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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기다리는 진짜 ‘심판’

청문회 개최? 탄핵안 발의?

미 중간선거 하원 장악한 민주당의 트럼프 압박 카드는
등록 2018-11-10 06:44 수정 2020-05-02 19:29
미국 중간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11월4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한 사전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연합뉴스

미국 중간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11월4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한 사전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연합뉴스

선거에선 ‘바람’이 중요하다. 바람을 막는 건 ‘벽’이다. 11월6일 치른 미국 중간선거를 두고 언론에서 ‘블루 웨이브’(민주당의 상징 색깔인 파란색의 바람)와 ‘레드 월’(공화당의 상징 색깔인 붉은색의 벽)의 대결이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과는 어땠나?

“오늘 밤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개표 결과가 속속 발표되던 11월6일 밤 11시14분께(미국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8년 만에 하원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반면 상원은 수성을 넘어 의석을 늘리며 주도권을 강화했다. 상하 양원을 모두 민주당에 빼앗기지 않았으니 ‘엄청난 성공’인 건가? 선거 직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0%까지 떨어졌다. 중간선거를 앞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 수준이었다.

민주당 하원 장악의 의미
‘견제와 균형이 복원됐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11월6일 워싱턴에서 열린 선거 승리 축하 행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견제와 균형이 복원됐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11월6일 워싱턴에서 열린 선거 승리 축하 행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양원제인 미국 의회는 기능과 역할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된다. 인구 규모와 상관없이 50개 주에서 각 2명씩 뽑는 상원의원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 성격이 짙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와 대법관을 포함한 연방 법관, 주요 외교직 공무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상원의 중요한 임무인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상원의 입김이 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6년 임기인 상원의원은 2년마다 3분의 1씩 나눠 선출하며, 의장은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이 맡는다.

2년 임기인 하원은 인구 비례에 따라 나뉜 435개 선거구에서 1명씩 선출한다. 다수당이 의장은 물론 20개 상임위원회 위원장까지 독식하는 체제여서, 하원에서 1석이라도 의석이 많은 당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원의 힘은 무엇보다 ‘지갑’에서 나온다. 예·결산권이 있는 하원이 행정부의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에선 여당이 집권 후반기에 하원 다수당의 지위를 뺏기는 경우가 흔하다. 유권자가 이른바 ‘견제와 균형’을 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중간선거 때인 2010년 11월 하원 다수당의 지위를 공화당에 넘겨준 바 있다. 2016년 11월 선거 당시 민주당은 기대했던 대선에서 패한 것은 물론 상·하원 모두 공화당한테서 찾아오지 못했다. 지난 2년여 트럼프 대통령이 ‘폭주’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헌법이 규정한 대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복원됐다는 점이다.”

차기 하원의장으로 유력한 낸시 펠로시(78)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월6일 선거 승리 축하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11월8일 오후 현재까지 최종 개표 결과 집계가 안 된 4개 선거구를 뺀 421석 가운데 민주당은 223석을 차지했다. 하원 다수당에 필요한 218석보다 5석이 많다. 공화당은 기존보다 28석이 적은 198석을 확보했다. 백악관과 상하 양원을 모두 민주당에 내준 2008년 11월 이후 최악의 결과다.

중간선거 이전부터 민주당은 ‘11월6일 이후’를 벼려왔다. 하원은 ‘소환조사권’을 갖고 있다. 국정 전반에 걸쳐 해당 상임위가 특정인의 출석 증언과 관련 문서 제출을 강제할 수 있다. 상임위 차원에서 논의해 결정할 수도 있지만, 위원장이 단독으로 소환장을 발부할 수도 있다. 이를 거부하면 ‘의회 모독죄’로 처벌받는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하원 장악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공화당 쪽이 따로 목록까지 만들어 민주당의 조사에 대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 전문 인터넷 매체 는 8월27일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공화당 지도부는 이미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며 공화당 안팎에서 떠도는 문건을 공개했다. 대부분 지난 2년여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공화당의 반대에 밀려 추진하지 못했던 내용이다. 내년 1월3일 차기 의회가 개원하면 워싱턴 의사당에서 눈앞에 펼쳐질 현실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민주당이 조사 벼르는 ‘트럼프 의혹 리스트’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신고 자료 제출 문제는 2016년 대선 때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10년 이상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 자료 일체를 제출하겠다고 했다가 말을 여러 차례 뒤집었다. 그는 지금껏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버텨왔다. 더는 어렵게 됐다. 이 문제가 공화당의 대비 문건 맨 위에 올라온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자녀들 개인 사업과 관련한 의회 차원의 조사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사적 치부를 하는 걸 금한다. 이방카 트럼프를 포함한 자녀들의 사업과 대통령의 업무가 관련돼 있다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의 개입 의혹과 트럼프 대통령 연루 의혹을 수사 중인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은 민주당의 하원 장악으로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의회 차원에서 관련 청문회를 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화당 쪽 대비 문건에도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비롯해 법무부 수사 검사 파면 등 관련 내용의 언급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다음날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을 전격 해임했다. 세션스 장관은 특검팀 수사에 협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안하무인식 즉흥적인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도 불을 뿜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령 카리브해의 푸에르토리코 자치정부는 8월28일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내놨다. 지난해 9월 푸에르토리코를 휩쓸고 간 허리케인 마리아로 인한 사망자가 약 3천 명에 이른다는 게다. 애초 미 연방정부가 집계한 공식 사망자는 64명에 그쳤다. 허리케인 피해 직후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진 이가 사망자 집계에서 빠진 탓이다. 연방정부 차원의 재해 지원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차기 의회가 청문회를 열어볼 만한 사안으로 꼽힌다.

기후변화를 ‘거짓 과학’이라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파리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기후변화를 경고하는 환경보호국(EPA) 소속 과학자들도 일방적으로 해고했다. 이 또한 의회 차원의 조사를 할 수 있다. 무슬림에 대한 미국 여행 제한 조처, 불법 이민자와 그 자녀를 강제 격리한 조처, 트랜스젠더(성전환자)에 대한 군복무 금지령 등 거센 논쟁을 불렀지만 의회 차원의 논의는 제대로 하지 못한 사안도 여럿이다.

백악관 관계자의 개인 전자우편 사용 논란과 트럼프 행정부 내각의 과도한 출장과 업무 비용도 지속적으로 논란을 불러왔다. 특히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은 가족여행을 갈 때도 군용기를 이용하는 등의 행태로 여러 차례 입길에 올랐다. 이 밖에 성인배우 스테퍼니 클리퍼드(예명 스토미 대니얼스)와 트럼프 대통령의 스캔들을 덮기 위해 입막음용 돈을 전달한 과정에 불법이 있었는지를 조사할 가능성도 공화당의 대비 문건에 포함됐다. 문건에 언급된 민주당 쪽 조사 요청 사항은 1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하원 상임위 전체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는 이렇게 전했다.

“하원을 장악한 덕분에 공화당은 민주당 쪽의 국정조사 요청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원 다수당 지위를 잃으면 공화당은 더 이상 이를 막아낼 수 없게 된다. 백악관 쪽과 가까운 변호사들은 트럼프 정부가 이에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면할 최악의 위협이다.”

탄핵 카드 쓸까
‘엄청난 승리가 다가온다.’ 중간선거를 하루 앞둔 11월5일 접전 지역인 인디애나주를 찾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엄청난 승리가 다가온다.’ 중간선거를 하루 앞둔 11월5일 접전 지역인 인디애나주를 찾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혼돈의 정점에 ‘탄핵’이 있다. 미국 헌법은 하원에 탄핵 절차 개시 권한을, 상원에 탄핵 심판 권한을 각각 부여했다. 하원의원 과반의 찬성만 있으면 탄핵안은 발의된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공화당이 절반 이상의 의석을 가진 상황에 비춰, 탄핵안 가결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하원의 탄핵안 발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탄핵 심판 과정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2020년 대선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렇다.

전례도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중간선거(1994년)에서 상하 양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을 필두로 전방위적 공세를 펼쳤다. 그 끝이 1998년 12월 성추문과 관련한 위증과 사법 방해를 명분으로 한 클린턴 대통령 탄핵안 발의였다. 이듬해 2월 상원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탄핵 발의와 심판 과정에서 미국 정치권의 갈등과 분열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공화당은 결국 2000년 대선에서 백악관을 탈환했다.

미국의 차기 대선을 위한 선거운동은 중간선거 다음날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임기 중반을 넘긴 초선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재선 대통령의 중간선거가 끝나면 차기 대선 주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2020년 재선에 나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탈환을 노릴 민주당의 양보 없는 충돌은 당연해 보인다. 칼자루를 쥔 쪽은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터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인종·지역·계층 간 분열과 갈등을 부추겨 확고한 지지 기반을 만들어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그는 막판까지 ‘불법이민자의 침공’을 거론하며 인종 간 갈등을 증폭하는 데 집중했다. 그가 만들어낸 ‘분열의 정치’가 여전히 위력적이란 점은 선거 결과로 충분히 입증됐다.

교육 수준이 높은 도시 중산층 여성이 대거 투표장으로 나온 만큼, 교육 수준이 낮은 외곽 지역의 서민층 백인 남성의 투표율도 높았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장악한 도시 중산층의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의석을 늘리며 하원 탈환에 성공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세가 높은 주에선 공화당에 상원 의석을 내줬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선전했던 지역에선 ‘붉은 벽’이 ‘파란 바람’을 넉넉히 잠재웠다. 그의 낮은 지지율에도 선거 결과가 민주당 쪽에 일방적으로 기울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텍사스주 상원의원 선거 결과다. 공화당 후보로 나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2016년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유력 정치인이다. 그에 맞선 민주당 후보는 무명에 가까운 베토 오루크 하원의원이다. 막상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오루크 의원의 진가가 나타났다. 그의 진보적 정책에 끌린 젊은이들이 대거 선거운동에 뛰어들었고, 기업의 정치자금을 받지 않고도 크루즈 의원보다 많은 선거자금을 단기간에 모았다.

인기가 치솟으면서 주류 방송에서 앞다퉈 오루크 의원을 인터뷰했다. 일부에선 ‘2004년의 버락 오바마를 보는 듯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무명의 일리노이 주의회 상원의원이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 이후 일약 전국적 인물로 올라서며,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불과 4년 만에 백악관에 입성했다. 위기에 몰린 크루즈 의원은 2016년 대선 때 앙숙으로 싸웠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텍사스주를 찾아 지지 연설을 하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결과는 48.3% 대 50.9%, 크루즈 의원의 승리였다.

견고한 트럼프 지지층, 엄청난 실패는 없다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 결과도 엇비슷하다. 주도인 탤러해시 시장 출신인 진보적 성향의 앤드루 길럼 민주당 후보는 사전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유지했다. 플로리다주 역사상 첫 흑인 주지사의 탄생을 예감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전혀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과 판박이인 론 디샌티스 공화당 후보에게 간발의 차로 밀렸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의 방향타 구실을 해온 오하이오 주지사 선거에서도 리처드 코드레이 민주당 후보가 마이크 드와인 공화당 후보에게 패했다. 민주당으로선 선거 막판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시도했던 공화당 소속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를 토니 에버스 민주당 후보가 꺾은 게 그나마 위안일 게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주지사 7명을 늘렸다.

‘엄청난 성공’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패배했다. ‘엄청난 실패’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뿌린 ‘분열의 정치’란 씨앗은 전통적 보수 지역인 남부 일대와 ‘러스트 벨트’(중서부·북동부 일대 제조업 중심 지역)에서 확실히 뿌리를 내렸다. 2020년 대선까지 2년여, 하원을 중심으로 펼쳐질 정치권의 공방은 미국 사회의 분열을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마냥 불리할까? 11월6일 개표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등 미국 언론에선 ‘분열의 끝판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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