮에도 약주를 한 것으로 안다”며 “약주도 해서 오늘 학교에 안 오려고 했는데 사태가 악화돼 어쩔 수 없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날이 어둑어둑 저물 무렵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소식이 전해졌다. 김 대통령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노벨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고 일축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도 “김 대통령은 노벨상 수상을 위해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와 경제적 지원을 했다. 북한은 남한에서 받은 각종 지원금으로 군비를 확장하고 있다. 오늘의 위기상황에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내 생애 남은 마지막 사명이다”라고 무용담처럼 말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투사’로서 이날 ‘차 안 농성’을 벌였다는 것이다.

아, 민주주의를 위해서?

정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김 전 대통령 못지않게 특강을 기다리던 수강생들도 밤 9시를 넘기면서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정문 앞 시위학생들도 이제 30여명만 남았다. 수강생들이 다 집으로 가버렸다는 소식을 들어서일까? 그동안 거부로 일관하던 김 전 대통령이 “한달 이내에 고려대에서 다시 강의할 수 있도록 확약해주지 않으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이번에는 먼저 제안하고 나섰다. “수강생들도 다 떠나고 없는데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습니까”라는 한 기자의 물음에 김 전 대통령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김 전 대통령이 14시간여의 ‘차 안 농성’을 푼 데 대해 박종웅 의원은 “이른 시일 안에 다시 강의날짜를 잡겠다고 학교쪽이 약속해서 돌아온 것”이라며 “날짜가 잡히는 대로 다시 고려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 전대통령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나중에 다시 (고대에) 가면 며칠 지낼지도 모른다. 옷도 좀 두둑이 입고 깡통도 좀 들고 가고…”라며 여전히 특유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