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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의협-언론-보수정당’… 그들은 왜?

의사협회-보수정당-보수언론 ‘삼각동맹’ 탓에 코로나19 대책위 해체
등록 2020-03-14 13:56 수정 2020-05-03 04:29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왼쪽)이 3월3일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 사무실에서 열린 ‘우한 코로나19’ 대책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오른쪽)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왼쪽)이 3월3일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 사무실에서 열린 ‘우한 코로나19’ 대책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오른쪽)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할 뿐이다.”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조언해온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몸담았던 ㄱ교수는 3월11일 과의 통화에서 말했다. 대책위는 해산됐지만, 학술단체들이 상황을 지켜보며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부분에선 목소리를 낸다는 설명이다.
3월3일 돌연 대책위 해체 소식이 전해졌다. 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주장을 바탕으로 대책위를 ‘방역 비선’으로 왜곡한 직후였다. 해체 소식이 나올 당시 신천지 교인에게 광범위한 검사를 하면서 무더기 확진 판정이 나왔고, 정부가 마스크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빠르게 증가하는 확진자 수에 놀랐던 국민은 정부에 학술 자문을 하던 대책위가 해체된다는 소식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에 구멍이 뚫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부에선 대책위 해체를 놓고 “논의의 장이 더 넓은 범위로 확대된 것으로 큰 문제가 없다”며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대책위 해체와 별개로, 다양한 전문가들이 정부의 방역 대책과 관련해 꼭 필요한 조언은 해주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대책위에 몸담았던 관계자들은 ‘비선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언급을 꺼린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언급으로 오히려 코로나19 대응에 혼선을 빚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정당-보수언론-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의 동맹이 ‘선’을 넘어 정부의 방역을 방해하는 상황까지 이르는 과정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이 대책위 해체를 둘러싼 내막을 들여다본 이유다.

“중요한 시기마다 언론을 통해 정부와 유사한 주장을 편 전문가들이 있다.”(최대집 의협 회장)

는 3월3일치 20면 기사(의료계 “진보진영 ‘김용익 사단’ 이진석 실장이 코로나 실세”)에서 청와대와 정부에 코로나19 대책을 놓고 조언하는 전문가들에 대해 ‘방역 비선’ 의혹을 제기했다. 최대집 회장 인터뷰 형식을 취한 이 기사는, 코로나19 대책과 관련해 강한 영향력을 갖는 인물로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목했다. 아울러 이 실장의 고려대 의대 동문인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와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등이 ‘막후’에서 조언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기사가 배포된 직후 해체됐고, 시민사회는 언론 보도가 대책위 해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의협은 ‘비선 보도’ 전부터 대책위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의협은 2월24일 코로나19 사태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문을 발표했다. “(대책위가) 방역을 인권의 관점에서 해야 한다며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제한이 필요 없다고 말하고, 무증상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함으로써 엄청난 피해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대책위) 이들이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대표인 양 정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자문그룹이 인정해야 하고 전격적인 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수정당은 “최순실과 같다” 낙인찍기

이튿날인 2월25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의협 주장에 힘을 보탰다. 안 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의협 대정부 입장 가운데 비선 전문가 자문그룹에 대한 교체 이야기가 있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난 정부 최순실의 존재와 다를 바가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안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야당도 ‘코로나19 비선 의혹’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선’(秘線)이란 표현은 ‘몰래 관계 맺은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의미한다. 대책위 활동은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하던 2월 초에 시작했다. 11개 학술단체(대한감염학회, 대한감염관리간호사회,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대한소아감염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응급의학회,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대한임상미생물학회, 대한중환자의학회, 대한항균요법학회, 한국역학회), 73명의 전문가가 공개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대책위의 조언 내용 역시 언론 보도로 공개됐다. 조금만 내막을 안다면 애초 ‘비선 조직’이라는 억지 주장이 성립할 수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더구나 대책위에 포함된 11개 학회가 모두 의협의 산하조직인 ‘대한의학회’에 소속된 학술단체다. 대책위원들은 ‘의협’ 소속인 것이다. 한국의 의료법은 모든 의료인이 의협에 가입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최 회장이 자신이 대표로 있는 협회 소속 회원과 산하 조직 소속 학술단체를 저격한 셈이다.

의협 쪽은 최 회장의 발언과 안 대표의 언급 뒤 대책위 소속 회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의협과 다른 목소리를 내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전달했다. 공문을 받은 대책위는 며칠 자문 활동을 하지 못하고 활동 지속 여부를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협의 견제에도 ‘대책위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과 ‘자문 활동을 계속하기 쉽지 않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대책위 해체라는 참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참에 의학회가 의협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해체된 대책위에 참가했던 ㄴ교수는 “학회 소속 의사들이 의협에 회비를 내고, 회비 일부가 의학회에 전달된다는 이유로 의협이 마치 모든 학회를 산하단체로 여기고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협이 지금처럼 이익단체로서 정체성이 강하면 학회는 선을 긋고 나가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책위에 참가했던 ㄷ교수는 과의 인터뷰에서 “최대집 회장의 의견 때문이라기보다 학회들의 상위 조직인 대한의학회가 소통 창구 단일화를 요구한 것을 외면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가 3월12일 오후 텅 비어 있다. 이날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운항은 0건이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가 3월12일 오후 텅 비어 있다. 이날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운항은 0건이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보수언론도 ‘비선 자문’ 프레임 씌워

그사이 최 회장은 인터뷰 기사로 ‘결정타’를 날렸다. 방역 대책은 과학적인 근거를 놓고 전문가들이 토론해 합의점을 찾아야 하지만, 의협은 정치력으로 상대방을 ‘제거’하는 방식을 택했다.

보도를 접한 이재갑 교수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대책위에서 물러났다. 그는 페이스북에 “전문가의 의견이 비선 자문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비하되다니. 죄송하다. 이제 물러나겠다”고 짧게 썼다. 하지만 이 교수는 코로나19 대책을 수립하는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공식 자문단’으로 방역 대책 수립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할 때는 대한감염학회가 주축이 돼 자문 활동을 했고, 다양한 학술단체가 독립적으로 활동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선 좀더 다양한 학술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논의하고, 정부에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취지로 ‘범학계 대책위’를 꾸렸다.

하지만 ‘중국 입국 차단’을 놓고 의협과 대책위가 맞서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최 회장은 1월26일부터 일곱 차례 ‘중국발 입국 금지’와 관련한 행정조치를 촉구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제1302호 ‘중국인은 모기, 방역망은 창문일까’ 참조).

대책위는 최 회장의 발표와 반대로 입국 금지 확대가 실효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의협 집행부는 대책위 소속 학회가 정부 입장에 동조한 것으로 판단하고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대책위에 참가했던 ㄷ교수는 “지역사회 감염이 일어나는 중에 입국 차단은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만약 정부가 ‘중국 입국 차단’을 하겠다고 했더라도 반대했을 것이다. 정부 편을 든 것이 아니라 의협의 주장이 정치적 공격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동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정부 입장에 일방적으로 동조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메르스 때도 감염병 전문가로 활동했는데…

의협의 막무가내식 정치 공세에 힘을 실어준 건 보수언론이었다. 보도가 마침표를 찍은 셈인데 해당 보도는 어색한 부분이 많다. 특히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이진석 실장이 공공의료 확대를 주장했다며 ‘의료 사회주의자’로 몰아간 것은 자가당착이다. 스스로 “2018년 12월 기준 국내 공공보건 의료기관의 비율은 5.8%(224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1.8%에 가장 못 미친다”며 공공의료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2020년 2월29일치 4면 ‘대구 확진자 1579명인데, 국고 투입 음압병상 10개뿐’ 참조).

이진석 실장이 고려대 의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재갑 교수와 엄중식 교수를 한데 묶은 건 더욱 억지스러웠다. 두 교수는 2015년 메르스 때도 ‘민관 종합대응 티에프(TF)’로 활동했다. 엄 교수는 공로를 인정받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메르스 대응 유공 정부포상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의협이 지난 1월 구성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비상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았다. 정권과 상관없이 감염병 사태 조기 종식을 위해 노력한 감염병 방역 분야 전문가들인 것이다.

국내 최고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됐던 대책위가 해체되자, 시민사회와 보건의료계 안팎에선 탄식이 나왔다. 의협이 코로나19라는 국가 재난 위기 상황에서 방역 대책 수립에 중요한 단체 소속 전문가들을 ‘비선 자문’으로 낙인찍은 것은 ‘자해’라는 지적도 있었다.

최원호 마산의료원 외과과장은 3월5일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 ‘의사협회 집행부의 아집이 선을 넘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강하게 규탄했다. 최 과장은 “멀쩡한 전문의들을 빨갱이로 몰아 전문성을 발휘할 국가 자문위에서까지 배제시키는 것을 보며 참을 수가 없었다. 의협 집행부는 모든 의사 회원들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있으니 모든 발언과 협회 업무를 중단하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 의사로서 본분에 충실하라”고 촉구했다.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를 ‘방역 비선’으로 지적한 <중앙일보> 기사. <중앙일보> 갈무리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를 ‘방역 비선’으로 지적한 <중앙일보> 기사. <중앙일보> 갈무리

의사 4만2721명 중 6400여 표로 당선된 최대집 회장

이런 논란의 와중에 방상혁 의협 상근부회장은 3월10일 미래한국당 4·15 총선 비례대표 후보자에 공모했다. 의협의 정치적 편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론 특정 정당의 총선 비례대표 후보자에 공모한 것만을 놓고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16년에는 의협 강청희 상근부회장이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지원했다. 중요한 건,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전문가 단체 집행부가 과학적 사실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정치력을 동원한다는 점이다. 의료계 일부에선 특정 정당과 언론에 ‘악용’당한다고도 여긴다.

의협의 일탈행동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특히 코로나19처럼 촌각을 다투는 비상상황에선 그 피해가 막대하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는 3월10일 성명을 내 “최대집 회장의 반민주적 언행에 분노하는 많은 의사, 보건의료인, 시민과 함께 비판한다. 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비과학적 혐오 선동을 멈추고 최소한의 사회적 역할을 하라”고 했다. 우석균 인의협 공동대표는 과의 통화에서 “전문의들의 방역 대책 관련 자문 활동을 방해하는 것을 보면서 의협이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과학적 근거 없는 (중국) 혐오와 선동으로 보건의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서 시민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성명을 냈다”고 강조했다.

“적극적으로 회비를 납부해 투표권을 행사해달라. 회원 중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권자는 4만2721명뿐이며, 그중 고작 6400여 표를 받아 회장이 당선되는 실정이다. 우리의 전문성과 직업적 자긍심을 대변할 정상적인 집행부를 꾸리는 데 모두 함께 나서달라.”

최원호 과장은 청와대 청원글에서 의협 내에서 대표성이 약한 집행부를 지적했다. 일반 시민들은 의협이 전체 의사의 의견을 취합하고 학문적 근거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으로 믿기 쉽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회원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투표로 지도부가 뽑힌다. 특정 정치 성향에 갇혀 여론의 조롱을 받는 의협에 대다수 의사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정치 의사’ 협회인가, 의사 협회인가

최 회장은 3월3일 보도가 나가고 대책위 해체가 결정된 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13만 의사들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는 미래통합당의 관심과 노력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공식 석상에서 발언할 때마다 “13만 의사들을 대표하는 의협”을 강조하지만, 상당수 의사는 의협과 최 회장의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2018 회계연도 의협 회비 납부율은 전체 회원의 46.4%로, 전체 회원의 절반 이상이 회비를 내지 않았다.

정형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에 “의협에 회비를 내는 회원들 상당수가 개인병원을 운영 중이거나 민간의료기관에서 일해, 한국의 의협은 특정 정치 성향에 갇혀 있는 모양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특징이다”라고 설명했다.

은 대책위 해체와 관련한 최대집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수차례 연락했지만, 최 회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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