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가 왔다. 훅 들어왔다. SF 소설 중 베스트셀러가 등장하는가 하면 장르문학 가이드가 여러 권 출판됐고, SF 작가의 책들이 재발행됐다. SF 잡지가 새로 발행되고 SF 전문 출판사들이 생겨났다. 각각이 일어난 건 처음은 아니지만 한꺼번에 일어나는 건 처음이었다.
지난해 의 출판 키워드는 ‘SF, 노동, 퀴어’였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2019년 출판의 중요 경향으로 ‘주류가 된 장르’를 꼽았다. SF와 관련한 놀라운 뉴스에 김초엽 작가는 빠지지 않는다. 김 작가의 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SF 소설이 소설가 50명이 뽑은 ‘올해의 소설’ 2위에 꼽히기도 했다. 김보영 작가는 미국 하퍼콜린스출판사와 (가제) 출판계약을 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평론가이자 SF 소설가인 듀나는 정소연 작가를 이어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회장을 맡았다. 세 작가는 ‘SF 붐’ 속에 어느 때보다 많은 인터뷰를 했다. 은 1월18일 설 연휴 전 이들을 한꺼번에 만났다. 대면 인터뷰는 하지 않는 듀나 작가와 두 달간 타이 치앙마이에 있는 김초엽 작가, 그리고 강원도 평창에서 생활하는 김보영 작가를 한꺼번에 만나는 유일한 방법은 메신저였다. 그 유일한 방법은 최상의 수였다.
한국어 SF의 그/그녀김보영 작가님, SF가 영어로 번역돼 세계 독자를 만나는 건 한국어 SF로서는 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진행 상황은 어떤가요.김보영 번역이 전부 완료된 상태입니다. 하퍼콜린스 편집부에서 방대한 코멘트를 보내왔어요. 대부분 반복되는 부분의 생략과, 설명이 미비한 부분에 대한 추가 설명 요구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소설이라 생략은 일부 받아들였지만 추가는 도무지 못하겠더군요. 재미있는 일화를 말하면, 대산문화재단에서 를 번역지원사업에 선정하면서 ‘번역에 일부 오류가 있다’는 평을 내놓아서 번역자 류승경씨가 문의했거든요. 그런데 많은 지적이 ‘he/she’ 대신 ‘they’를 썼다는 것이었대요(영어 사용자가 3인칭 단수로 they를 쓰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하퍼에서는 이 문제를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언어의 차이를 알 수 있는 동시에, 타국 언어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도 알 수 있었어요.
듀나 they는 저도 한 번 부딪힌 적 있어요. 제 경우는 she로 통일했습니다만. 한국어 SF는 자주 이 문제와 마주칠 거 같습니다.
김보영 번역자이신 (영국 국적의) 소피 보우만을 처음 만났을 때 들은 첫 질문이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냐”는 거였어요. 당황했어요. 주인공을 빼면 대부분 설정하지 않았거든요. 샘플 번역을 할 무렵이었는데, 정작 영어 사용자인 보우만은 대명사를 They로 하려 했는데 교포 편집자가 남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는 거예요. 제가 몇 명은 정했지만 나머지는 알아서 하시라고 했어요. 그것도 이미 몇 년 전 일이고, They는 점점 더 많이 쓰이는 추세인가봐요.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집이 많이 팔린 것이 SF 붐의 한 현상으로 단골로 거론됩니다.
김초엽 장르 독자보다는 오히려 기존 한국문학 독자에게 더 많이 읽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리뷰의 대부분이 SF를 소설로는 처음 접한다거나, 테드 창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정도만 읽어봤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장르 독자가 아닌 분들이 대부분 SF에 어떤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점, 그러니까 SF의 대중적 이미지인 과학기술 중심의, 인간 내면보다는 사건과 아이디어에 중점을 두는 장르인 줄 알았다는 말을 많이 덧붙였던 것 같고요. 보통 강연 다니면서 제가 영향받은 SF 작가들, 주로 여성작가들의 작품은 제 글과 결이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소개해드리는 편이에요. SF에서 아주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갈래 중 하나라는 것. 장르 독자들은 물론 SF에 이런 글도 있는 줄 몰랐다 하는 말은 안 하시죠. 한국에서 주요하게 소개된 SF 작품들, 주로 고전에 가까운 황금기 시대의 남성작가들 작품이 다소 그런 대중적 이미지를 불러왔지 않나 생각해요.
듀나 최근 집중적으로 번역된 책들은 많이 다르지 않나요? 요새는 아이작 아시모프보다는 어슐러 르귄에 친숙한 독자가 더 많은 거 같습니다.
김보영 그러게요. 빅3 위주 번역은 20~30년 전 이야기인데. 르귄은 인간미로 가득한데요!
김초엽 SF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이 SF를 추천해달라고 할 때 아직도 아시모프 이야기를 하는 분이 많기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작가를 하기 전까지 과학자를 많이 뵈어서 그럴 수도 있고요.
김보영 아무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읽는 책을 SF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남성작가라고 해도 조제 사라마구나 커트 보니것의 책도 인간적인데 SF로 생각해서 보지 않잖아요. 이제야 겨우 커트 보니것 단편집을 ‘커트 보니것 SF의 시작’이라는 문구를 붙여서 나오더군요! 책에 SF를 붙여도 되는 시기가 됐으려니 해요.
에도 SF라고 쓰지는 않았습니다.
김초엽 SF라고 하면 일단 안 읽는 독자가 많다, 리뷰에서 많이 본 말이에요. SF라고 해서 호평이 많은데도 읽을 생각이 없었다고…. 그런 리뷰를 계속 보니, 마케팅 측면에서 일부러 장르를 지우는 선택을 해왔구나 싶더라고요. 다행히도 몇 년간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문단작가의 SF 소설도 SF라고 표기해 나오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그냥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빌린(?) 정도로 표현했을 소설들도요(오랫동안 SF는 ‘공상’과학소설로 번역되었다).
듀나 가즈오 이시구로(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는 순문학으로 읽히지만,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들은 전통적인 장르 SF이지요.
김보영 20년간 가장 많이 팔린 베르나르 베르베르 책도 SF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지요.
듀나 얼마 전 에 대한 글에서 ‘공상적’ 소설이라는 표현을 봤어요.
김보영 조남주 작가의 도 SF를 표방하고 있지 않지요. 한국SF어워드 후보에 막판에 넣을 수 있었는데, 후보를 추릴 때 어려운 점입니다.
을 쓴 조남주 작가가 최근 펴낸 은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최근에는 이른바 ‘문단작가’라고 부르던 작가들의 SF 작품 활동도 활발하다. 올해 초 나온 정세랑 작가의 는 SF만 모은 작품집이다. 그의 초기 성향을 알 수 있는 SF 은 재발행됐다. 윤이형 작가의 는 SF와 판타지를 넘나드는 작품이다.
SF를 SF라고 부르지 못하고 호적에서 지우는 홍길동 신세인 것은 ‘장르’(라고 부르는 순문학이 아닌 문학) 전체의 일이었다. 김보영 작가는 (제461호)에서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작가는 SF 작가(베르나르 베르베르, 조앤 롤링)지만, 출판계에선 장르소설(이우혁의 , 남희성의 , 정은궐의 등)은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빼는 등 왜곡되고 무시된 기록을 써왔다고 말한다. “순문학이 고상함을 독점해왔다”는 것. 2019년 가을호 ‘SF 비평의 서막’에서 데뷔 10년차가 된 문지혁 작가는 이렇게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쪽에서는 단편 몇 편만 써도 자신의 작품세계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이쪽에서는 책 몇 권을 내도 제대로 된 비평, 리뷰 하나 받기가 어렵다.” 이제 SF가 자기 이름을 드러내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김초엽 과학소설 무크지 에 실은 ‘인지 공간’이 상(젊은작가상 우수상)을 받았어요. 동등한 지면으로 존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했어요. 제가 문단 지면(?) 활동도 하는데, SF 잡지에 실은 글이어서 더 기분이 좋더라고요.
김보영 최근에 낸 책이 SF 논픽션인데, 공동저자로 청소년 논픽션과 성인 논픽션 둘을 냈어요. 둘 다 내가 지금까지 낸 책 중에서 제일 잘나가고 있기는 해요.
듀나 마지막에 낸 장편()은 제 책 기준으로는 꽤 팔렸는데, 아마 대부분 독자는 청소년 판타지로 분류할 거예요.
김보영 청소년이 장르 선호도가 확실히 높지요. SF어워드가 지금은 아동 출판을 심사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데, 포함하면 막대한 분량을 감당해야 할 거예요. 영상 부문에서도 “SF가 점점 더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습니다” 정도로 표현하지만 아동 영상을 돌아보면 완전히 달라요. 이 17기던가요? 극장판이 네 편이고요.
“SF도 문학입니까”라는 질문들SF가 활발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보영 2016~2017년에는, 첫째(1) 알파고로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촉발했고, 둘째(2) 페미니즘과 여성계에서 지금 현재가 아닌 문학, 진보적인 문학으로서 SF에 대한 관심을 크게 보여주었고, 셋째 해외 교류가 시작되면서 한국 SF가 해외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넷째 평화적인 정권 교체로 미래지향적인 분위기가 도움이 되었다고 봅니다. SF가 인기를 얻으려면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거든요. 실은 1이 시작이었지만 2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다섯째, 여러 SF 상들, SF 출판사들, 단편장르 중심의 ‘브릿G’ 플랫폼, 안전가옥 등이 자리잡으면서 좋은 SF 작가들을 동시에 배출했죠. 여기까지 오면 이제 상호 선순환이 되어서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게 되지요. 그리고 김초엽 작가가 한 축이라고 생각해요. 오래전부터 SF가 잘되려면 뭐가 필요하느냐의 단순한 답이 스타 작가의 탄생이었지요.
김초엽 작품 자체는 제가 활동하기 전부터 계속 좋았던 것 같아요. 원래 좋았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작가들의 작품이 여러 이유로 이제 주목받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부라도 기여했다면 기쁩니다.
김보영 작가는 출판시장과 부딪히면서 어려웠던 점을 구구절절 피력하기도 했는데 그런 시대를 거쳐서 지금에 이른 것 같습니다.
김보영 저라는 사람이 아주 어려운 환경에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내가 거절당할 정도면” 거의 아무도 SF 책을 낼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렇지만 듀나님은 “SF도 문학입니까” 하는 질문에 답하고 사셨어요.
듀나 여전히 그것처럼 무의미한 질문은 없는 거 같아요.
종이가 아니라 인터넷으로 작품을 공유하고 창작하는 21세기적 플랫폼이 만들어진 것도 큰 영향일 것 같은데요, 1990년대 데뷔한 듀나님도 인터넷을 통해 창작이라는 세계로 들어갔지요.
듀나 ‘문단’의 게이트키퍼가 없는 세계가 탄생했죠. 물론 그 세계는 전에도 있었지만 인터넷으로 거대한 새 영토를 찾았지요. 수많은 팬픽도 있지요.
김초엽 저도 엄청 어릴 때부터 장르소설을 읽고 자랐어요. 인터넷에 연재되는 글도 많이 읽었어요. 제 또래 분(1993년생)들은 귀여니 같은 인터넷소설도 많이 익숙할 거고요.
김보영 저는 사실 PC통신 시절을 넘어가버렸기 때문에 인터넷 지면은 이제야 가까이 접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퍼블리싱되느냐에 따라 글 쓰는 게 달라지나요.
듀나 제 경우, 의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연재물일 경우 그 리듬에 따르게 되더라고요. 이건 대부분 연재물이 그럴 거예요. 웹소설만의 특징 같은 건 아니죠.
김초엽 저는 크게 달라지지는 않고, 약간은 조절해요. 웹으로 공개되는 글은 좀더 재밌게, 가볍게 읽을 수 있게 써야겠다 생각하고, 문예지나 책으로 묶여 나오는 글은 독자가 천천히 읽지 않을까 기대하며 쓰긴 해요.
김보영 저는 인터넷 지면과 출판책 사이에는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게임시나리오/웹소설은 완전히 달라요. 그냥 완전히 다릅니다. 이건 인지공학적인 문제인데 화면이 작아요. 게임시나리오도 텍스트창이 작죠. 플레이 화면을 가리면 안 되니까. 더해서 짧게 끊어서 아주 긴 시간에 걸쳐서 봐요. 그러면 독자의 기억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생겨나는 특징들이 있지요.
어느 평론가가 SF문학을 이야기하면서 ‘문단의 게으름’을 언급했는데요, SF가 문단의 평가를 받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문단의 게으름에 대해서는 불평할 수 있을까요.
김초엽 최근 SF 평론 특집이나 비평가들의 SF 평론을 읽어보면, 당시와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고 오히려 그런 시혜적인 태도가 올드하다(낡았다)는 합의가 있는 것 같아요. 문단에서 예전에 활동하신 분들은 좀 다르겠죠. 세대 차이도 있고.
듀나 그동안 덜 나이브(순진한)하지 않았을까요. 소설만 따진다면 모를까. SF는 이미 자연스러운 문화 환경의 일부인데 여기에 무지하기 어렵죠. 영화 를 천만이 보았는데.
김초엽 문단이라고 해도 젊은 작가들이나 비평가들은 대중문화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드물 테니까요. 대중문화를 접하는 이상 SF를 안 접하기는 힘들고요. 최근 문예지에서도 SF를 계속 비평으로 다루고 개별 작품도 리뷰하고 있죠. 과거에 비해 관점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듀나 글쎄, 전 문단의 반응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케이팝 노래를 분석하는 클래식 음악가들이 떠올라요. 그 사람들은 농담으로 하는 거지만 이게 우선순위 1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장르 전문가 또는 장르 독자의 반응이고 비전문가는 그다음이죠.
김초엽 (이런 문제는) 작가나 독자 당사자보다는 언론이 가장 궁금해하는 토픽(이야깃거리)인 것 같아요.
김보영 심리학 원칙 중 하나가 “자신이 속한 진영은 복잡하고 다양한 개인들이 개별적이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있고, 하나로 뭉뚱그려질 특징이 없다고 생각하며, 타인이 속한 진영은 단순하고,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입니다. 편견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라 이걸 막을 방법이 없는데, 장르 집단을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그 집단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걸, 모른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단순해 보이는 쪽이 내가 모르는 쪽이고, 다양하고 복잡해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내가 잘 아는 쪽이라고.
중년 남자가 보편일까마지막 주제는 SF와 페미니즘이다. 김초엽 작가의 ‘나의 우주 영웅에 대하여’는 우주인이 된 이모를 존경하는 여성 우주인 이야기이고, ‘관내분실’은 어머니의 기억을 찾아가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할머니 우주인이 우주정거장을 지키고 있다. 듀나의 소설은 모두 여자 주인공이다. 김보영 작가의 ‘얼마나 닮았는가’는 구조신호를 받고 떠난 우주선에서 인간의 몸으로 깨어난 인공지능 이야기인데 충격적인 반전으로 ‘SF 페미니즘’에서 단골로 언급된다.
김초엽 제가 페미니즘 소설을 써야겠다! 이렇게 한 건 아니었고, 그냥 ‘여남’(여성인지 남성인지) 상관없는 인물이면 여성으로 하자는 아주 단순한 원칙만 가지고 썼습니다. 오히려 제가 쓴 소설 중에 페미니즘을 표방한 혹은 앞세운 소설은 한두 편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물론 저는 페미니스트이긴 하지만.
듀나 중년 남자가 주인공이어야 보편이라는 생각이 좀 이상해요. 저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잘 쓰지 못하고 관심이 없어요. 의식적으로 ‘주의’를 반영한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톨스토이도 안 그런 책이 훨씬 재미있죠. 아무리 주의를 내세워도 어차피 독자들은 작가 말을 듣지 않아요.
김보영 저는 소설 주인공 비중을 남 1 여 1 무성 1 정도로 쓴다고 생각해왔는데, 남자는 제가 여자를 주로 쓴다고 생각하고 여자는 남자를 주로 쓴다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페미니즘을 직접적으로 생각하며 쓴 소설은 저도 많지는 않아요. 역시 이건 여성운동가 쪽에서 SF를 주목해준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2016~2017년 와우북에서 ‘젠더 문제를 말하는 SF’라는 주제로, 또 여성영화제에서 ‘여성, 과학, 그리고 SF’라는 주제로 저를 불러주셨는데, 이전에는 그런 형태로 SF를 불러준다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거의 ‘내가 여자인 걸 이제 깨달았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역시 해석의 문제인 듯해요. 게임시나리오를 쓸 때는 신분을 숨긴 적도 없었는데 다들 내가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게임과 여성을 연결해 생각하지 않아서인 듯해요.
마지막으로 2020년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김초엽 논픽션 책을 준비 중이고요. 장편도 웹으로 공개할 예정이고, 가능하면 소설집도 묶고 싶습니다!
듀나 2020년 큰 그림은 없어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는 이미 전임자가 세워놓은 기반이 있으니까 대를 이어 유지하는 게 목표죠.
김보영 일단 절판된 책들이 2년 안에 다시 다 나올 계획이고, 웹소설을 완결해야 하고, 경장편 소설을 여러 개 계약했어요. 제 집필 속도에서 다 해내려면 생활방식을 크게 바꿔야 해요. 소설만 써도 먹고살 수 있는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게 내가 평생 바랐던 때가 아닌가 싶더군요. 이때를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그만큼 정신을 차려야 한다 싶습니다.
더 이상 상상이 아닌 세계의 상상력2020년은 “(SF 작가가) 소설만 써도 살 수 있는 때…”가 된 것일까. 지금의 세상은 SF 작가가 그려내던 소설 세계의 평행 우주를 거쳐 도달한 것인지도 모른다. 1989년 KBS가 10억1천만원을 들여 제작해 방영한 애니메이션 는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으로 대체 우주를 찾아 우주탐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2020년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 등의 위기 상황들, 전세계를 휩쓸며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 등 모두 SF에서 많이 본 설정이다. 이미 미래는 곁에 와 있다. SF가 더 이상 ‘상상’이 아닌 세계다. 그래서 더욱 SF의 상상력은 소중하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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