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5천만원으로 시작해 막강한 로비력으로 증시를 주무르다 사라진 송재빈 신화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쳐올 무렵 이벤트 사업을 하던 송재빈씨는 단돈 5천만원으로 거대한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에 뛰어든다. 체육진흥투표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리틀우즈(Littlewoods Organisation PLC.)사와 함께 50 대 50의 지분으로 자본금 1억원짜리 회사인 코리아풀스마케팅(KPM)을 설립한 것이다. 이 회사는 월드컵 경기장 건축 재원 마련에 고심하던 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를 상대로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을 제안한다. 그 내용은 “사업권을 주면 4천억원의 월드컵 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KPM은 월드컵조직위에 찾아가 설명회까지 열었다. 그러나 4천억원의 재원 마련을 보장하라는 조직위와의 입장 차이로 사업 추진은 중단된다.
놀라워라, 돈 끌어모으는 능력
이후 리틀우스가 철수하면서 송재빈씨는 혼자서 체육진흥투표권 사업 도입을 위한 집요한 노력을 계속한다. 바로 1998년 4월 서울 여의도 삼보컴퓨터 건물에 타이거풀스코리아(현재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를 설립하였다. 송씨는 이 과정에서 신일고 선배인 삼보컴퓨터 이홍순 사장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협력선 역시 이탈리아 스나이(SNAI S.p.A)로 바뀐다. 송씨는 이때부터 국회와 관련 정부부처 및 단체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로비에 나선다.
1998년 12월 체육진흥투표권 도입을 위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1999년 8월 법이 통과되면서 송씨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진다. 애초 1억원이던 회사 자본금은 99년 말 10억원으로 늘어난다.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을 내세워 외부 자금을 끌어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와 함께 삼보컴퓨터를 비롯해 조선무역·한미창투·제일창투 등의 회사에서 60억원이 넘는 돈을 조달한다. 이 가운데 45억원의 장기차입금은 2000년 모두 전환사채로 바뀌고 곧이어 주식으로 전환된다. 달랑 5천만원을 들고 사업에 뛰어든 송씨가 불과 1년여 만에 수십억원을 주무르는 재력가로 변신한 것이다. 송씨는 또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되기 전인 99년 5월 한국인터넷복권을 설립하는 등 사업을 확장해간다.
2000년 들어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이 가시화하면서 송씨는 자금을 끌어오는 데 더욱 놀라운 수완을 발휘한다. 4차례의 증자를 통해 10억원이던 자본금을 연말까지 477억원으로 늘린다. 이때는 물론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에 대한 기대가 한껏 고조되어 많은 투자자들이 몰리는 상황이었다. 송재빈씨는 이렇게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타이거풀스유통·타이거풀스텔레서비스·에이스팩기술투자·지니랩·코리아스포츠·스포츠코·커뮤니케이션윌 등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회사를 세우거나 출자한다. 2000년 말 현재 타이거풀스가 자금을 투자한 회사는 모두 19개에 달했다.
송재빈씨는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을 따기 위해 2000년 6월 타이거풀스코리아라는 회사 이름을 한국타이거풀스로 바꾼다. 그리고 같은해 10월 조흥은행·삼보컴퓨터 등과 함께 한국풀스컨소시엄을 결성한다. 이 컨소시엄은 12월 경쟁업체인 한국전자복권을 물리치고 사업자로 선정되며, 이후 한국풀스(주)라는 회사로 출범하게 된다. 한국풀스에 대한 송씨 쪽 지분은 55%였다. 한국풀스는 2001년 3월 회사 이름을 한국타이거풀스(주)로 변경하며, 송씨는 같은 이름의 자기 회사 한국타이거풀스를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TPI)로 바꾼다. 이때부터 타이거풀스는 증권시장에서 정체불명의 큰손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의 투자 회사는 2001년 말 현재 23개로 늘어난다.
코스닥 우회등록으로 엄청난 수익 챙겨
송재빈씨는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계열사의 코스닥 등록을 위해 별도의 작업을 진행한다. 99년 5월 설립한 인터넷 복권·투표권 판매업체 타이거풀스아이(옛 한국인터넷복권)를 체육투표권 발매시기에 맞춰 코스닥 등록업체인 한국아스텐엔지니어링에 합병시킨 것이다.
방법은 이렇다. 일단 자회사인 타이거풀스아이를 2001년 11월23일 한국아스텐에 흡수합병시켰다. 한국아스텐은 아스팔트 재생장치 수리업을 하고 있어 체육진흥투표권과 전혀 관계가 없는 회사였다. 송씨는 두 회사를 합병하면서 타이거풀스아이의 주식가치를 과다계상하는 방법으로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을 한국아스텐 최대주주(27.34%)로 만들었다. 당시 순자산가치가 919원(액면가 500원)에 지나지 않던 타이거풀스아이의 주식을 9577원의 가격으로 합병시킨 것이었다. 합병으로 1만6300원(합병 당시 평균주가)이던 한국아스텐 주가는 9천원대로 떨어지지만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은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을 시장에 9천원대에 매각할 수 있게 된다. 형식상 한국아스텐의 이름을 빌리는 전형적인 우회상장 수법이었다. 한국아스텐은 2002년 3월 회사 이름을 다시 ‘로토토’로 바꾼다.
TPI는 이후 로토토 보유지분을 지속적으로 처분해 합병 직후 27.34%이던 지분율이 15.75%까지 하락한다. TPI의 로토토 주식 매각단가는 5천∼9천원. 매각한 주식수 96만여주를 감안하면 60억원(매각단가 6천원일 경우) 안팎의 이익을 챙겼다는 계산이 나온다. TPI가 18.6%의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인 에이팩스기술투자도 82만주 지분을 모두 처분해 5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 순자산이 22억원에 지나지 않던 타이거풀스아이를 합병을 통한 우회등록이란 방법으로 코스닥 시장에 등록시켜 100억원 이상을 쓸어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은 사업 시작과 함께 예상외의 부진에 빠졌다. 한국타이거풀스는 2001년 10월부터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을 정식으로 시작했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예상과 달리 매출은 3개월 동안 목표치(200억원)의 14.2%(28억원5천만원)에 그쳤다. 올 들어서도 매출부진은 계속돼 5월 말까지 70억원 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빈약한 국내 프로축구의 저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사업권 획득 로비에만 매달린 결과인 셈이다. 경륜이 연간 3천억원의 시장을 형성하는 데 5년이 걸렸음을 감안한다면 5년 동안 2조8천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구상은 사실 애초부터 무리였다.
한국타이거풀스는 지난 4월 회사 이름을 ‘스포츠토토’로 바꾸고 변화 모색에 나섰다. 매출 부진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공단 쪽에 계약조건 완화를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고 송씨가 구속되면서 스포츠토토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공신력이 땅에 떨어진데다 스포츠토토의 장래에 불안을 느낀 거래업체들이 밀린 돈을 내달라고 요구하며 나선 것이다. 스포츠토토의 체육진흥투표권 시스템을 개발한 이탈리아 스나이는 최근 스포츠토토를 상대로 750만달러(94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붉은악마 홍보 대행사인 토피안도 약속한 지원금 3억5천만원을 달라는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다
유동성 위기가 닥치자 스포츠토토는 조흥은행·인성정보 등 대주주들이 참여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회사를 유지해가고 있다. 그러나 워낙 매출이 부진하고 적자폭이 커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외부에서 영입한 타이거풀스와 스포츠토토의 주요 간부들도 서둘러 회사를 그만두거나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린 셈이다. 출발부터 입법, 사업자 선정, 사업 시행에 이르기까지 5년에 걸쳐 갖가지 로비 의혹 속에서 진행돼온 체육진흥투표권 사업 역시 파국을 향해 치닫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을 감지해서인지 구속돼 있는 송씨는 지난 5월19일 자신이 보유한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과 스포츠토토 지분 및 경영권을 모두 포기한다는 의사를 비상대책위를 통해 간접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아직 그의 진의는 파악되지 않는다. 어찌됐든 그의 재기는 어려워보인다. 한때 막강한 로비력으로 정치권을 움직이고 증시를 주무르던 송재빈씨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원래의 자기 위치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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