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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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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현실은 시궁창인데 대통령은 여자 편만 든다?

20대 남성이 분노하는 이유는...
20대 남성 7명 심층 인터뷰
등록 2019-01-19 08:01 수정 2020-05-02 19:29
“20대 남성은 누구인가?”
지난해 말,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의 지지도가 폭락했다는 보도가 쏟아지면서 청와대와 정치권에 비상이 걸렸다.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율(29.4%)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고, 60대 남성의 지지율(34.9%)보다 낮다”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발표가 출발점이었다.
20대 여성은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63.5%)을 기록했다. 20대는 ‘가장 심각한 한국 사회 갈등’으로 ‘젠더 갈등’(57%)을 꼽았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이 ‘젠더 갈등’에 주목한 이유다. “젠더 갈등 때문에 20대 남성이 현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프레임 안에서 20대 남성은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지질한 집단으로 치부됐다. 성별 임금 격차도 여전하고, 성평등 사회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페미니즘에 대립각을 세운다며 손가락질 받고 있다.
‘20대 남성들은 왜 등 돌렸나?’ ‘20대 남성의 보수화?’ 같은 제목의 보도가 쏟아졌지만 독자의 호기심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의 추론만을 담고, 당사자인 20대 남성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이 직접 20대 남성 7명에게 가슴속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1월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근처에서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 회원들이 ‘제3차 유죄추정 규탄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월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근처에서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 회원들이 ‘제3차 유죄추정 규탄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20대 전체를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으로 간주했으나, 20대 남성은 더 이상 핵심 지지층이 아니며 현재는 오히려 핵심 반대층으로 돌아섰음을 보여준다. 이는 ‘젠더 갈등’이 심화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의 지지율(29.4%)이 전 연령층에서 가장 낮다고 발표한 여론조사기관(리얼미터)은 젠더 갈등에서 원인을 찾았다. 지난해 12월17일 리얼미터는 20대 여성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63.5%)을 기록했고, 20대가 ‘가장 심각한 한국 사회 갈등’으로 ‘젠더 갈등’(57%)을 꼽은 것을 근거로 들었다.

전 정부랑 다를 바 없다는 인식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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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미터의 분석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 “가장 심각한 한국 사회 갈등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으로 20대 남성의 낮은 지지율을 설명했다. 이러한 모순에도 일단 “20대 남녀의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 차이가 젠더 갈등 때문”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자 나머지 논의들은 실종됐다. 리얼미터의 분석을 그대로 담은 언론 보도들이 빠르게 퍼지면서 젠더 갈등을 다시 조장했다. 20대 남성의 낮은 지지율의 원인을 분석할 필요성은 금방 잊히고, 갈등만 남았다.

‘왜 20대 남성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을까?’ ‘20대 남성이 말하는 젠더 갈등은 무엇인가?’ ‘정말 젠더 갈등 때문에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이 20대 남성 7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한 이유다.

20대 남성의 문 정부 지지율이 낮아진 것은 확실해 보였다. 종수(21·가명)씨는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 14명이 들어간 카카오톡 대화방이 있는데, 나를 제외한 13명은 모두 문 대통령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촛불집회에 여덟 번 참가하고,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던 정후(29·가명)씨는 “촛불집회에 함께 참가하고 문 대통령을 뽑았던 친구들이 비판적인 태도로 돌아서는 것을 많이 본다”고 했다.

문 정부 지지를 거두는 이유로는 “20대 남성이 느낄 수 있는 삶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정후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의 기대치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당장 삶의 변화가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까지는 기대에 조금도 부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직까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힌 종수씨도 “생활에서 느꼈던 불편이나 정치적으로 갈등이 풀리길 바란 부분이 있었는데,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 구성 과정에서 스스로 천명한 ‘인사 원칙’을 지키지 못할 때 마음이 돌아섰다는 평가도 있었다. 한길(25·가명)씨는 “다섯 가지 인사 원칙을 내세우고 충족하지 못하면 장관에 임명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결격 사유가 있는 후보의 임명을 밀어붙일 때 크게 실망했다. 전 정부들과 크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20대 남성들이 젠더 갈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인터뷰한 20대 남성 7명 중 5명이 “젠더 갈등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이다”라고 대답했다. 규현(21)씨가 “젠더 문제를 포함한 소수자 문제”라고 대답한 것을 포함하면 한 명을 빼고 모두가 젠더 갈등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은 20대 남성 인터뷰이(인터뷰에 응한 사람) 7명 모두에게 물었다. “현재 20대 남성과 여성은 어떤 이유로 갈등을 겪는가.” 남성과 여성이 갈등을 겪는다는 의미의 단어 ‘젠더 갈등’, 하나만으로는 현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지난해 말, 20대 남성 1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기관의 심층 토론 인터뷰에 참가했던 규현씨는 “토론 중에 이수역 폭행 사건 때 양쪽이 잘못을 해도 정부가 여성 편을 드는 것 같았고, 현 정부가 남성의 목소리에 너무 귀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워마드 같은 일부 극단적인 집단이 여성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것 같다는 내용에 토론 참가자 대부분이 공감했다”고 했다.

#미투는 지지하는데 페미니즘에는 거부감
지난해 8월10일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경찰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지난해 8월10일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경찰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자신의 정치 성향을 진보라고 한 종수씨도 “‘남아 낙태는 에티켓이다’라는 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강릉 펜션고에서 남학생들이 숨진 사건을 조롱하는 일도 있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막연한 거부감이 생겼다”고 했다. 페미니즘 운동을 지지하는 20대 남성이라 하더라도 극단적인 여성들의 반인륜적 주장은 용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온라인상 양극단에서 다투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워마드’의 충돌에 대해서는 모두가 선을 그었다. 종수씨는 “온라인에서 극단적 주장을 하는 일베 회원들은 정말 극소수인데 많은 관심을 끌다보니 실제보다 크게 보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한 내용을 종합하면 ‘젠더 갈등을 놓고 일부 극단적인 목소리가 있어서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우리가 거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지는 않다’로 요약할 수 있었다. 이는 기존에 20대를 분석한 것에서는 한발 나아간 분석이었다. 젠더 갈등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때는 남녀 모두 양극단에 서서 다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지지한다”는 뜻을 보였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보수라고 밝힌 민섭(24·가명)씨는 “성폭력 피해를 보신 분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다 같이 노력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했다”고 했다.

미투 운동에 대한 공감과 별개로 이들이 ‘자신이 성폭력의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피해의식도 엿볼 수 있었다. 민섭씨는 “미투가 여성의 입장만 반영되는 쪽으로 변질되는 측면도 있다. 피해자가 정확한 증거가 없어도 피해 사실을 주장하면 남성이 피해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는 피해자의 진술 증거를 정확한 증거가 아니라고 본 것으로 논리가 부족했다. 종수씨도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할 낌새만 있어도 경찰이 체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봤는데, 신체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것 같아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말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가정폭력 방지 대책’을 오해한 것이었다.

대통령이 여성 편만 든다?

20대 남성 대부분은 문 대통령이 젠더 갈등 상황에서 억울한 남성들 편을 들어주지 않고 페미니즘 편을 든다고 주장하긴 했다. 다만 이런 인식이 지지를 거두는 결정적이거나 중요한 요인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후씨는 “극단적 주장을 하는 여성 집단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 기반을 잃을까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성 인권만 강조되다보니 아무래도 지치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민섭씨는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반감을 갖고 있는데 대통령이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하니까 공감이 안 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 자처했지만 극단적 집단의 반인륜적인 발언까지 지지한다고 한 적은 없었다. 이런 내용으로 20대 남성들이 ‘극단적인 젠더 갈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않더라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포되는 글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총학생회장도 여자다. 대부분 학점도 좋고, 교환학생은 여학생들이 거의 다 간다. 학교에서 여학생이 차별받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민섭씨)

“공무원이나 교사 등에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사실이다. 취업시장에서 고용주들은 어린 사람을 선호하는데,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오면 늦어지기도 하니까 주변에서 남성이 역으로 차별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규현씨)

현재 한국 사회의 성평등 수준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인식은 제각각이었다. 되레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이를 ‘연령 효과’로 설명했다. “현재 20대 남성이 성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남성들은 군대를 다녀오면서 3~4년 사회에 늦게 진출한다.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인식과 정치화가 그만큼 늦다. 30대가 되고 남녀의 임금 격차, 여성의 출산 이후 경력단절을 보고 나면 남녀 간 성차별에 대한 인식의 괴리가 좁혀질 수 있다.” 실제로 인터뷰이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정후씨는 “회사가 일을 시킬 때 남성에게 기회를 많이 주고, 여성이 배제된다. 여성이 출산 때문에 남성보다 경력단절이 많이 생기는 부분도 여전하다”고 했다.

여성 차별 체감하면 달라질까
문재인 대통령이 1월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월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극심한 청년 실업 문제까지 겹치면서 미래가 불투명한 20대 남성들은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을 이해한다면서도 피해의식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성이 불리한 사회구조라는 걸 인식은 한다. 하지만 취업을 못했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우리가 보기엔 책임을 우리가 뒤집어쓰는 느낌이 있다. 이런 불평등한 구조를 만든 건 우리가 아니라 기성세대지 않나.” 취업준비생인 한길씨가 말했다.

“젠더 갈등은 언제나 있었는데 실업률이 높아 생존 문제가 커지다보니까 그 갈등이 더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 수직적으로는 세대 갈등에, 수평적으로는 젠더 갈등에 치이는 것 같다.”(종수씨)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은 높은 실업률과 경제문제가 더해지면서 증폭되는 양상을 보인다. 흥미로운 부분은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에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지만 정부에 적극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에 회의적이고,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대한 체념이 깔려 있었다. 한길씨는 “기업에서 뽑는 인원과 지원자 수 사이에 괴리가 너무 크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지난해 일자리 창출에 수십조원을 썼다는데 뭐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정부에는 바라는 게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커다란 성과도 내고 집중해왔지만 20대 남성들은 이에 비관적이다. 민섭씨는 “많은 친구가 경제 침체에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데 기사를 보면 국내 상황보다 북한 문제만 신경 쓰는 것 같아서 많이 돌아섰다”고 했고, 한길씨는 “남북관계가 개선됐다는데, 비핵화나 이런 부분에서 보면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북 위험 크기를 줄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당장 실업이 걱정인 20대 남성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20대 남성들의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 문제에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먼저 정확한 하락 원인을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청와대도 20대 젠더 격차에 주목

김형준 명지대 교수(교양학부)는 “지금까지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에 관한 분석은 실증적인 데이터가 없이 끼워맞추는 추론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20대 남성이 왜 지지를 철회했는지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20대 남성들이 정부 정책에서 피해나 차별을 경험했다면 그 정책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와대도 이 부분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최근 20대 남녀 30명을 선발해 심층 인터뷰를 했다. 정책기획위 관계자는 에 “현재 인터뷰를 마치고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2월 말까지 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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