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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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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과로로 목숨 잃을 수 있어요”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 강민정 운영자 인터뷰
등록 2019-12-13 01:26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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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나 과로자살을 겪은 유가족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 가족, 동료, 친구들을 위한 안내서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갑작스럽게 가족을 떠나보낸 뒤 ‘과로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겪은 안도감, 원망, 죄책감, 고독감 등을 진솔하게 풀었다. 강민정(사진) ‘한국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이하 유가족 모임) 운영자를 10월23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무실에서 만나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이하 안내서)에 담길 이야기를 미리 물었다. 2017년 7월 만들어진 유가족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과로사·과로자살 산업재해 승인을 위한 공부와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 안내서는 이르면 내년 중반 나올 예정이다.

행정 절차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

안내서엔 어떤 내용이 담기나.
노동자가 신체·정신적 과로로 목숨을 잃어도 가족과 동료, 친구는 일하다가 갑자기 죽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를 잘 납득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안내서는 유가족이 가족의 죽음을 과로사 또는 과로자살로 인정하는 전체 과정을 다뤘다. 먼저 과로사 또는 과로자살 직후 어떤 마음이 드는지 썼다. 이후 부검, 경찰 조사, 사망 신고, 개인 보험 처리 등 사망 직후 다양한 행정 절차를 안내했다.

왜 안내서가 필요한가.
예를 들어 경찰 조사는 유가족이 가장 먼저 통과하는 관문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실감과 충격으로 공황 상태에 있는 유가족은 빚이 있거나 가족 문제가 있었는지 묻는 경찰의 형식적인 질문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안내서가 필요한 거다.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었나.
2018년 5월쯤 유가족들에게 제안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공고한 노동보건 연구 공모에 선정돼, 올해 10월 안내서 가안이 될 보고서를 완성했다. 목차 대부분이 유가족 모임에서 2년 동안 여러 차례 얘기한 내용이었다. 이후 4개월 동안 유가족들에게 일기를 써달라고 부탁해, 집필에 주로 참여할 유가족을 3명으로 정했다. 이들에게 가족이 숨진 직후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산재 신청 전후로 무엇이 궁금했는지 써달라고 했다.

어떻게 활용되나.
안내서를 단행본으로 낼 예정이다. 사후 행정 정리는 쉽게 공유할 수 있게 핸드북처럼 작은 책으로 만드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집필 과정 자체가 유가족에게는 또 다른 치유의 과정이었다. 한 유가족은 마음이 정리된다고 했다. 집필을 끝내니까 뿌듯하다는 유가족도 있었다. 가족을 잊을까봐 무서웠는데 새로이 다시 기억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집필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한 일이 됐다.

‘과로 죽음’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 부족

안내서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는 뭔가.
과로 죽음에 대한 감수성과 공감대가 여전히 부족하다. 평범한 회사에서, 평범한 노동자가 과로로 목숨을 잃고 있다. 긴 시간 노동은 물론이고 업무에 대한 정신적인 부담과 스트레스를 어떻게 과로로 인정할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할 사회 초년생인 청년과 대학생에게는 과로 예방 교육을 해 과로가 심해지면 스스로 일을 그만둘 수 있게 기성세대가 지지해줘야 한다. 유가족이 자신의 경험을 쓴 안내서는 모두가 과로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음이 될 거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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