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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검은 내 뜻대로

‘혈연 중심’ 벗어나 ‘사후자기결정권’ 보장하는 장사 체계 만들어야

제1282호
등록 : 2019-10-07 12:47 수정 : 2020-05-0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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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한쪽에 마련된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장에서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오른쪽)와 명재익 정담의전 대표가 무연고 사망자 2명의 영전에 술을 올리고 있다. 이날 장례를 치른 고인들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나 ‘연고자’가 없는 74살 남성과 병원에서 숨졌으나 자녀들이 주검 인수를 포기한 58살 남성이었다. 류우종 기자

서울 종로구 흥인지문 근처 가파른 낙산성곽길을 오르다보면 오래된 집들이 모여 있는 주택가가 나타난다. 골목길 언저리 쪽방 수준의 두 평 남짓한 방엔 최아무개(80)씨가 홀로 산다. 깔끔하게 청소된 방 벽에는 ‘독거노인 쪽방’ ‘창의·도전·열정’ ‘CAN DO,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작은 텔레비전 옆엔 최씨의 ‘유언장’이 코팅된 채로 놓여 있었다.

최씨가 구청장 앞으로 유언장 남긴 이유

‘김영종 종로구청장’ 앞으로 쓰인 유언장을 읽어보자. “40여 년간 형제들과 헤어져 있는 동안 두 형님은 사망하셨고 두 누님은 노쇠하여 거동하기조차 어렵고 부끄럽게도 얼굴조차도 모르는 조카들은 저와의 상면조차도 거부하고 있사오니 제가 ‘돌연사’ 시 장례지원단 등을 통해 화장 후 강에 뿌려 시신 흔적을 없애주시기를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앞으로 수급비와 노령연금을 절약해 통장에 남겨놓겠사오니 아무에게도 저의 사망 사실을 알리지 말도록 지시해주시기를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최씨는 20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전까지 패션쇼나 연예인 공연을 기획하는 일을 했다. 전자오르간으로 사업을 확정하려던 때, IMF가 터졌고 가족에겐 빚을 남겼다. 미용실을 했던 누님은 동생의 빚 때문에 운영하던 미용실 두 곳을 닫았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면서도 노숙인 자활 사업과 공연기획 쪽으로 재기를 노리던 그는 번번이 실패했다. 시간이 흘러 팔순 노인이 된 그는 혈압과 수전증, 우울증 약을 주기적으로 복용한다. “멋진 공연 한번 기획해보고 싶었어요. 20년 동안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연락을 안 했어요. 이 방에서 돌연사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아요. 얼굴도 모르는 조카들이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겠어요?”

최씨가 숨진 뒤 유언장에 적힌 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현재의 장사 행정 체계에 따르면 그의 뜻이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가 누님과 조카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아달라는 말을 남겼다 하더라도, 또한 화장한 뒤 강에 뿌려 주검의 흔적을 없애달라고 하더라도, 지금 살아 있는 최씨는 숨진 자신의 주검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보건복지부의 장사업무안내서를 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의료기관(병사)·경찰서장(변사) 등에 인수된 ‘무연고’ 주검에 대한 사망자 신원 확인과 연고자 탐문·조사를 해 연고자 유무를 재확인한다. 연고자 우선순위는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의 직계비속, 부모 외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순이다. 연고자가 확인될 경우엔 지체 없이 주검을 인도하지만, 연고자가 주검 인수를 거부·기피할 경우 연고자에게 ‘시신 처리 위임서’, 이른바 ‘시체 포기 각서’를 받는다. 이 각서를 기다리는 기간이 14일이다. 서울의 경우 연고자가 없으면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에 있는 무연고자 추모의 집에 봉안되고, 연고자가 주검 인수를 포기하면 지자체가 주검을 화장한 뒤 산골(화장한 유골을 분골한 가루를 일정한 장소에 뿌리는 것)을 한다. 서울시에선 2018년 9월부터 공영장례에 관한 조례가 시행돼 무연고자 장례를 치르지만, 이런 제도가 없는 지자체들은 대부분 ‘직장’(장례 없이 장사를 치름)을 한다.

먼저 ‘혈연’에게 묻고, 포기하면 산골

이러한 무연고 주검 처리 절차에 고인의 생전 유지가 받아들여질 기회는 없다. 국가가 ‘너는 연고자가 없으니 국가가 대신 할게’라고 판단해 주검을 ‘처리’하는 수준에 그친다. 최씨가 자신의 유언장을 ‘종로구청장’ 앞으로 적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주검을 발견할 지자체에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호소인 셈이다. 무연고자·저소득층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 나눔과나눔의 박진옥 상임이사는 “정부의 장사 행정 절차는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와 사후자기결정권 보장에 있다기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목적인 보건위생상 위해를 방지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연고 사망자 처리를 오직 효율성 관점에서만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처리 절차는 고인의 뜻을 이어받지 못한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생전에 고인 곁을 지킨 진정한 ‘연고자’가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지 못하는 문제도 낳는다. 먼저 법이 정한 연고자 ‘순위가 높은’ 사람이 주검을 포기할 경우 낮은 사람은 주검을 인수할 수 없고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나눔과나눔이 정리한 사례를 보면, 고인이 숨지기 직전까지 병원에서 돌봤던 이모가 있었지만 고인의 어머니가 주검을 포기해 주검 인수를 못하거나, 부자관계가 끊긴 조카들이 주검 인수를 포기하는 바람에 형님의 임종을 지켰던 동생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기도 했다.

가족도 이럴진대 혈연관계가 없는 이들의 사연은 더욱 안타깝다. 고아원 친구들, 가족 대신 돌봤던 동네 이웃도 장례를 치를 ‘자격’이 없다. 주민등록상 ‘동거인’으로 20년 동안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아내를 떠나보낸 뒤 유골을 ‘무연고자 추모의 집’에 봉안해야 했던 남편도 있었다. 남편은 “하루빨리 제도가 개선돼 아내를 가족 선산에 모시고 싶다”며 애통해했다.

안타까운 사례의 근본 원인은 ‘사후자기결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법체계에 있다. 나눔과나눔이 화우공익재단의 연구용역으로 법률가·학자 등과 함께 작성한 ‘무연고 사망자 등의 사후자기결정권 한일 비교 및 입법·정책 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현행 민법은 상속재산 처분, 유증, 미성년자 후견인 지정 등 법정 사항이 아닌 내용은 유언하더라도 효력이 없다고 본다. 법률이 다툼의 여지가 큰 재산 관계 등에 관한 사항을 위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숨진 뒤 장례 등 관련 업무 처리를 위임하는 ‘사후업무위임계약’도 민법에 “위임은 당사자 한쪽의 사망으로 종료한다”고 규정해 의미가 없다.

사망으로 계약이 종료되지 않는 위임을

이미 ‘무연사회’라는 말이 수년 전부터 사회적 이슈가 됐던 일본은 ‘사후업무위임계약’이 법률적으로 가능하다. 가족이 있든 없든 자신이 죽은 뒤 업무 처리에 관한 위임계약을 할 수 있다. 장례 업무를 대신할 이른바 ‘계약가족’을 만드는 것인데, 이는 법원의 적극적인 법률 해석 덕분이다. 일본 민법에도 한국과 비슷하게 “위임계약은 위임자 또는 수임자의 사망에 의해 계약이 종료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1992년 한국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 규정을 ‘강행규정’이 아니라 ‘임의규정’으로 판단했다. “위임계약의 사후 유효성에 관련한 특약(특별한 약정)이 있다면 사후에도 계약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개인은 특정 법인과 사후 업무에 관한 생전계약을 맺어 사망신고서 제출(사람이 숨지면 장례를 마무리한 뒤 사망신고를 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사망신고 뒤 장례를 치른다)부터 화장·납골 등 장례, 연금·보험 자격 상실이나 유품 정리 등의 업무를 맡길 수 있다.

일본에는 주로 홀몸노인을 대상으로 사후업무위임계약 서비스를 담당하는 비영리사단법인이 100여 곳 활동하고 있다. 장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지원이나 요양시설 입소 신원보증 등 서비스 내용이 다양하다. 전통적, 법적으로 ‘가족’이 하던 업무를 대신 해주는 것이다. 일본 나고야 등 사업소 15곳을 운영하는 ‘인연의 모임’이라는 단체는 2001년부터 1만 명 넘는 홀몸노인과 계약한 뒤 현재까지 4500명의 노후를 돌본 뒤 떠나보냈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입소할 때 신원보증을 하거나 통원치료 때 동행, 숨졌을 때 장례 지원과 함께 가스·수도 해약부터 연금 중지, 보험증 반환 등의 업무도 대신 해준다. 예탁금으로 1900만원 남짓을 내야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에겐 기부금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무료 제공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족관계 단절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립사’가 사회문제가 된 지는 아주 오래됐다. 특히 연고자가 있음에도 주검 인수를 포기하는 ‘연고자 있는 무연고자’도 급증하고 있다. 2013년에 1280명이던 무연고 사망자는 2017년 2010명으로 57% 늘어났다. 2013년만 해도 65살 이상 노인 비중이 36.2%였으나 2017년엔 41.5%로 늘어나는 등 빠른 증가 추세다. 2017년 65살 노인가구 가운데 1인가구가 33.5%에 이르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임을 고려하면, 노인 무연고 사망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혼·비혼 등 동거가족, 혼인신고가 현재까지 불가능한 동성가족 등 ‘전통적 형태의 가족’이 아닌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어, 함께 살던 이들의 추모를 받지 못한 채 ‘무연고자’가 될 수도 있다. 현재는 무연고자 장례 문제가 가족관계 단절이나 빈곤 등의 문제인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론 ‘사회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처럼 사후자기결정권에 근거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 등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헌법재판소의 2015년 결정

한국의 헌법재판소 역시 2015년 사후자기결정권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인수할 사람이 없는 주검을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해부용’으로 제공하도록 한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다. 당시 헌재는 “만일 자신의 사후에 주검이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처리될 수 있다고 한다면, 기본권 주체인 살아 있는 자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박 상임이사는 “가족 형태는 다양해지는데 제도는 혈연의 틀에 갇혀 있다. 가족이 아닌 삶의 동반자들이 고인의 마지막을 지킬 수 있도록, 또한 죽음 이후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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