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이 3월1일 새벽(현지시각) 2차 북-미 정상회담 북쪽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 담판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하노이에 설치된 한국프레스센터 토론 패널로 현지에 있던 나는, 28일 점심 무렵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타결을 위한 마지막 벼랑 끝 대치가 아닐까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북-미 정상을 태운 차는 회담장을 떠나고 있었다. 이날 오전까지 서로를 “위대한 지도자” “통 큰 결단”이라 치켜세우던 양 정상 사이에 단독정상회담과 확대정상회담을 거치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서울에 있던 지인들은 하노이에 있는 나에게 더 정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카톡을 보냈으나 현지라고 특별한 정보가 있을 리 없었다. 이날 오후의 트럼프 대통령 기자회견과 심야의 리용호 북한 외무상 기자회견을 통해 추측해볼 뿐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실무 협상을 맡아온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정상회담 전에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이 있었을 것이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에 대한 파괴와 검증, 연락사무소 개설, 핵실험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 지속과 북-미 평화선언 등에 대해 의견 접근이 있었고, 영변 핵시설의 처리와 제재 완화 범위에 대해서도 서로 요구하는 바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영변 핵시설의 처리와 제재 완화 범위는 양 정상의 최종적인 담판에 맡겨두고 정상회담이 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모든 영변 핵시설의 폐기와 검증에 대한 상응 조치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중 2016년 이후 민생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미국은 이런 북한의 요구가 제재 전체를 해제하는 것이라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넘어 영변 외 핵 의심 시설을 더 신고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양 정상은 몇 차례 논쟁했으나 합의문 없이 논의를 종료했다. 2월28일 트럼프 대통령 기자회견 뒤 핵시설에 대한 포괄적 신고나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포괄적 비핵화 등이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회담에서 핵심 쟁점은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알파와 제재 완화 범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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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270호·2321호·2371호·2375호·2397호 등 5개 유엔 안보리 결의 중 민생과 관련된 부분의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이다. 석탄·철광석·금·섬유·수산물 등 수출 금지, 철강제품 등 수입 금지, 원유 수입 제한, 북한 은행의 해외 지점과 북한 내 금융기관 폐쇄, 북한 선박의 용선이나 보험 제공 금지, 북한 내 합작사업 금지, 해외 북한 노동자 취업 제한 등의 제재를 새로운 유엔 안보리 결의로 해제해달라는 것이다. 2016년 이후 안보리 결의 항목 중에서도 소형 무기 수출 금지, 핵 관련 고급물리학 교육 교류 금지, 북한 외교관 활동 제한 등 민생과 무관한 항목은 해제 요구에서 제외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한 대북제재는 2016년 이전엔 주로 무기, 핵미사일 부품, 사치품과 관련자에 대한 제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16년 이후로는 핵미사일과 직접적 연관성이 작더라도 북한 경제에 타격을 주리라 예상되는 분야까지 제재가 확대됐다. 결국 북한의 요구는 핵미사일과 직접 관련된 항목에 대한 제재는 감수하되 민생 관련 제재는 풀어달라는 것이다. 북한의 요구가 실현되면 제재와 무관한 금강산관광은 물론이고 2016년 폐쇄된 개성공단이 재개될 수 있으며, 중국과의 석탄·철강석 등의 무역과 중국·러시아와의 합작사업 발전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016년 이후 대북제재강화법 등을 통해 북한에 모든 물자·용역·기술 수출입 금지 등 독자 제재를 했다. 북한은 적어도 미국의 독자 대북제재도 2016년 이전 수준으로 해제해주도록 요구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제재는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처럼 ‘세컨더리 보이콧’(3자 금융제재) 대상자 지정 전에도 미국의 조사 개시만으로 금융시장의 반응에 따라 제재 효과가 생긴다. 따라서 제재를 해제하더라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전에 효과가 나타나기에 한계가 있다. 미국에는 2016년 이전에도 수출 관리 규정에 따른 수출 제한, 무역법과 관세법에 따른 고율관세 부과에 따른 수입 제한, 국제금융기구법에 의한 공산국가의 국제통화기금 사용 같은 편의 제공 반대 등 10여 개의 대북제재 법령이 있었다. 2016년 이후 취해진 미국의 대북제재가 해제되더라도 북한 제재는 상당 부분 남을 수밖에 없다. 일부 제재가 해제되면 일사불란한 제재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주장할 수 있어도, 북한의 요구가 전면 제재 해제라는 것은 과장된 주장일 가능성이 많다.
비핵화와 대북제재 완화를 둘러싼 협상에서 구체적으로 합의 가능한 범위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의 핵능력이나 대북제재 효과 등에 대한 정보가 더 있어야 양쪽에서 제시한 ‘가격’이 맞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노이 회담으로 북한과 미국 양쪽이 요구하는 것이 명확해졌다. 영변 핵시설 폐기의 상응 조치로 제재 해제 폭을 좀 줄이든지, 아니면 2016년 이전 제재로 돌아가기 위해 영변 외 핵 의심 시설을 더 신고하거나 폐기하든지가 쟁점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단계별 비핵화와 모든 제재 해제 이전 일부 제재 해제로 합의할 수 있다는 점, 신뢰 구축 초기 단계에서 안보와 경제를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은 진전된 모습이다.
북-미 협상의 향방이 어지러울 수 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절실하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에 따르면 제재위원회가 인도주의 목적이나 결의안 목적에 부합하는 경우 제재 예외(exemption)를 인정할 수 있으며, 유엔 안보리 준수 여부에 따라 결의를 강화·수정(modify)·중단(suspend)·폐지(lift)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미국 대북제재강화법도 제재의 예외와 면제(waiver), 중단(suspension), 종료(termination)로 나눠 대북제재 변화를 규정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와 미국 대북제재의 예외를 활용해 남북경협 재개와 북한의 영변 핵시설 동결 또는 폐기 동시 실행 등 다양한 방안을 창조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하노이Ⅱ 플러스’를 이끌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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