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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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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정치적’이 된 검찰

조국 수사에 검찰 내부에서도 “정치행위 관여 자제해야”
등록 2019-09-21 06:21 수정 2020-05-02 19:29
조국 법무부 장관이 9월18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 참석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공동취재사진

조국 법무부 장관이 9월18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 참석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공동취재사진

조국 법무부 장관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검찰은 조 장관 관련 의혹 가운데 핵심인 사모펀드 수사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서 했던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본다. 검찰은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사모펀드 운용사를 만든 뒤 조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일 때 직접 투자했고, 조 장관도 이를 몰랐을 리 없다고 판단한다.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의 ‘이해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직접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검찰은 조 장관이 공직자윤리법을 어긴 것으로 보고 그를 피고인으로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 장관 기소 가능할까

조 장관과 검찰 가운데 누구 주장이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지는 재판에서 가려지겠지만,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조 장관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사모펀드 의혹은 조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일 때와 겹치기 때문에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조 장관은 물론 청와대가 입을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은 앞서 9월2일 기자간담회에서 “저는 물론이고 제 처든 간에 사모펀드의 구성이건 운용이건 알 수가 없었다. 따라서 관여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의 자금 추적 결과는 이 해명과 큰 차이가 난다. 일단 부인 정 교수의 돈이 사모펀드 운용사인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의 설립 자금 중 일부로 쓰였다. 정 교수가 2015년 말~2016년 초 남편의 5촌 조카인 조아무개(구속)씨 쪽에 5억원을 송금했고, 조씨는 이 중 절반을 나중에 코링크PE의 대주주가 되는 김아무개씨에게 전달했다. 김씨는 이 돈을 2016년 2월 코링크PE 설립 자금으로 썼다.

정 교수는 남편이 민정수석 때인 2017년 7월 두 자녀와 함께 코링크PE가 운용하는 사모펀드 블루코어밸류업1호에 10억5천만원을 투자했다. 그는 앞서 같은 해 2월 동생에게 3억원을 빌려줬는데, 이 돈은 정 교수의 동생이 코링크PE 주식 5억원어치를 사들이는 데 쓰였다. 검찰은 이런 돈의 흐름을 근거로 정 교수가 사모펀드 설립부터 동생의 지분 투자까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본다.

검찰은 정 교수를 곧 소환해 관련 의혹을 조사한 뒤 조 장관의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조 장관 기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돈의 흐름을 뒷받침하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없으면 공소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법조인은 “자금 추적 결과만으로는 사모펀드와 관련해 정 교수를 기소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정 교수가 ‘동생에게 빌려준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전혀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다. 검찰이 정 교수를 넘지 못하면 조 장관을 직접 겨냥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지지도 취임 후 최저

조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9월1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3.8%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정수행 부정 평가도 53%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리얼미터는 “조국 장관 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 보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산한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조 장관 임명 직후에는 문 대통령 지지율이 소폭 상승(46.3%→47.2%)했다.

검찰 수사 상황과는 별도로 이번 수사가 과연 적절했는지는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다. 검찰 안에서도 이번 수사의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매우 이례적인 수사이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검 박아무개 부장검사는 9월6일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검사가 입법부, 행정부, 정당 등 외부 국가기관과 세력에 대한 정치적 독립을 표방한다면 정치 행위에 관여하는 것은 매우 특수한 경우 이외에는 자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장관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고발 사건을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권력형 비리를 전담하는 특수부를 동원해 수사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조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 9월6일 밤, 그의 부인 정 교수를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사문서 위조)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사문서 위조의 공소시효(7년) 만료일이 청문회가 열린 날이라서 기소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법조계에서는 “피의자를 소환 조사도 하지 않고 기소한 것은 최소한의 방어권도 보장하지 않은 무리한 기소”라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의 이례적인 기소를 윤석열 검찰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신호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한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는 “표창장을 조 장관 딸의 부산대 의전원 입시에 사용한 것을 위조 사문서 행사로 기소하면 공소시효 문제가 해결된다. 부산대 의전원 입시는 2014년이기 때문에 공소시효 때문에 전격 기소했다는 검찰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기소를 강행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 장관을 임명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9월18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9월18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법원 판단 기다리는 명분 만들어줘

검찰은 9월18일 기자간담회에서 정 교수의 표창장 위조 시점을 공소장에 적힌 2012년 9월7일에서 그 이후로 공소장 변경을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조 장관의 딸이 서울대 의전원 입시를 준비하던 2013년에 위조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조 수법도 총장 직인을 ‘날인’한 것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위조한 것’으로 변경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추가로 확보한 증거와 관련자 조사를 통해 위조 시점과 수법을 확정했다. 재판에 앞서 공소장 변경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검찰이 정 교수를 충분한 조사 없이 기소했음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 수사가 ‘조국 사태’를 장기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수사로 장관 후보자 도덕성 검증 차원의 문제가 형사처벌 문제로 변질된 탓이다. 형사처벌 여부는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가려진다. 검찰이 조 장관의 가족을 기소하더라도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버틸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준 셈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해법을 찾지 않고 검찰 수사 결과만 지켜보는 상황은 더 큰 위기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법조인은 “수사는 생물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모른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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