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 재송신 불허로 반쪽이 신세… 채널 중복 많고 셋톱박스 기능 떨어져
다채널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가 3월1일 역사적인 본방송을 시작했지만 시청자들의 불편과 실망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우선 스카이라이프 채널에선 문화방송(MBC), 서울방송(SBS) 등 일부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없다는 불편을 들 수 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의결된 방송법 개정안이 위성방송의 의무재전송 대상을 한국방송(KBS)1TV와 교육방송(EBS)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조만간 열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KBS2, MBC, SBS는 방송위원회의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위성 재송신이 가능해진다. 이는 재전송이 허용될 경우 영역을 크게 침범당할 것을 걱정한 지역민방과 지방MBC계열사로 구성된 지역방송협의회쪽에서 강력히 반발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KBS2의 경우 방송위 결정에 따라 일단 재송신이 가능하다. 최근까지 비디오 86개, 오디오 60개 등 146개 채널이라고 광고해오다 개국 시점에서 144개 채널로 최종 확정된 데는 이런 사연이 녹아 있다.
기존 리모컨 이용해야 지상파 시청
재전송을 못한다고 해서 MBC, SBS를 아주 볼 수 없다는 건 아니지만 가입자들은 다소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스카이라이프 채널용 리모컨으로는 MBC, SBS 등 지상파 채널로 곧바로 옮아갈 수 없어 기존의 리모컨을 함께 들고 사용해야 한다. 가입자들로선 꽤나 성가신 일이다.
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의 재송신이 안 될 경우 실가입을 미루겠다는 비율이 예약가입자의 70%에 이르고 있어 마케팅 측면에서 매우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가입자들이 지상파 재전송 문제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카이라이프 회사 차원에서도 시청자가 줄고 광고수입이 감소해 다시 시청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란 걱정에 싸여 있다. 스카이라이프는 이에 따라 개정 방송법에 대해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중이다.디지털위성방송이란 ‘밥상’에 오른 ‘반찬’에 대한 가입자들의 실망도 적지 않을 듯하다. 반찬(채널)의 가짓수는 많지만 디지털위성방송에서만 볼 수 있는 내용(콘텐츠)은 크게 부족하다. 비디오 채널 74개 가운데 디지털위성방송을 통해서만 송출되는 채널은 22개로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 채널들은 케이블과 위성을 통해 동시에 송출된다. 위성방송이 기존 케이블 가입자들을 끌어당겨올 만한 매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셈이다. 오디오 채널 60개는 모두 위성방송에서만 서비스된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스카이라이프쪽은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채널사용사업자(PP)들에게 20∼30%는 케이블과 차이를 보이도록 특화된 콘텐츠를 편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PP업계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스카이라이프가 장기적인 계획 아래 PP들을 지원해 콘텐츠를 키우는 길밖에 지금으로선 차별화를 위한 별다른 비방이 없는 실정이다.
바둑 프로그램을 보면서 특정 프로기사의 정보를 검색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여주인공이 입은 옷을 리모컨 조작으로 주문할 수 있는 데이터방송 및 쌍방향(인터랙티브) 서비스도 당장은 기대할 수 없다. 본격적인 디지털위성방송의 묘미를 보여줄 수 있는 이런 서비스는 이르면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불편이나 실망은 예약가입 단계에서 실가입으로 이어져 서비스를 제공받는 경우로 그나마 나은 편에 든다. 위성방송 수신에 필수적인 셋톱박스 공급이 원활치 못해 예약가입 상태에서 몇달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적체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예약가입에서 실가입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60%라고 한다면 적체가 해소되려면 2∼3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스카이라이프는 내다보고 있다. 예약가입 순서 50만 번째라면 대략 5월 말이나 6월 초에 디지털위성방송을 볼 수 있는 셈이다.
표준성 셋톱박스의 지능형 방송은 9월에나
스카이라이프쪽에선 “새롭고 완벽한 서비스를 위해 수신기의 기능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는(높이는) 과정에서 다소 지연된 것”이라고 해명한다. 그렇지만 본방송에 맞춰 공급된 물량이 애초 장담한 5만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6천대 수준에 머물렀다는 결과 앞에서 이런 해명은 대단히 궁색해 보인다.
더욱이 이렇게 공급된 셋톱박스의 기능에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디지탈테크, 휴맥스 등 3개 업체에서 납품받아 공급하고 있는 셋톱박스는 ‘경제형’으로 ‘콤퍼지트’ 신호를 내보내는 단자만 달려 있다. 콤퍼지트는 방송 내용을 화면에 표시하는 데 필요한 밝기와 색깔 신호를 미리 조합해 보낸다. 밝기와 색깔 신호를 각각 보내는 ‘콤포넌트’ 방식에 견줘 화질이 20%가량 떨어진다고 한다. 실제 스카이라이프 본사(서울 공평동 제일은행 15층)에 케이블TV와 나란히 설치된 디지털위성방송TV에서 뚜렷한 화질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디지털위성방송의 특징으로 꼽히는 데이터 및 쌍방향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것 또한 이같은 셋톱박스 문제에서 비롯됐다. 스카이라이프의 위성방송은 디지털방송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반쪽짜리 디지털위성방송’이라는 빈축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본격적인 의미의 디지털위성방송에 필요한 기능을 갖춘 표준형(고급형) 셋톱박스는 빨라야 9월께 공급될 것이라고 한다. 이 경우 가입자들은 추가로 비용을 들여야할 게 뻔하다.
본방송 일정이 여러 번 바뀌는 데 따라 빚어진 혼란스런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 2000년 11월 방송위원회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선 2001년 10월로 했다가 그해 말로 미룬 뒤 다시 올해 3월1일로 거푸 연기됐다. 특히 올해 3월로 늦출 때는 주총(3월12일)을 앞둔 시점에서 연임을 의식한 경영진의 얄팍한 결정이었다는 비난이 회사 안팎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하필 그 시점으로 미뤄지는 데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일정이 꼬이는 등 갖가지 문제점이 드러난 것을 모두 스카이라이프쪽에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지상파 재전송 문제처럼 정부의 방송 정책과 맞물리는 사안은 스카이라이프로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셋톱박스 공급이 원활치 않고 기능이 떨어지는 문제 또한 제조업체의 기술수준 및 준비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어서 스카이라이프만 매도할 수 없다는 항변이 나올 법하다. 이런저런 복잡한 사연을 접어두고 신생조직의 초기 사업에서 빚어지는 통과의례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모여든 임직원들로 꾸려진 신생 조직이 지금까지 없던 전혀 새로운 영역의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차질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속으로 곪아터진 값비싼 통과의례들
그럼에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게 있다. 갖가지 문제점을 처리하는 스카이라이프의 미숙한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스카이라이프는 지금껏 숱한 문제들을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하반기 본방송 일정의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무성했을 때가 그랬고, 올해 들어 셋톱박스의 기능이 크게 떨어진다는 언론 보도가 불거져나올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속으로만 삭이려다 문제가 곪아터져 바깥으로 노출되면 마지못해 시인하고 뒤늦게 해명에 나서는 식이었다. 시청자(가입자)를 의식하는 태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되레 각종 문제점을 바깥에 발설한 내부 ‘문제아’들을 색출한다고 서슬푸른 칼날을 휘두르는 참으로 딱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셋톱박스가 제 기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가입한 이들이 느꼈을 당혹스러움과 실망감은 의외로 클 것이다. 언론의 비난보다 무서운 것은 시청자의 외면이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시대를 앞장서 이끄는 선도자답게 시청자들에게 투명성과 신뢰성을 갖춰가는 것이 스카이라이프의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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