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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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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보훈단체는 악어-악어새 관계다”

보훈단체 자정 나선 배상환 위원장과 박금구 대표…

“박승춘 보훈처가 못된 구조 만들어”
등록 2019-01-26 15:11 수정 2020-05-03 04:29
국가보훈단체를 정상화하겠다는 이들이 뭉치고 있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회원들이다. 이들은 최근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이하 전우회)의 4대강 준설토 사업 비리를 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지난해에는 주택 사업 비리를 터뜨려, 핵심 3인방의 구속을 이끌었다. 북파공작원들의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이하 특임유공자회)는 이미 5년 전부터 정상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배상환 고엽제전우회 적폐청산위원장(왼쪽)과 박금구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1월2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났다.  박승화 기자

배상환 고엽제전우회 적폐청산위원장(왼쪽)과 박금구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1월2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났다. 박승화 기자

1월23일 오후 북악산이 바라보이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전우회의 배상환(73) 적폐청산위원장과 특임유공자회의 박금구(59) 비상대책위 대표가 두 손을 맞잡았다. 보훈단체의 정상화를 이끌고 있는 두 주역이다. 박 대표는 공동의 행동목표를 제안했다. 각 단체의 수익사업을 철폐하고 국가보훈처 차원에서 공동 관리한다. 수익사업 이익금을 잘 관리해, 회원들이 매달 소액이라도 급여처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여러 보훈단체를 통합하고, 단체장 선출을 민주화한다. 더없이 귀한 동지를 만난 배 위원장도 내내 흐뭇한 모습이었다.

박 대표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결기를 토로했다. “선배님이나 저희나 그동안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싸움을 했는데, 이제는 끝까지 함께 가시죠!” 배 위원장은 연신 “그럼 그럼, 그래야지” 하며 맞장구를 쳤다.

광화문광장은 한때 보훈단체들이 관제데모를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보훈단체의 비정상을 바로잡자고 이 자리에 다시 오니, 감회가 어떤가.

배상환 대표(이하 배) 국민들한테 손가락질받는 게 마음 아프다. 관제데모라면 우리 전우회가 많이 했다. 이를테면, 독점으로 한 셈이야. 그 덕분에, 지난 두 정부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누렸다. 전우회가 어떤 권력도 겁내지 않게 된 거지. 그리고 순진한 회원들을 동원하기 위해, 당시 정부를 반대하는 쪽엔 모두 “빨갱이” 딱지를 붙였어. 내가 비리 바로잡자고 나서니까, “배상환도 빨갱이”라고 낙인을 찍더라.

박금구 위원장(이하 박) 우리는 영화로 유명해진 북파공작원들의 단체다.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사태 때 처음 광화문광장으로 나왔다. 그때, 돌아가신 북파공작원 7882명의 위패를 앞세우고 이곳을 점거했다. 나중에 정부에서 국유지 우선매입권을 받았고, 전임 회장이 서울 파출소 땅을 팔아 챙기려다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다.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조직해 5년 동안 싸우고 있다. 우리 같은 공법단체(국가의 감독 아래 공공 업무를 수행하는 법인 단체)를 바로잡아 거듭나게 하는 게 우리 비대위의 목표다.

보훈단체들끼리 이전투구 전우회도 특임유공자회도 수익사업을 많이 벌인다. 사업 방식도 사업 분야도 아주 비슷하다.

전우회와 특임유공자회, 그리고 상이군경회와 때로는 경우회까지, 이른바 국가의 공법단체들끼리 나눠먹기 식으로 돌아가면서 사업을 벌인다. 최근 에서 보도한 경기도 여주의 남한강 준설토 사업을 보자. 전우회 쪽에서 먼저 큰 것을 가져갔고, 2017년 유공자회에서 이어받았다. 국방부 고철 사업도 전우회와 특임유공자회, 재향경우회가 번갈아 해먹는다. 서울의 중앙보훈병원 빵집은 특임유공자회 간부가 한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게 말이 되나. 지난해 인천보훈병원 문을 새로 열자, 보훈단체들끼리 주차장과 영안실 사업을 서로 가져가려고 다투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각 단체의 정관도 대동소이하다. 못된 사업 방식을 서로 따라 배워서 나눠먹기한다. 복지법인도 여럿 거느리고 있다. 역시 비리의 온상이다. 특정 사업장에 문제가 생기면, 복지재단을 들이밀어 수의계약을 넘겨받는 식이다.

특임유공자회에서는 소수 간부인 30~40명이 수익사업 혜택을 누린다. 앞으로 뒤로, 교묘하게 빼먹는다. 다수의 일반 회원한테는 한 푼도 안 돌아간다.

거기는 나은 편이다. 우리는 회장 사무총장 사업본부장, 그 3인방과 몇몇 시도 지부장들이 은밀하게 다 해먹었다. 고엽제 피해로 병이 든 14만 회원은 어떤 사업을 벌이는지도 몰랐다. 해마다 천억원대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벌었으면, 회원들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수익사업 혜택을 누렸다는 회원이 없다. 이용만 당했다. 그래서 더 분노하는 거다.

보훈단체는 사업 수행 역량이 없다. 업체 이름만 빌려서 사업을 벌이거나, 업자들을 데려와서 사업을 맡긴다. 불법이다. 결국 업체들 몫을 보훈단체들이 빼앗는 셈이다. 부실한 보훈단체 수익사업 때문에 국가재정도 줄줄 샌다. 눈먼 돈이 하늘에서 쏟아지니, 선후배들 간에 싸움판이 벌어진다. 이게 무슨 꼴이냐.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이렇게 되도록 국가보훈처는 뭐했나.

보훈단체와 보훈처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 박승춘 전 처장이 6년 이상 재임하면서, 지금의 못된 구조를 만들었다. 보훈단체들한테 수익사업 혜택을 듬뿍 넘겨주고, 정부가 필요할 때 관제데모 등에 나서도록 했다. 지금 피우진 처장 체제도 달라진 게 없다. 답답하고 화가 난다.

보훈처장 바뀌었지만 체제 그대로
2011년 10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왼쪽 둘째)이 당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의 (왼쪽부터) 황규승 부회장(현 회장), 강인호 회장, 박근규 부회장(구속)에게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10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왼쪽 둘째)이 당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의 (왼쪽부터) 황규승 부회장(현 회장), 강인호 회장, 박근규 부회장(구속)에게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보훈처는 보훈단체 수익사업 비리의 공동 정범이다. 적당히 방조하는 정도가 아니다. 증거는 없지만 박승춘 처장 때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2017년 박 처장의 보훈처가 특임유공자회의 남한강 준설토 사업을 승인해줬다. 특임유공자회에 수의계약을 해주라고 여주시에 추천장도 써줬다.

보훈단체들의 비리가 널려 있다. 이렇게 내부에서 나서주니, 이제는 불법 증거 수집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피 처장은 왜 과감한 개혁에 못 나서나.

수익사업을 선제적으로 척결하겠다는 확고한 의지 없이는 변화를 끌어내기 어렵다. 워낙 교묘하게 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임유공자회는 복지법인을 4개나 꾸린다. 최근엔 복지법인으로 우회해 사업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부산지하철 용역과 한국전력의 변압기 납품 사업이 구체적인 사례다. 지금 같은 사후약방문 식 대응으론 비리를 도려낼 수 없다. 보훈단체 복지법인을 감사해, 검찰 수사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훈처장 자리만 차지했지, 조직 장악조차 못한 것 같다. 중령 출신인 피 처장 스스로 장성 출신들한테 휘둘린다. 보훈처 사람도 옛날 그대로다. 꼭대기 한 사람만 바뀌었지, 체제는 바뀌지 않았다.

정상화 출발은 직선제 두 보훈단체의 또 하나 공통점은 영구 집권 또는 독재 체제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회장은 연임밖에 안 되니까, 전우회에서는 오랫동안 회장 위의 총회장이란 자리를 뒀다. 총회장과 사무총장 사업본부장, 3인방이 1997년 창립 때부터 지난해 구속 때까지 조직을 장악했다. 광역 시도의 지부장도 20년 이상 한자리를 지킨 충성파들로 채웠다. 지난해까지 지부장은 무한 연임이 가능하게 돼 있었다. 막대한 수익사업 이권을 세 사람이 독식하다보니, 영구 집권 체제가 꼭 필요했던 거다. 실제로 수익사업의 자세한 내용은 3인방과 회계 담당 여직원만 아는 구조였다. 장부는 이중으로 작성했다고 알고 있다. 본부 직원들도 사업을 따낼 때만 동원됐지, 총매출과 순이익이 얼마인지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4월7일 대의원들이 모여 새 회장을 뽑는다. 문제는 87명의 대의원을 지금 회장이 자기 사람으로 4년 전에 이미 심어놓았다는 거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체육대회 등의 명목으로 두어 차례 합숙 모임을 하고, 모의투표까지 한다. 전과자 등 무자격 대의원도 있지만, 규정을 신경 쓰지 않는다. 변심하는 대의원은 임의로 교체해버린다. 특임유공자회는 생존자가 2660명에 불과하다. 법적 제약을 받는 공무원 400~500명 등등 빼고 나면 실제 활동하는 회원은 고작 300여 명이다. 그런데 무슨 87명 대의원을 모아서 간선제로 회장을 뽑는단 말인가. 수익사업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작태다. 직선제를 꼭 관철해야 한다. 그래야 수익사업 비리도 없앨 수 있다.

근본적으론 뭘 어떻게 바꿔야 하나.

상이군인들이 보훈단체를 앞세워 목발 휘두르던 시절은 지나지 않았나. 이제 보훈단체들이 거듭나야 한다. 특임유공자회와 전우회, 상이군경회 정도가 수익사업을 벌이지만, 사업 수행 능력이 있을 리 없다. 다른 사업자 이름을 빌려서 직접 사업을 하는 것처럼 꾸밀 뿐이다. 모두 불법이고 국가재정을 축낸다. 열심히 일하는 업체의 몫을 가로챈다. 그렇게 번 돈은 회원에게 돌아가지도 않는다. 소수 간부만 돈잔치를 벌인다. 우리 비대위는 다른 보훈단체와 함께할 세 가지 공동 목표를 정했다.

첫째, 수익사업을 철폐하자. 기존 사업을 보훈처로 넘겨 공동 관리하는 것이 좋겠다. 당장은 외부 감사를 두어 사업을 투명하게 감시해야 한다. 둘째, 공동 수익사업에서 나오는 이익금을 유공자 회원들이 작은 돈이라도 직접 누릴수 있도록 하자. 5·18 광주 유공자들한테 보상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면 좋겠다. 셋째, 여러 보훈단체를 하나로 합치자. 특임유공자회나 고엽제전우회의 회원들이 상이군경회 지회장을 겸하기도 한다. 상당수 회원이 서로 겹친다. 우리는 회원 수도 많지 않다. 전체 134개 지회 중 열에 아홉은 회원 30명의 정족수 요건조차 채우지 못한다.

이익금은 유공자들에게 보상금으로

전우회는 월남참전전우회와 회원이 많이 겹친다. 통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진작부터 오갔다. 이번에 이 전우회 수익사업 비리를 용기 있게 보도했다.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전우회의 준설토 사업 비리를 서울경찰청에 고발해놓았는데, 적극적인 수사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수익사업에서도 비리가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1월30일 청와대 앞에서 수사 당국의 철두철미한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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